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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명칭= Donggukjeongun
 
|로마자명칭= Donggukjeongun
 
|영문명칭= The first book about standard sounds of Chinese. Compiled and published to unify standard sounds of Chinese used in Korea.
 
|영문명칭= The first book about standard sounds of Chinese. Compiled and published to unify standard sounds of Chinese used in Korea.
|작자=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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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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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 표준음에 관한 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 표준음에 관한 책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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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 표준음에 관한 책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세종]]의 명에 따라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최항]](崔恒, 1409~1474), [[박팽년]](朴彭年, 1417~1456) 등이 편찬에 참여했고, 1448년 (세종 30)에 6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중국의 표준음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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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 책은 최초로 한글의 음가를 이용해 한자음을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훈민정음]]』과 함께 국어 연구 자료로서 중요성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음운체계 연구에도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음운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2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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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조선 세종|세종]]의 명에 따라 [[신숙주|신숙주(申叔舟, 1417~1475)]], [[최항|최항(崔恒, 1409~1474)]], [[박팽년|박팽년(朴彭年, 1417~1456)]] 등이 편찬에 참여했고, 1448년 (세종 30)에 6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중국의 [[표준음]]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최초로 한글의 음가를 이용해 한자음을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훈민정음]]』과 함께 국어 연구 자료로서 중요성도 높게 인정되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음운체계 연구에도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어 당시 [[음운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2쪽.</REF><!-- 도록 해설문의 내용을 그대로 준용하되 필요에 따라 약간의 윤문이 가해졌으며,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부연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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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서]]에 대해서===
본래 운서(韻書)는 한자의 음을 연구하는 것으로, 한자 음운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기원은 중국 남북조시대(ACE3~6세기)로 특히 [[남조]](南朝)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자음(字音)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로 나누어서 고찰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다. 시를 지을 때 운율(韻律)에 민감하였던 남조사람들은 인도음운학의 영향을 입어서 자음의 사성(四聲)을 구분하여 의식하고, 또 한자들을 운별(韻別)로 분류, 정리하는 법을 마련하였다. 그 법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운서가 발간되었고, 수(隋, 581~618)나라 시기에 이르면 [[육법언]](陸法言)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종류의 운서를 종합하여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바로 중국 운서의 대종이라 일컫는 『[[절운]](切韻), (601년, 간행됨)』이다. 그 후 당대(唐代,618~907) 이후 『[[절운]](切韻)』을 증보하거나 새로운 운서를 편찬하는 일이 계속되어 『당운(唐韻)』이 만들어졌으며, 송(宋, 960~1279)시기에는 『광운(廣韻)』, 『[[예부운략]](禮部韻略)』, 『집운(集韻)』, 『고금운회(古今韻會)』 등이 편찬 되었다. 원(元, 1279~1368)시기에는 『거요(擧要)』, 『중원음운(中原音韻)』등이 있으며, 명대(明, 1368~1644) 초기에는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이 나왔다. 이러한 중국의 음운학의 연구와 그와 관련된 서책이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짐작 할 있겠지만, 확실한 시기는 언제인지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고려 중기에는 문인들이 한시를 짓는 일이 매우 일상적이었고, 조선 태종(太宗,1400~1418)시기에는 『[[동국약운]](東國略韻)』이 간행 되었고, 조선 전반기에 『[[예부운략|예부운략(禮部韻略)]]』이 간행되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世宗,1418~1450)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운학에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었고, 그 보필자였던 [[신숙주]](申叔舟)와 [[성삼문]](成三問) 등은 운학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전래된 운학과 세종 및 집현전 학자들이 모여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훈민정음_해례본|훈민정음 해례본]](1446, 간행됨)』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자음에 대한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고 하여 『동국정운(1447, 간행됨)』을 만들게 된 것이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0404 운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에서 인용. 2017년 4월 1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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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운서|운서(韻書)]]는 한자의 음을 연구하는 것으로, 한자 [[음운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기원은 중국 남북조시대로 특히 남조(南朝)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자음(字音)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로 나누어서 고찰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다. 시를 지을 때 운율(韻律)에 민감하였던 남조 사람들은 인도음운학의 영향을 입어서 자음의 사성(四聲)을 구분하여 의식하고, 또 한자들을 운별(韻別)로 분류, 정리하는 법을 마련하였다. 그 법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운서]]가 발간되었고, 수(隋, 581~618)나라 시기에 이르면 [[육법언|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종류의 [[운서]]를 종합하여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바로 중국 [[운서]]의 대종이라 일컫는 『[[절운|절운(切韻)]]』이다. 이어 당대(唐代,618~907) 이후 『[[절운|절운(切韻)]]』을 증보하거나 새로운 운서를 편찬하는 일이 계속되어 『[[당운|당운(唐韻)]]』이 만들어졌으며, 송(宋, 960~1279) 시기에는 『[[광운|광운(廣韻)]]』, 『[[예부운략|예부운략(禮部韻略)]]』, 『[[집운|집운(集韻)]]』, 『[[고금운회|고금운회(古今韻會)]]』 등이 편찬 되었다. 원(元, 1279~1368) 시기에는 『[[거요|거요(擧要)]]』, 『[[중원음운|중원음운(中原音韻)]]』등이 있으며, 명대(明, 1368~1644) 초기에는 『[[홍무정운|홍무정운(洪武正韻)]]』 등이 나왔다. 고려 중기에는 문인들이 한시를 짓는 일이 매우 일상적이었으므로 이러한 중국의 [[음운학]] 연구와 그와 관련된 서책이 한반도로 전파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있으나 확실한 시기는 언제인지 수 없다. 조선 태종(太宗,1400~1418) 시기에는 『[[동국약운|동국약운(東國略韻)]]』이 간행되었고, 조선 전반기에 『[[예부운략|예부운략(禮部韻略)]]』이 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세종(世宗,1418~1450)]]은 다른 학문과 함께 운학에도 큰 관심이 있었으며 조예도 깊었다. 세종을 보필하던 [[신숙주|신숙주(申叔舟)]]와 [[성삼문|성삼문(成三問)]] 또한 운학연구에 있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있었다. 이렇듯 중국에서 전래된 운학을 기초로 [[조선 세종|세종]]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를 더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훈민정음_해례본|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자음]]에 대한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고 하여 『동국정운』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REF>강신항,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0404 운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등 9인이다. 이들의 분담업무 중 감장(監掌)은 [[동궁]](東宮)에서 하며 그 보좌로는 [[진양대군]]과 [[안평대군]], 주무(主務)는 [[신숙주]]와 [[성삼문]] 등이 일을 맡았다. 우리나라 한자음 중심으론 [[최항]]과 [[박팽년]], 중국음에 대한 자문은 [[조변안]]과 [[김증]]이 하였다. 교정과 정리는 [[강희안]]이 하였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 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첫째 권과 여섯째 권의 두 책이 발견되었다. 이들 원본은 현재 [[간송문고]]에 있다. 그 뒤 중종(中宗,1506~1544 ) 때의 문신인 [[심언광]](沈彦光)의 집안에 전해 오던 6권 6책의 전질이 1972년에 강릉 [[심교만]](沈敎萬)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간송문고본은 전 6권 가운데 두 책만이 남아 있으나,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제목이 있는 표지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正韻(정운)’이라고 되어 있다.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대자(大字)는 목활자(木活字)이고, 소자(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이다. 자체(字體)는 본문 대자가 [[세조|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묵개(墨蓋)의 음각한 글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 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대학교 소장본은 간송문고본과 같은 인쇄본인데,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背裝)으로 개장하면서 책의 위와 아래를 약간 절단하였고, ‘선사지기’가 없으며, 제전(題箋) 아래에 차례를 나타내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묵서(墨書)로 가필한 점이 다르다. 간송미술관 소장본 『동국정운』은 1958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하였고, 건국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은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973년에 영인하였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5805 동국정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에서 인용. 2017년 4월 1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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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정운의 편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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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등 9인이다. 이들의 분담업무 중 감장(監掌)은 동궁(東宮)에서 하며 그 보좌로는 [[진양대군]]과 [[안평대군]], 주무(主務)는 [[신숙주]]와 [[성삼문]] 등이 맡았다. 우리나라 [[한자음]]은 [[최항]]과 [[박팽년]]을 중심으로 하고, [[중국음]]에 대한 자문은 [[조변안]]과 [[김증]]이 하였다. 교정과 정리는 [[강희안]]이 하였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 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첫째 권과 여섯째 두 책이 발견되었다. 이들 원본은 현재 [[간송문고]]에 있다. 그 뒤 [[중종|중종(中宗,1506~1544)]] 때의 문신인 [[심언광|심언광(沈彦光)]]의 집안에 전해 오던 6권 6책 전질이 1972년에 강릉 [[심교만|심교만(沈敎萬)]]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간송문고본은 전 6권 가운데 두 책만이 남아 있으나,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제목이 있는 표지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正韻(정운)’이라고 쓰여 있다.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대자(大字)는 목활자(木活字)이고, 소자(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초주(初鑄) [[갑인자|갑인자(甲寅字)]]이다. 자체(字體)는 본문 대자가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묵개(墨蓋)의 음각한 글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 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대학교]] 소장본은 [[동국정운 간송문고본|간송문고본]]과 같은 인쇄본인데,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背裝)으로 개장하면서 책의 위와 아래를 약간 절단하였고, ‘선사지기’가 없으며, 제전(題箋) 아래에 차례를 나타내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묵서(墨書)로 가필한 점이 다르다. [[간송미술관]] 소장본 『동국정운』은 1958년 [[통문관|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하였고, [[건국대학교 박물관]] 소장본은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973년에 영인하였다. <REF>유창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294 동국정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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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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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한글 창제와 서적 편찬에 관한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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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h.aks.ac.kr/~encyves/Graph/A003/A003.htm 동국정운에 관한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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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h.aks.ac.kr/~encyves/Graph/A007/A007.htm 월인석보에 관한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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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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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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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운략]]||{{PAGENAME}}||A는 B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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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PAGENAME}}||A는 B를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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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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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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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거리===
 
*논문
 
*논문
*# 이준환, 「中世·近代·開化期의 韻書 및 字書 편찬의 역사」, 『東洋學』 vol 57, 2014, 159~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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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환, 「中世·近代·開化期의 韻書 및 字書 편찬의 역사」, 『東洋學』 vol.57,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4, 159~186쪽.
*# 이현선, 「東國正韻 漢字音 淵源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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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선, 「東國正韻 漢字音 淵源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차익종, 「《동국정운》복수음의 문헌 속 단일화 양상」, 『국어학』, Vol 77, 2016, 3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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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익종, 「《동국정운》복수음의 문헌 속 단일화 양상」, 『국어학』, Vol.77, 국어학회, 2016, 33~63쪽.
  
==주석==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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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 12:37 기준 최신판

동국정운
한글팀 동국정운 스캔본 01.jpg
한자명칭 東國正韻
영문명칭 The first book about standard sounds of Chinese. Compiled and published to unify standard sounds of Chinese used in Korea.
작자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간행시기 1447년
소장처 건국대학교 박물관
문화재지정사항 국보 제142호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1.9×19.8㎝
판본 목활자본(大字), 금속활자본(小字)
수량 6책
표기문자 한자, 한글


정의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 표준음에 관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세종의 명에 따라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최항(崔恒, 1409~1474), 박팽년(朴彭年, 1417~1456) 등이 편찬에 참여했고, 1448년 (세종 30)에 6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중국의 표준음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최초로 한글의 음가를 이용해 한자음을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훈민정음』과 함께 국어 연구 자료로서 중요성도 높게 인정되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음운체계 연구에도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어 당시 음운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1]

운서에 대해서

본래 운서(韻書)는 한자의 음을 연구하는 것으로, 한자 음운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기원은 중국 남북조시대로 특히 남조(南朝)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자음(字音)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로 나누어서 고찰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다. 시를 지을 때 운율(韻律)에 민감하였던 남조 사람들은 인도음운학의 영향을 입어서 자음의 사성(四聲)을 구분하여 의식하고, 또 한자들을 운별(韻別)로 분류, 정리하는 법을 마련하였다. 그 법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운서가 발간되었고, 수(隋, 581~618)나라 시기에 이르면 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종류의 운서를 종합하여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바로 중국 운서의 대종이라 일컫는 『절운(切韻)』이다. 이어 당대(唐代,618~907) 이후 『절운(切韻)』을 증보하거나 새로운 운서를 편찬하는 일이 계속되어 『당운(唐韻)』이 만들어졌으며, 송(宋, 960~1279) 시기에는 『광운(廣韻)』, 『예부운략(禮部韻略)』, 『집운(集韻)』, 『고금운회(古今韻會)』 등이 편찬 되었다. 원(元, 1279~1368) 시기에는 『거요(擧要)』, 『중원음운(中原音韻)』등이 있으며, 명대(明, 1368~1644) 초기에는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이 나왔다. 고려 중기에는 문인들이 한시를 짓는 일이 매우 일상적이었으므로 이러한 중국의 음운학 연구와 그와 관련된 서책이 한반도로 전파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으나 확실한 시기는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조선 태종(太宗,1400~1418) 시기에는 『동국약운(東國略韻)』이 간행되었고, 조선 전반기에 『예부운략(禮部韻略)』이 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世宗,1418~1450)은 다른 학문과 함께 운학에도 큰 관심이 있었으며 조예도 깊었다. 세종을 보필하던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또한 운학연구에 있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있었다. 이렇듯 중국에서 전래된 운학을 기초로 세종집현전 학자들의 연구를 더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자음에 대한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고 하여 『동국정운』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2]

동국정운의 편찬과정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등 9인이다. 이들의 분담업무 중 감장(監掌)은 동궁(東宮)에서 하며 그 보좌로는 진양대군안평대군, 주무(主務)는 신숙주성삼문 등이 맡았다. 우리나라 한자음최항박팽년을 중심으로 하고, 중국음에 대한 자문은 조변안김증이 하였다. 교정과 정리는 강희안이 하였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 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첫째 권과 여섯째 권 두 책이 발견되었다. 이들 원본은 현재 간송문고에 있다. 그 뒤 중종(中宗,1506~1544) 때의 문신인 심언광(沈彦光)의 집안에 전해 오던 6권 6책 전질이 1972년에 강릉 심교만(沈敎萬)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간송문고본은 전 6권 가운데 두 책만이 남아 있으나,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제목이 있는 표지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正韻(정운)’이라고 쓰여 있다.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대자(大字)는 목활자(木活字)이고, 소자(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이다. 자체(字體)는 본문 대자가 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묵개(墨蓋)의 음각한 글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 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대학교 소장본은 간송문고본과 같은 인쇄본인데,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背裝)으로 개장하면서 책의 위와 아래를 약간 절단하였고, ‘선사지기’가 없으며, 제전(題箋) 아래에 차례를 나타내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묵서(墨書)로 가필한 점이 다르다. 간송미술관 소장본 『동국정운』은 1958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하였고, 건국대학교 박물관 소장본은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973년에 영인하였다. [3]

지식 관계망

  • 세종의 한글 창제와 서적 편찬에 관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국정운 최항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박팽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이개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강희안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이현로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조변안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김증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신숙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동국정운 성삼문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육법언 운서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운서 고금운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운서 중원음운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운서 홍무정운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운서 동국약운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홍무정운 동국정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국약운 동국정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훈민정음 해례본 동국정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심언광 동국정운 건국대 소장본 A는 B에 의해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심언광 심교만 A는 B의 선조이다 A ekc:hasDescendant B
동국정운 심교만 A는 B에 의해 기증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동국정운 건국대학교 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동국정운 건국대 소장본 건국대학교 출판부 A는 B에 의해 영인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운서 예부운략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행되었다
1447년 동국정운이 간행되었다
1972년 심교만동국정운건국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1973년 동국정운 건국대 소장본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인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40746 127.074664 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동국정운을 소장하였다
37.3537 126.59486 간송미술관에서 동국정운을 소장하였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2쪽.
  2. 강신항, "운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유창균, "동국정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논문
    • 이준환, 「中世·近代·開化期의 韻書 및 字書 편찬의 역사」, 『東洋學』 vol.57,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4, 159~186쪽.
    • 이현선, 「東國正韻 漢字音 淵源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차익종, 「《동국정운》복수음의 문헌 속 단일화 양상」, 『국어학』, Vol.77, 국어학회, 2016, 33~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