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안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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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이익(李瀷,1681-1763)]]도 『[[성호전집]]』의 「[[애체경명|애체경명(靉霴鏡銘)]]」에서 안경의 기능에 대해 '하늘을 대신하여 인(仁)을 행하였다'며 감탄하고 있다. [[이현일|이현일(李玄逸,1627-1704)]]도 『[[갈암집|葛庵集]]』의 「[[답이삼재관징|답이삼재관징(答李三宰觀徵)]]」에서 노년에 [[이관징|이관징(李觀徵,1618-1695)]]에게 안경을 선물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 [[윤기|윤기(尹愭,1741-1826)]]는 『[[무명자집|무명자집(無名子集)]]』의 「증인멱안경(贈人覓眼鏡)」에서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위해 안경을 구비하는 것이 보옥보다 소중하다고 하며 안경의 획득을 바라고 있다. [[정약용|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의「[[시이자가계|시이자가계(示二子家誡)]]」에서 유배지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나쁜 시력에도 불구하고 저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안경 덕분이라 하고 있다. | [[이익|이익(李瀷,1681-1763)]]도 『[[성호전집]]』의 「[[애체경명|애체경명(靉霴鏡銘)]]」에서 안경의 기능에 대해 '하늘을 대신하여 인(仁)을 행하였다'며 감탄하고 있다. [[이현일|이현일(李玄逸,1627-1704)]]도 『[[갈암집|葛庵集]]』의 「[[답이삼재관징|답이삼재관징(答李三宰觀徵)]]」에서 노년에 [[이관징|이관징(李觀徵,1618-1695)]]에게 안경을 선물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 [[윤기|윤기(尹愭,1741-1826)]]는 『[[무명자집|무명자집(無名子集)]]』의 「증인멱안경(贈人覓眼鏡)」에서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위해 안경을 구비하는 것이 보옥보다 소중하다고 하며 안경의 획득을 바라고 있다. [[정약용|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의「[[시이자가계|시이자가계(示二子家誡)]]」에서 유배지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나쁜 시력에도 불구하고 저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안경 덕분이라 하고 있다. | ||
<ref>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77-282쪽.</ref> 이렇듯 안경은 조선후기 사대부들에게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사대부뿐 아니라 침을 놓는 의원, 화가, 바느질하는 직공들도 사용할 정도로 안경의 사용은 점점 확대되었다. 18세기에 오면 군사들에게도 바람과 티끌로부터 눈을 보호하도록 풍안경(風眼鏡)을 지급한다. 이렇게 안경은 공부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면서 전에 없던 방향으로까지 그 활용이 확대되었다. | <ref>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77-282쪽.</ref> 이렇듯 안경은 조선후기 사대부들에게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사대부뿐 아니라 침을 놓는 의원, 화가, 바느질하는 직공들도 사용할 정도로 안경의 사용은 점점 확대되었다. 18세기에 오면 군사들에게도 바람과 티끌로부터 눈을 보호하도록 풍안경(風眼鏡)을 지급한다. 이렇게 안경은 공부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면서 전에 없던 방향으로까지 그 활용이 확대되었다. | ||
− | <ref>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93쪽</ref> | + | <ref>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93쪽.</ref> |
==관련항목== | ==관련항목== |
2017년 4월 22일 (토) 18:36 판
정의
학봉 김성일의 안경과 안경집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안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내용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안경과 안경집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안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모(거북이 등껍질)로 안경태를 만들었고, 경첩을 가운데에 달아 반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었다. 안경 다리는 없으며, 대신 안경태에 구멍을 내가 끈을 달아 귀에 걸도록 되어 있다. 안경집에 안경을 반으로 접어 넣어 보관했으며, 안경집은 옆으로 비껴서 열 수 있었다. [1] 안경집은 피나무로 제작되었으며 겉면은 옻칠을 하고 놋쇠로된 배꼽장식을 달았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예품 제작방식과 동일하다. 렌즈는 수정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이규경의 『오주서종박물고변』에서 수정을 이용하여 안경을 만든다고 하고 있음 [2] 을 보아 김성일의 안경과 안경집은 조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안경을 통해 임진왜란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안경을 제작하고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부연설명
조선의 사대부에게 '독서'가 지니는 의미는 매우 컸다. 책으로 지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는 것이 사대부들의 주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력이 약해지는 것은 사대부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를 극복해 준 것이 바로 안경이었다. 조선에서는 16세기 후반부터 안경을 사용했다. 17세기만 하더라도 일부 상류층만이 사용했었으나 18세기에는 제작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계층이 안경을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의 안경의 생산과 유통의 확산은 중국, 일본과 관련이 깊다. 조선은 명과 청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냈다. 이 사신들은 새로운 문물에 주목함과 동시에 안경을 국내로 들여왔다. 이시원(李是遠,1789-1866)은 『송서상서경조이상사부연(送徐尙書敬祖以上使赴燕)』에서 안경이 16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입되었으며 현재(1852년)에는 사람들이 흔하게 휴대하고 다닌다고 하고있다. 채지홍( 蔡之洪,1683-1741)은 『안경명(眼鏡銘)』에서 안경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고있다. [3] 이익(李瀷,1681-1763)도 『성호전집』의 「애체경명(靉霴鏡銘)」에서 안경의 기능에 대해 '하늘을 대신하여 인(仁)을 행하였다'며 감탄하고 있다. 이현일(李玄逸,1627-1704)도 『葛庵集』의 「답이삼재관징(答李三宰觀徵)」에서 노년에 이관징(李觀徵,1618-1695)에게 안경을 선물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 윤기(尹愭,1741-1826)는 『무명자집(無名子集)』의 「증인멱안경(贈人覓眼鏡)」에서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위해 안경을 구비하는 것이 보옥보다 소중하다고 하며 안경의 획득을 바라고 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의「시이자가계(示二子家誡)」에서 유배지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나쁜 시력에도 불구하고 저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안경 덕분이라 하고 있다. [4] 이렇듯 안경은 조선후기 사대부들에게 독서와 글쓰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사대부뿐 아니라 침을 놓는 의원, 화가, 바느질하는 직공들도 사용할 정도로 안경의 사용은 점점 확대되었다. 18세기에 오면 군사들에게도 바람과 티끌로부터 눈을 보호하도록 풍안경(風眼鏡)을 지급한다. 이렇게 안경은 공부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면서 전에 없던 방향으로까지 그 활용이 확대되었다. [5]
관련항목
시간정보
공간정보
참고문헌
각주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시권(試券)』, 2015, 163쪽.
- ↑ 윤을요, 「조선시대 안경과 안경집 디자인 연구」,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14, 한국패션디자인학회, 2014, 123쪽.
- ↑ 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66-269쪽.
- ↑ 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77-282쪽.
- ↑ 진재교, 「조선조 후기 안경(眼鏡)과 문화(文化)의 생성(生成) -안경으로 읽는 조선조 후기 문화의 한 국면-」, 『한국한문학연구』62, 한국한문학회, 2016, 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