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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은 1182년 정월, [[개성 보제사|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승려 열 명 가량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자고 결의한 뒤, 1190년에 팔공산 [[영천 거조사|거조사(居祖寺)]]에서 결사를 시작할 때 이 글을 지었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지눌]]은 1182년 정월, [[개성 보제사|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승려 열 명 가량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자고 결의한 뒤, 1190년에 팔공산 [[영천 거조사|거조사(居祖寺)]]에서 결사를 시작할 때 이 글을 지었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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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 있고, 다음에 여섯 차례의 문답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 및 수행하는 이들이 갖기 쉬운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서(序)에서는 “한 마음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가 부처”라고 정의하였고,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혔다. | 권두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 있고, 다음에 여섯 차례의 문답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 및 수행하는 이들이 갖기 쉬운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서(序)에서는 “한 마음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가 부처”라고 정의하였고,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혔다. | ||
그리고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모든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서 가만히 합하고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하고,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하였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그리고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모든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서 가만히 합하고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하고,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하였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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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1608년([[조선 광해군|광해군]] 41)에 학명(學明)이 써서 [[순천 송광사|송광사]]에서 간행한 것과 1635년([[조선 인조|인조]] 13)의 운주산 용장사본(龍藏寺本), 1681년([[조선 숙종|숙종]] 7)의 울산 운흥사본(雲興寺本), 1860년([[조선 철종|철종]] 11)의 천마산 봉인사본(奉印寺本) 등이 있으며, 현대본도 10여 종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이 책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1608년([[조선 광해군|광해군]] 41)에 학명(學明)이 써서 [[순천 송광사|송광사]]에서 간행한 것과 1635년([[조선 인조|인조]] 13)의 운주산 용장사본(龍藏寺本), 1681년([[조선 숙종|숙종]] 7)의 울산 운흥사본(雲興寺本), 1860년([[조선 철종|철종]] 11)의 천마산 봉인사본(奉印寺本) 등이 있으며, 현대본도 10여 종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f>조용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967 권수정혜결사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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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금) 00:44 기준 최신판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 |
대표명칭 | 권수정혜결사문 |
---|---|
한자표기 | 勸修定慧結社文 |
편자 | 지눌(知訥) |
저술시기 | 1190년 |
시대 | 고려 |
수량 | 1권 1책 |
정의
1190년 고려 중기 승려 지눌(知訥)이 지은 책.
내용
제작 배경
지눌은 1182년 정월,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승려 열 명 가량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자고 결의한 뒤, 1190년에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결사를 시작할 때 이 글을 지었다.[1]
권두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 있고, 다음에 여섯 차례의 문답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 및 수행하는 이들이 갖기 쉬운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서(序)에서는 “한 마음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가 부처”라고 정의하였고,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모든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서 가만히 합하고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하고,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하였다.[2]
서지정보
이 책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1608년(광해군 41)에 학명(學明)이 써서 송광사에서 간행한 것과 1635년(인조 13)의 운주산 용장사본(龍藏寺本), 1681년(숙종 7)의 울산 운흥사본(雲興寺本), 1860년(철종 11)의 천마산 봉인사본(奉印寺本) 등이 있으며, 현대본도 10여 종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3]
지식 관계망
- 보조국사 지눌과 원묘국사 요세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권수정혜결사문 | 지눌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권수정혜결사문 | 순천 송광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권수정혜결사문 | 영천 거조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조용길, "권수정혜결사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조용길, "권수정혜결사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조용길, "권수정혜결사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조용길, "권수정혜결사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권수정혜결사문,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불교 개혁 운동가, 정혜결사의 지눌, 한국의 위대한 인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