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건(함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6번째 줄: | 6번째 줄: | ||
[[서상건(함양)|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조선)|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동원(朴東源)의 딸이다. 세상의 이치가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향촌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묘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에 있는 화장산(花長山)[높이 586m] 까치봉 왼쪽 산기슭에 있다. | [[서상건(함양)|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조선)|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동원(朴東源)의 딸이다. 세상의 이치가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향촌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묘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에 있는 화장산(花長山)[높이 586m] 까치봉 왼쪽 산기슭에 있다. | ||
+ | |||
+ | |||
+ | 『해사유고』 | ||
+ | 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서상건(함양)|서상건]]의 문집. | ||
+ | |||
+ | [[서상건(함양)|서상건]]의 아들 서병욱(徐炳旭)의 발문에 의하면 [[서상건(함양)|서상건]]은 평소 글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남긴 글이 많이 없는데 그마저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잿더미 속에서 찾아낸 몇 편의 글을 엮어 문집을 간행하였다고 한다. [형태/서지] 『해사유고(海史遺稿)』는 2권 1책의 『화음연방고(華陰聯芳稿)』 권2에 들어 있다. 『화음연방고』는 석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6×22.6㎝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은 22.9×16.2㎝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9행 18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
+ | |||
+ | [구성/내용] | ||
+ | |||
+ | 문집은 시, 제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오언절구 15제 33수, 칠언절구 31제 43수, 칠언율시 19수이다. 주변의 경물(景物)을 노래한 시가 많다. 제문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맏형을 애도하며 지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종문(李種文)의 행장, 이성렬(李聖烈)의 묘갈명, 송증헌(宋曾憲)의 묘지명 등이 있다. 발문은 1936년에 아들 서병욱이 지었다. | ||
+ | |||
+ | [의의와 평가] | ||
+ | |||
+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서상건(함양)|서상건]]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문집 분량은 적다. 조선시대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 학자들 대부분이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문집 분량이 적은 편이다. 이에 따라서 남아 있는 시문은 사료 가치가 크다. 특히 [[서상건(함양)|서상건]]의 시는 주로 경물을 노래하고 있어 조선시대 성리학자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 당시 함양 지역 및 그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
2024년 2월 7일 (수) 13:11 판
서상건(徐相建)
아버지: 서인순(徐璘淳, 1835. 4. 17 ~ 1899. 11. 12)
형제는 서상두(徐相斗) 서상엽(徐相曄) 서상건(徐相建) 서상환(徐相懽)
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동원(朴東源)의 딸이다. 세상의 이치가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향촌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묘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에 있는 화장산(花長山)[높이 586m] 까치봉 왼쪽 산기슭에 있다.
『해사유고』
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서상건의 문집.
서상건의 아들 서병욱(徐炳旭)의 발문에 의하면 서상건은 평소 글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남긴 글이 많이 없는데 그마저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잿더미 속에서 찾아낸 몇 편의 글을 엮어 문집을 간행하였다고 한다. [형태/서지] 『해사유고(海史遺稿)』는 2권 1책의 『화음연방고(華陰聯芳稿)』 권2에 들어 있다. 『화음연방고』는 석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6×22.6㎝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은 22.9×16.2㎝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9행 18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문집은 시, 제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오언절구 15제 33수, 칠언절구 31제 43수, 칠언율시 19수이다. 주변의 경물(景物)을 노래한 시가 많다. 제문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맏형을 애도하며 지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종문(李種文)의 행장, 이성렬(李聖烈)의 묘갈명, 송증헌(宋曾憲)의 묘지명 등이 있다. 발문은 1936년에 아들 서병욱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서상건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문집 분량은 적다. 조선시대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 학자들 대부분이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문집 분량이 적은 편이다. 이에 따라서 남아 있는 시문은 사료 가치가 크다. 특히 서상건의 시는 주로 경물을 노래하고 있어 조선시대 성리학자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 당시 함양 지역 및 그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