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하동 쌍계사 승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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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국사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혜소|진감선사 혜소(眞鑑禪師 慧昭)]]의 승탑.<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9167&cid=46656&categoryId=46656 하동 쌍계사 승탑]",『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4월 06일 확인.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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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국사암|국사암(國師庵)]]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혜소|진감선사 혜소(眞鑑禪師 慧昭)]]의 승탑.<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9167&cid=46656&categoryId=46656 하동 쌍계사 승탑]",『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4월 06일 확인.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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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6일 (목) 16:50 판


하동 쌍계사 승탑
(河東 雙磎寺 僧塔)
답사 이후 추가 예정
대표명칭 하동 쌍계사 승탑
영문명칭 Stupa of Ssanggyesa Temple, Hadong
한자 河東 雙磎寺 僧塔
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380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소유자 하동 쌍계사
관리자 하동 쌍계사
크기 높이 2.05m
건립시대 통일신라
관련승려 혜소
관련탑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국사암(國師庵)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진감선사 혜소(眞鑑禪師 慧昭)의 승탑.[1]

내용

쌍계사는 성덕왕 23년(723)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한 절이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쌓인 계곡 위의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 귀국 후 눈 위에 꽃이 피는 땅을 두루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지리산에 이르렀다. 그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 자리에 도착하였다. 그 곳이 꿈에서 계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옥천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후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린 것을 벽암(碧巖)이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청

보물 제380호. 높이 2.05m. 쌍계사 북동쪽의 탑봉(塔峰) 주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평평하게 다져 만든 2단의 돌축대 위에 서 있는데, 받침돌과 몸돌, 지붕돌이 모두 단면 8각으로 조성된 전형적인 8각원당형(圓堂型) 부도이다. 8각의 바닥돌은 윗면만을 다듬었고 옆면은 거친 자연 상태이다. 아래받침돌은 위아래 2단으로 조성되었는데, 아랫단의 옆면 역시 다듬었지만, 안상(眼象) 등의 장식은 없다. 윗단에는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무늬를 각 모서리마다 1개씩 모두 8개를 돋을새김하였고, 그 위에는 높직한 굄을 마련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8각의 각 면에 안상이 1구씩 오목새김되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고식(古式)의 안상은 크기가 가운데받침돌의 높이에 맞도록 큰 편인데, 아래부분에 괄호의 막음선이 아주 크게 내려져 있어 주목을 끈다. 윗받침돌에는 밑면에 2단의 각진 받침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1장의 꽃잎이 위로 솟아 있는 앙련(仰蓮)의 연꽃무늬가 아래받침돌 윗단처럼 역시 각 모서리마다 1개씩 모두 8개를 둘러 돋을새김되었다.윗받침돌 위에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높직한 8각의 몸돌 굄돌이 놓여 있다. 굄돌의 윗면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지만, 옆면에는 권운(卷雲)무늬가 여러 줄씩 빈틈없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몸돌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며, 모서리 기둥을 포함하여 아무런 조각이 없다.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를 상징하는 널찍한 받침이 있고, 몸돌의 바로 윗부분에는 낮고 각진 받침이 새겨져 있다. 추녀는 대체로 직선에 가까운데, 8각의 모서리에는 꼿꼿이 서 있는 모양의 귀꽃이 조각되어 있다. 윗면인 낙수면은 평박(平薄)한 편이지만, 8줄의 굵직한 우동(隅棟)이 뻗어내려 추녀 끝의 귀꽃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꼭대기부분에는 굵은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가 얹혀 있다. 상륜부에는 마치 지붕돌을 축소한 것처럼 같은 모습을 한 보개(寶蓋)가 놓여 있고, 보개 위에 올려진 높직한 간주(竿柱) 위에는 커다란 보주(寶珠)가 장식되었다. 보개, 간주, 보주 등의 머리장식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이 승탑은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 774~850)의 묘탑(墓塔)인 ‘대공탑(大空塔)’으로 추정된다. 혜소를 기리는 탑비는 887년(정강왕 2)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승탑은 대체로 885년(헌강왕 11)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기교가 없고, 각 부재의 비례도 균형을 잃었으며, 조각도 형식화된 경향이 뚜렷하다. 8각원당형의 승탑 양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알려주는 승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나말여초의 화강석 부도(浮屠)이다. 하동 쌍계사 승탑은 진감 선사(眞鑑禪師)의 사리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강석으로 된 높이 2.05m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이다. 부도는 승탑(僧塔)이라고도 하며, 원래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에서 비롯되었으며, 승려의 묘탑(墓塔)을 말한다. 진감선사[774~850]는 속성이 최씨(崔氏), 법명이 혜소(慧昭), 자가 영을(永乙)이며, 자호가 무의자(無衣者)이다. 804년(애장왕 5) 당나라에 유학하여 810년(헌덕왕 2) 숭산 소림사의 유리단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존경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진감 선사는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하동 쌍계사 승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진감선사 입적 후 그의 묘탑(墓塔)으로 건립되었으며, 진감선사 탑비와 함께 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부도는 대개 경내나 그 주변, 아니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동 쌍계사 승탑은 쌍계사에서 약 100m 거리의 북쪽 탑 봉우리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부도는 크게 탑신부(塔身部)[사리를 모신 탑신(塔身)과 옥개석으로 구성]와 그 아래의 기단부(基壇部)[지대석(址臺石: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하대석(下臺石)[아래 받침돌], 중대석(中臺石)[가운데 받침돌], 상대석(上臺石)[위 받침돌], 그리고 탑두부(塔頭部)[머리 장식]로 구성된다. 하동 쌍계사 승탑은 팔각원당형의 기본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부의 하대석에는 8각의 복련(覆蓮)[꽃잎이 밑을 향한 연꽃무늬] 8엽(葉), 중대석 8각에는 안상(眼象), 상대석에는 팔각의 앙련(仰蓮)[꽃잎이 위로 향한 연꽃무늬] 8엽(葉)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의 탑신은 구름무늬가 가득 돋을새김된 두꺼운 괴임돌 위에 있으며, 장식이나 우주(隅柱)[모서리 기둥]가 없는 밋밋한 8각으로 되어 있다. 옥개석의 지붕은 완만한 낙수 면에 추녀가 끝에서 위로 들려 있고, 매우 굵은 8줄의 추녀마루[귀마루] 끝에 고사리 모양의 귀꽃을 조각하였다. 지붕 밑면에는 서까래인 듯 보이는 받침을 두고 있다. 탑두부[상륜부]는 옥개석을 축소한 것 같은 양식의 보개(寶蓋)[지붕 모양의 장식], 꽃 모양이 조각된 돌, 밋밋한 간주(竿柱), 보주(寶珠)[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의 순서로 장식을 하였다. -향토문화전자대전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하동 쌍계사 승탑 하동 쌍계사 A는 B에 있다
하동 쌍계사 승탑 혜소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885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혜소 A는 B를 위한 비이다 887년

갤러리

<답사이후 추가예정>

참고문헌

주석

  1. "하동 쌍계사 승탑",『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4월 06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