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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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균,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1457116&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D%95%99%EB%B4%89%20%EA%B9%80%EC%84%B1%EC%9D%BC&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310&library=97 「임진년 진주대첩과 학봉 김성일」], 『경남문화연구소보』제30호,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2009.
 
**정상균,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1457116&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D%95%99%EB%B4%89%20%EA%B9%80%EC%84%B1%EC%9D%BC&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310&library=97 「임진년 진주대첩과 학봉 김성일」], 『경남문화연구소보』제30호,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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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글고문서]]

2017년 4월 30일 (일) 03: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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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의 전시에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종가(宗家) 소장 고문헌 5건이 소개되었다.[1] 시대를 이어 면면이 이어져 온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문화를 이 문서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내용

학봉 김성일 가문에서 소장한 고문헌의 자료적 가치와 의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한강(寒岡) 정구(鄭逑), 월천(月川) 조목(趙穆)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대표적인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된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성일은 퇴계를 종장으로 하는 영남학파의 중심을 담당하였으며, 그로부터 이어진 퇴계의 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裁),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정재(定齊) 류치명(柳致明)을 거쳐 김성일의 11대손인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에 까지 연결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줄기를 잇는 역할을 하였던 탓에 그가 속한 의성 김씨 가문은 유성룡풍산 류씨 가문과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문으로서 조선왕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가의 전통과 문화를 훌륭히 계승해 오고 있다.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전시 자료 중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 가운데서도 위정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한편으로는 집에 있을 아내를 걱정하는 따뜻한 가장으로서의 김성일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상우도관찰사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음에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가문에 곡식을 보내지 않고 그에 대해 아내에게 당부하는 김성일의 모습을 통해 공직자로서의 참다운 자세를 상기해 볼 수 있다.

학봉 행장 언해

전시 자료 중 학봉 행장 언해는 김성일의 7대손인 김주국이 다섯째 딸을 위해 1617년 10월 한강(寒岡) 정구(鄭逑)에 의해 지어진 학봉행장 한문본을 한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선조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딸이 부끄럼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김주국의 편지

김주국의 편지는 아들 김광찬이 일찍 죽고 혼자가 된 며느리 진성이씨(眞城李氏)에게 김주국이 보낸 편지로서, 불행한 상황에 처한 며느리를 다독이는 한편 종가의 며느리로서 집안을 잘 보전해나갈 것에 대한 당부를 서술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개인이 스스로의 슬픔을 억누르고 며느리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가문의 전통을 보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김광찬·김주국의 편지

김광찬·김주국의 편지는 죽음을 예감하고 아내 진성이씨에게 당부의 이야기를 남긴 김광찬의 애틋한 마음과, 그의 죽음 이후 며느리의 슬픔을 다독이고자 한 시아버지 김주국의 따뜻한 목소리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자료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제자로서 영민하다고 일컬어졌던 김광찬을 떠나보내며, 안타까워하고 아파했을 아버지와 아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여자초학

여자초학김광찬의 아들 김종수가 그의 맏딸을 위해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마음과 몸가짐을 강조하고자 한글로 쓴 책이다.

학봉종택 소장 자료들의 내용상 특징과 의의

5편의 의성김씨 학봉종택 소장 고문헌들은 모두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와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봉 김성일이라는 큰 인물을 위시하여 그의 후손들인 김주국, 김광찬, 김종수 또한 사대부 가문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한 삶의 철학을 몸소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편의 고문헌에 담긴 내용 외에도 현재 의성김씨 학봉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봉이 썼던 안경, 학봉이 차고 다녔던 칼, 선조 임금으로부터 학봉이 받았던 유서를 보관했던 통 등의 유물들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중기를 살았던 유학자로서의 김성일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지식 관계망

시각 자료

가상 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갤러리

『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 의리와 충절의 400년』 저자 이해영 인터뷰(게시일: 2015.05.28.)

관련 항목

중심 기사

문맥 기사

관련 내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 학봉 행장 언해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 김주국의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 김광찬·김주국의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 여자초학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시간 정보

시간 내용
1592년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가 작성되었다.
1765년 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1765년-1767년 김광찬·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1770년 학봉 행장 언해가 작성되었다.
1797년 여자초학이 작성되었다.

공간 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609771 128.669643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은 의성김씨 학봉종택과 관련이 있다.


주석

  1. 뒤이어 나오는 '내용'과 '관련 항목'의 전시자료 5건으로서, 유형별로는 고문서 3건과 고서 2건으로 나뉜다. 전시전의 도록 자료는 다음과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