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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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7일 (월) 02:16 판
정의
'훈민정음'은 다음의 2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르는 말이다. 아울러 조선 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할 때에 찍어 낸 판각 원본을 가리키는 책이름이기도 하다.[1]
내용
- 문자로서의 '훈민정음' :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의 고유 문자로서의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문(文)과 언(諺)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2] 더 자세한 내용 보기
- 책이름으로서의 '훈민정음' :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鄭麟趾)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3] 더 자세한 내용 보기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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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구곡도가 | 훈민정음 | A는 B의 모델이다 | |
고산구곡 | 훈민정음 | A는 B의 모델이다 | |
훈민정음 | 고산구곡도 | A는 B의 모델이다 | |
훈민정음 | 고산구곡도 | A는 B에 포함된다 | |
이이 | 훈민정음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578년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578년 | 이이가 훈민정음를 창작하였다. |
참고문헌
- 단행본
- 이민홍, 『사림파문학의 연구』, 형설출판사, 1985.
- 최진원, 『국문학과 자연』,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77.
- 논문
- 고정희, 「<도산십이곡>과 <고산구곡가>의 언어적 차이와 시가사적 의의」, 『국어국문학』제141호, 국어국문학회, 2005.
- 권오성, 「율곡의 고산구곡가 율자보에 대한 소고」, 『제3회 국제학술회의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 이민홍, 「고산구곡가와 무이도가고 1·2」, 『개신어문연구』1·2, 충북대학교, 1981-1982.
- 온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