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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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5546 율곡 이이]가 43세 때 황해도 해주 석담(石潭)에 은거할 때 지은 10수의 연시조(聯時調)로서 〈석담구곡가(石潭九曲歌)〉라고도 한다.<ref>이응백·김원경·김선풍,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9999&cid=41708&categoryId=41711&anchorTarget=TABLE_OF_CONTENT6#TABLE_OF_CONTENT6 고산구곡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편집. 2016년 12월 27일 확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647 고산구곡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의 내용에서 발췌·편집.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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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다음의 2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르는 말이다. 아울러 조선 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할 때에 찍어 낸 판각 원본을 가리키는 책이름이기도 하다.<ref>"훈민정음", [http://stdweb2.korean.go.kr/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ref>
  
 
==내용==
 
==내용==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5546 율곡 이이]가 43세 때 황해도 해주 석담(石潭)에 은거할 때 지은 10수의 연시조(聯時調)로서 〈석담구곡가(石潭九曲歌)〉라고도 한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1129 주자(朱子)]의 [[무이구곡도가|〈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栗谷先生年譜) 그 첫수는 서곡(序曲)이고, 둘째 수부터 제1곡으로 시작하여 제9곡까지 읊었다. 즉 제1곡은 관암(冠岩), 2곡은 화암(花岩), 3곡은 취병(翠屛), 4곡은 송애(松崖), 5곡은 은병(隱屛), 6곡은 조협(釣峽), 7곡은 풍암(楓岩), 8곡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68874&cid=41773&categoryId=41783 금탄(琴灘)], 9곡은 문산(文山) 등으로 나누어 각각 그곳의 경치를 한 수의 시조로 읊어 놓았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626 이황]의 [[도산십이곡|〈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좋은 대조작이다.<ref>이응백·김원경·김선풍,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9999&cid=41708&categoryId=41711&anchorTarget=TABLE_OF_CONTENT6#TABLE_OF_CONTENT6 고산구곡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편집. 2016년 12월 27일 확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647 고산구곡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의 내용에서 발췌·편집.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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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로서의 '훈민정음' :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의 고유 문자로서의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문()과 언()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508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508 더 자세한 내용 보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5546 이이]가 애초 한글[諺文]로 작성하였고, 이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0898 송시열(宋時烈)]이 오언의 한역시로 번역하기도 했다.<ref>시각자료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43쪽;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647 고산구곡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에서 소개된 『율곡전서』 수록 한역본 이미지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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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으로서의 '훈민정음' :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정인지(鄭麟趾)]]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解例)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5805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5805 더 자세한 내용 보기]'''
  
 
==시각자료==
 
==시각자료==

2017년 3월 27일 (월) 02:16 판

틀:개념정보2

정의

'훈민정음'은 다음의 2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르는 말이다. 아울러 조선 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할 때에 찍어 낸 판각 원본을 가리키는 책이름이기도 하다.[1]

내용

  1. 문자로서의 '훈민정음' :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의 고유 문자로서의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문(文)과 언(諺)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2] 더 자세한 내용 보기
  2. 책이름으로서의 '훈민정음' :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鄭麟趾)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3] 더 자세한 내용 보기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무이구곡도가 훈민정음 A는 B의 모델이다
고산구곡 훈민정음 A는 B의 모델이다
훈민정음 고산구곡도 A는 B의 모델이다
훈민정음 고산구곡도 A는 B에 포함된다
이이 훈민정음 A는 B를 저술하였다 1578년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578년 이이가 훈민정음를 창작하였다.

참고문헌

주석

  1. "훈민정음",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
  2.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
  3.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03월 27일 확인 및 발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