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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의 문관으로, 자는 치수(穉修), 호는 유산(酉山),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정약용]]의 아들이며, [[농가월령가|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은 [[정학유]]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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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의 문관으로, 자는 치수(穉修), 호는 유산(酉山),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정약용]]의 아들이며, [[농가월령가|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은 [[정학유]]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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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연은 [[정약용]]의 아들이자 제자로서 [[다산초당]]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서울 중앙 학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이는 [[정약용]]의 사후에도 변함없이 이루어졌는데, 1857년 11월 21일 정학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추침(秋砧, 가을 다듬이 소리)이라는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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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온 글에 서폭 가득 넘치는 것은 온통 지난날을 말하고 우의를 얘기하는 말뿐이어서 편쳐 읽는 동안 마음이 뭉클하여 맑은 눈물이 눈에 어리기까지 하였소. 다만 안타깝기는 그대가 이쪽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나는 여유가 없어 이생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아보기는 마치 까마귀의 머리가 희어지고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다 하겠소. 그러니 이를 어찌하오. ...
  百濟城高一雁飛 憶郞秋夜減腰圍 西關北塞無征戍 只是忠州估客衣.<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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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출처: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p.148-149</ref>
  (백제성고일안비 억랑추야감요위 서관북새무정수 지시충주고객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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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으로는 한시 추침(秋砧, 가을 다듬이 소리)이 있다.
  백제 때의 옛 높은 성에 외기러기 날고, 낭군 그리는 가을밤 허리만 가늘어졌구나. 서도에나 북도에나 수자리 간 일 없으니, 다만 충주의 나그네 옷 삯 다듬이질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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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濟城高一雁飛 백제성고일안비
<ref>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69123&ref=y&cid=41773&categoryId=41783 추침]", 한시작가작품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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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郞秋夜減腰圍 억랑추야감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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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關北塞無征戍 서관북새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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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때의 옛 높은 성에 외기러기 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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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군 그리는 가을밤 허리만 가늘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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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에나 북도에나 수자리 간 일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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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충주의 나그네 옷 삯 다듬이질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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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69123&ref=y&cid=41773&categoryId=41783 추침]", 한시작가작품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ref>
  
  
 
==주석==
 
==주석==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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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일) 15:02 판

틀:인물정보2

정의

조선 정조 때의 문관으로, 자는 치수(穉修), 호는 유산(酉山),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정약용의 아들이며,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은 정학유의 형이다.

내용

정학연은 정약용의 아들이자 제자로서 다산초당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서울 중앙 학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이는 정약용의 사후에도 변함없이 이루어졌는데, 1857년 11월 21일 정학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보내온 글에 서폭 가득 넘치는 것은 온통 지난날을 말하고 우의를 얘기하는 말뿐이어서 편쳐 읽는 동안 마음이 뭉클하여 맑은 눈물이 눈에 어리기까지 하였소. 다만 안타깝기는 그대가 이쪽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나는 여유가 없어 이생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아보기는 마치 까마귀의 머리가 희어지고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다 하겠소. 그러니 이를 어찌하오. ...
[1]

그의 대표작으로는 한시 추침(秋砧, 가을 다듬이 소리)이 있다.

百濟城高一雁飛 백제성고일안비
憶郞秋夜減腰圍 억랑추야감요위
西關北塞無征戍 서관북새무정수
只是忠州估客衣 지시충주고객의
백제 때의 옛 높은 성에 외기러기 날고, 
낭군 그리는 가을밤 허리만 가늘어졌구나. 
서도에나 북도에나 수자리 간 일 없으니, 
다만 충주의 나그네 옷 삯 다듬이질이로세.
[2]


주석

  1. 출처: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p.148-149
  2. 출처: "추침", 한시작가작품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