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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2일 (토) 20:00 판

서덕언(徐德彦).송나라 상인.

송유인(宋有仁)은 인종(仁宗) 때에 그의 아버지가 사직을 지키다가 죽은 공으로 산원(散員)에 임명되었고, 조금 뒤에 태자부지유(太子府指諭)가 되었다가 위장군(衛將軍)으로 임명되었다. 태자(太子)가 그를 편애하여 특별히 많은 물건들을 하사하였다. 처음에 송나라 상인 서덕언(徐德彦)의 처와 결혼하였다. 처가 본래 미천하였지만, 엄청난 재산이 있었기 때문에 백금(白金) 40근(斤)을 환관에게 뇌물로 주고 3품 벼슬을 얻었다. 〈송유인은〉 의종(毅宗) 말에 대장군(大將軍)으로 전직되었다. 그가 문신들과 서로 어울려 다녔으므로 무관들이 항상 이를 미워하였다. 당시 정중부(鄭仲夫)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송유인은 자신이 고립되어 위태로운 것을 알고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이 두려워 자신의 처를 해도(海島)로 쫓아버리고, 정중부의 딸을 처로 삼았다. 〈송유인은〉 명종(明宗) 초에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나갔다. 경인(庚寅, 1170)년 이후 북인(北人)들이 횡포해져서, 창주(昌州) 사람들은 그 수령이 총애하는 기생을 죽이고 아문(衙門)을 설치하였고, 성주(成州) 사람들은 삼등현(三登縣)을 없애버릴 것을 논의하면서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수십 명이나 죽였으며, 철주(鐵州) 사람들은 그 장리(長吏)를 죽이자고 의논하다가 서로 격투하다가 죽었다. 송유인이 이것을 능히 다스리지 못하였으므로, 병을 핑계로 교체해 줄 것으로 요청하였다.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우학유(于學儒)로 대체하였다. 송유인은 뒤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임명되었는데, 추부(樞府)에 오른 뒤로부터 상벌을 주고 인물을 진퇴시키는 것이 모두 그 입에서 나왔다. 뒤에 참지정사(叅知政事)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