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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조선 영조|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창경궁 문정전)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ref>김창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193 이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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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조선 영조|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창경궁 문정전)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ref>김창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193 이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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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홍릉령(弘陵令)에 기용,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나가 둑을 쌓아 농사에 도움을 주어 주민들이 그 둑을 ‘이공제(李公堤)’라 했다. 그 후 선산부사(善山府使), 상주(尙州) ·충주(忠州)의 목사를 지내고 1800년(순조 즉위) 세자익위사위솔(世子翊衛司衛率) ·사어(司禦)를 역임, 이어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황주목사(黃州牧使)를 거쳐 호조참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문집에 《화천집》이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97472 이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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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홍릉령(弘陵令)에 기용,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나가 둑을 쌓아 농사에 도움을 주어 주민들이 그 둑을 ‘이공제(李公堤)’라 했다. 그 후 선산부사(善山府使), 상주(尙州) ·충주(忠州)의 목사를 지내고 1800년(순조 즉위) 세자익위사위솔(世子翊衛司衛率) ·사어(司禦)를 역임, 이어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황주목사(黃州牧使)를 거쳐 호조참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문집에 『화천집』이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97472 이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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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2일 (일) 19:10 기준 최신판


이채(李采)
Joseon mungwan old.png
대표명칭 이채
한자표기 李采
생몰년 1745년-1820년
본관 우봉(牛峯)
시호 문경(文敬)
호 화천(華泉)
자 계량(季良)
시대 조선시대
대표저서 『화천집』
대표직함 지례현감, 선산부사, 호조참판
부 이제원(李濟遠)



정의

조선시대 문신이다.

내용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창경궁 문정전)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1]

1790년(정조 14) 홍릉령(弘陵令)에 기용,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나가 둑을 쌓아 농사에 도움을 주어 주민들이 그 둑을 ‘이공제(李公堤)’라 했다. 그 후 선산부사(善山府使), 상주(尙州) ·충주(忠州)의 목사를 지내고 1800년(순조 즉위) 세자익위사위솔(世子翊衛司衛率) ·사어(司禦)를 역임, 이어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황주목사(黃州牧使)를 거쳐 호조참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문집에 『화천집』이 있다.[2]

지식 관계망

  • 이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제원 이채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이재 이제원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도암집 이재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도암집 이채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이채 초상 이채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화천집 이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45년 이채가 출생하였다
1774년 이채가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775년 이채가 휘령전 참봉에 제수되었다
1790년 이채가 홍릉령에 기용되었다
1800년 이채가 세자익위사위솔을 역임하였다

주석

  1. ↑ 김창수, "이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 "이채", 『두산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