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유서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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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PAGENAME}}은 1592년(선조 25) 4월 11일에 [[선조]]가 [[김성일]]에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는 문서를 보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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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는 약 1미터가 조금 안되며, 굵기는 대략 20센티미터 정도이다. ()자체가 원이 아니라 팔각형 형태로 되어있다. 그리고 팔각형 한면에 기이한 동물 형상을 한 형체가 주조되어 있는데, 머리는 개처럼 생겼고 꼬리는 긴데, 몸통은 비늘로 덮혀있다. 그리고 머리부분에 사슴 뿔 두개가 돋아나 있다. 통 마개와 가까운 부분은 동물의 형체가 온전히 남아있고, 그 아래쪽에 위치한 동물은 머리와 앞다리가 파손된 상태이다. 그리고 통 마개와 가까운 동물이 머리를 수직으로 세우고 앉아있는 것과 달리 파손된 동물의 형태는 납짝 엎드린 모습을 취하고 있다. 마개 부분은 이무기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마개 반대쪽은 4개의 구슬이 박혀있는데, 이 구슬들은 안정적으로 {{PAGENAME}}을 세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개를 열면, 마개 안쪽에 [[학봉|학봉 선생]]의 친필 수결이 쓰여져 있다. 당시 유서통을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서통 마개 안쪽에 자신의 수결을 집어 넣어야 했다.
김성일 유서의 문서 양식은 『[[전율통보|전율통보(典律通補)]]』의 유서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문서 첫 부분에‘유수경상우도 병마절도사김성일(諭守慶尙右道兵馬節度使金誠一)’이라고 써서 당해 관원의 직함과 성명을 기입하였고, 본문에 제26부라는 밀부번호를 명기하였다. 문서 말미에는 만력 20년 4월 11일이라는 발급된 연, , 일 등을 적었고,유서지보(諭書之寶)를 날인하였다.
 
1987년 3월 7일에 보물 제906호로 지정되었다. 김성일 종가 고문서 일괄 17종 242점 가운데에 하나로, 2008년에 학봉 김성일의 14대 종손 김시인이 별세하면서 아들 김종길이 안동에 거주하며 소장,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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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세종]]시기 이전 내전소식(內傳消息)이라는 왕명을 쓰고 있었는데, 이는 국왕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 있을시 승정원(承政院)을 통해 내리는 간단한 왕명이었다.<ref>『태종실록』권32, 태종 16년(1416), 12월 2일(기미), 1번째 기사</ref>
 
이같은 서식은 고려의 선전소식(宣傳消息)에서 유래하였다. 선전소식은 충렬왕대에 만든 왕명으로, 당시에 몽골과의 관계로 인해 국정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 많았는데, 왕명을 받은 사신이 지방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선지(宣旨)를 반포하였을 경우에 의례 절차가 매우 번거로웠다. 그래서 승선이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작성하고 서명하는 선전소식이라는 간단한 왕명을 만들었다.
 
<ref>『고려사』권123, 「열전」권36, 폐행(嬖幸), 이분희, 이습, "이습이 응방 오숙부가 안찰사를 참소한 일을 논박하다."</ref>
 
이것이 기원이 된 조선의 내전소식은 국왕의 명령 가운데 정식 행정 절차를 거쳐 공문을 보내는 것이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거나 사안이 중요하지 않은 잡사(雜事)일 경우에, 비교적 형식에 매이지 않고 어보(御寶)나 담당 관청의 인신이 없이 승지 한 사람의 서명만으로 시행하였던 왕명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문서 서식은 어보나 승정원의 인신이 찍히지 않았기에 위조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세종]]이 제기하였고<ref>『세종실록』권30, 세종 7년(1425) 11월 22일(정사), 2번째기사</ref> 논의가 진행되어 1443년(세종 25)에 최종적으로 내전소식을 유서로 개편 하였다.  
 
<ref>『세종실록』 권101, 세종 25년(1443), 8월 6일(무자) 1번째 기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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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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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4일 (월) 21:05 판

틀:문화유산 유물정보

정의

1592년(선조 25) 김성일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고 밀부 제26부와 함께 내린 유서를 담은 통(筒)을 말한다.

내용

이 학봉 유서통은 1592년(선조 25) 4월 11일에 선조김성일에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는 문서를 보관한 것이다. 길이는 약 1미터가 조금 안되며, 굵기는 대략 20센티미터 정도이다. 통(筒)자체가 원이 아니라 팔각형 형태로 되어있다. 그리고 팔각형 한면에 기이한 동물 형상을 한 형체가 주조되어 있는데, 머리는 개처럼 생겼고 꼬리는 긴데, 몸통은 비늘로 덮혀있다. 그리고 머리부분에 사슴 뿔 두개가 돋아나 있다. 통 마개와 가까운 부분은 동물의 형체가 온전히 남아있고, 그 아래쪽에 위치한 동물은 머리와 앞다리가 파손된 상태이다. 그리고 통 마개와 가까운 동물이 머리를 수직으로 세우고 앉아있는 것과 달리 파손된 동물의 형태는 납짝 엎드린 모습을 취하고 있다. 마개 부분은 이무기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마개 반대쪽은 4개의 구슬이 박혀있는데, 이 구슬들은 안정적으로 학봉 유서통을 세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개를 열면, 마개 안쪽에 학봉 선생의 친필 수결이 쓰여져 있다. 당시 유서통을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서통 마개 안쪽에 자신의 수결을 집어 넣어야 했다.

시각자료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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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