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황룡사의 조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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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6일 (토) 20:59 판
황룡사의 조영 | |
작가 | 김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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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7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종교/건축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미상 |
개요
과거 신라 제일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의 조영 광경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까지의 발굴에 따르면 이 절의 전역은 약 2만5000여 평에 달하였으며 절의 중앙에는 9층 목탑이 존재하였다.
설명
작품 소재
황룡사 건축은 553년부터 569년까지 총 1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본래는 진흥왕 때에 본궁 남쪽에 짓던 새 궁궐이었으나, 궁을 짓는 도중에 황룡이 출현하자 이를 기려 불사(佛寺)로 고쳤고 황룡사라 명명하였다. 절의 구조는 전형적인 삼국시대 가람 건축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남쪽에서부터 중문·탑·금당·강당의 순으로 당우를 배치하고 그 주위에 회랑을 돌림으로써 명실공히 국찰(國刹)의 면모를 갖추었다. 중앙에 위치한 구층 목탑에는 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이 태화지(太和池) 옆을 지날 때 신인(神人)이 나와서, “황룡사 호국룡은 나의 장자로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절에 9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韓)이 와서 조공하며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뒤에 팔관회(八關會)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1]
작품 배경
건축 당시에는 월성(月城)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황룡사는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사적 제 6호로 지정된 황룡사지로 남아 있다.
시각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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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A항목 | B항목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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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황룡사의 조영 | 김태 |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
김태-황룡사의 조영 | 황룡사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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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황룡사의 조영 | 제작연도 | 1977년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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