"추수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관련 항목) |
(→부연설명) |
||
| 28번째 줄: | 28번째 줄: | ||
소작하는 전답의 현황은 [[씨덕이]]가 밭 7마지기와 밭 4마지기, [[동인]]이 밭4마지기, [[금 이]]가 밭 4마지기, [[진양이]]가 논 1마지기 5되지기, [[덕이]]가 논 2마지기 5되지기, [[슈발이]]가 논 5되지기이다. 이에 대한 세는 밭의 경우에 보리 2말 5되이고 논의 경우에 쌀 5말이며, 올해부터 세를 받을 것이니 미수未收 없이 바치라고 하였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26쪽.</REF> | 소작하는 전답의 현황은 [[씨덕이]]가 밭 7마지기와 밭 4마지기, [[동인]]이 밭4마지기, [[금 이]]가 밭 4마지기, [[진양이]]가 논 1마지기 5되지기, [[덕이]]가 논 2마지기 5되지기, [[슈발이]]가 논 5되지기이다. 이에 대한 세는 밭의 경우에 보리 2말 5되이고 논의 경우에 쌀 5말이며, 올해부터 세를 받을 것이니 미수未收 없이 바치라고 하였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26쪽.</REF> | ||
| − | == | + | ====추수기==== |
| − | 추수기는 전년까지의 수확량과 징수액을 기록한 장부로서 대부분의 지주들은 추수기를 참고하여 그 해의 소작료액을 정했다. 이는 [[도지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전라도에서 주로 시행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56 도지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추수기는 전년까지의 수확량과 징수액을 기록한 장부로서 대부분의 지주들은 추수기를 참고하여 그 해의 소작료액을 정했다. 이는 [[도지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전라도에서 주로 시행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56 도지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 이 자료는 을미년 배지라고도 불리는데 본문의 내용이 각각 공납을 바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 추수기와 같은 장부보다는 배지의 형식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
| − | 이 자료는 을미년 배지라고도 불리는데 | ||
| − | |||
==시각자료== | ==시각자료== | ||
2017년 5월 11일 (목) 17:04 판
| 추수기 | |
| 영문명칭 | A record of harvest written by the Yun family of Haenam |
|---|---|
| 작자 | 미상 |
| 작성시기 | 을미년 |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 기탁처 | 해남윤씨 녹우당 |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 유형 | 고문서 |
| 크기(세로×가로) | 23.4×25.5㎝ |
| 판본 | 필사 |
| 수량 | 1章 |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을미년 10월 18일에 해남윤씨 댁에서 작성한 추수기秋收記이다.
내용
을미년 10월 18일에 해남윤씨 댁에서 작성한 추수기秋收記이다. 해남윤씨 댁에서 소유하고 있는 전답 가운데 씨덕이 등 5명이 소작하는 전답의 면적과 이에 대한 세를 기록하였다. 소작하는 전답의 현황은 씨덕이가 밭 7마지기와 밭 4마지기, 동인이 밭4마지기, 금 이가 밭 4마지기, 진양이가 논 1마지기 5되지기, 덕이가 논 2마지기 5되지기, 슈발이가 논 5되지기이다. 이에 대한 세는 밭의 경우에 보리 2말 5되이고 논의 경우에 쌀 5말이며, 올해부터 세를 받을 것이니 미수未收 없이 바치라고 하였다.[1]
추수기
추수기는 전년까지의 수확량과 징수액을 기록한 장부로서 대부분의 지주들은 추수기를 참고하여 그 해의 소작료액을 정했다. 이는 도지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전라도에서 주로 시행되었다.[2] 이 자료는 을미년 배지라고도 불리는데 본문의 내용이 각각 공납을 바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 추수기와 같은 장부보다는 배지의 형식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각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1] 한글전시도록
관련 항목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 해남윤씨 | 추수기 | A는 B를 저술했다 | |
| 추수기 | 씨덕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추수기 | 둥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추수기 | 금택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추수기 | 진양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추수기 | 덕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추수기 | 슈발이 | A는 B를 언급했다 | |
| 씨덕이 | 해남윤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 둥이 | 해남윤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 진양이 | 해남윤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 덕이 | 해남윤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 슈발이 | 해남윤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추수기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 시간 | 내용 |
|---|---|
| 을미년 | 해남 윤씨가에서 추수기를 작성했다. |
공간정보
| 위도 | 경도 | 내용 |
|---|---|---|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추수기가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논문
- 최원규,「19.20세기 海南 尹氏家의 農業 경영과 그 변동」,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 문숙자, 「조선후기 兩班家系와 地域民의 관계 및 그 변화양상 : 해남윤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고문서연구』 제 48집, 한국고문서학회, 2016.
- 온라인
- '도지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