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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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궤장을 하사할 때에는 반드시 잔치를 해서 삼공(三公)과 육경(六卿), 의정부의 동서반(東西班), 한성판윤, 예조의 참판 및 참의, 낭원(郎員)들이 모두 참여하였으며, 하사 때의 관계 교서(敎書)는 예문관에서 작성하고 주서(注書)가 낭독하였다. 궤장은 공조의 공장(工匠)이 제작하여 승지가 전달하였는데, 궤장을 받은 사람은 그 다음날에 감사하다는 사은문(謝恩文)을 써서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ref>김종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168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 + | 이 그림은 바로 그러한 장면이 세 부분으로 그려져 있는데, 지영궤장도(祗迎几杖圖)는 임금이 내리는 궤장을 맞아들이는 장면, 선독교서도(宣讀敎書圖)는 임금이 내린 교서를 낭독하는 장면, 내외선온도(內外宣醞圖)는 궁중에서 보낸 악사와 무희들이 연주하고 춤추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ref>김종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168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세 장면은 모두 근경에 산수를 그리고, 중경에는 연회하는 모습, 그리고 원경은 청록산수로 표현되었다. 인물들의 동작은 질서가 있고 고정되어 있으며, 건물은 계화(界畵)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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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애,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100462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 *김종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168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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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1일 (금) 05:40 기준 최신판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李景奭 几杖 및 賜几杖 宴會圖 畵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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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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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李景奭 几杖 및 賜几杖 宴會圖 畵帖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번호 | 보물 제930호 |
지정일 | 1987년 12월 26일 |
소장처 | 경기도박물관 |
수량 | 3종 6점(궤 1점, 장 4점, 화첩 1점) |
|
정의
1668년(현종 9) 현종이 이경석(李景奭)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안석 1점과 지팡이 4점, 그리고 이를 받는 장면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사궤장연회도첩(賜几杖宴會圖畵帖) 1점 등 총 6점의 유물.
내용
궤
높이 93㎝, 폭 77.4㎝로 앉을 때만 펴고 평상시 에는 접어둘 수 있게 만든 의자이다. 앉는 곳에는 단단한 노끈을 X자로 엮어 접어두기 편하게 만들었다. 뒤에 몸을 기대는 부분은 괴목으로 가운데 구멍을 뚫었고 등받이 표면을 자작나무의 껍질로 싼 점이 특이하다. [1]
지팡이
지팡이는 길이 189.5㎝의 새 머리가 조각되어 있는 지팡이와 149.5㎝의 칼이 들어있는 지팡이 그리고 총 길이가 141㎝인 삽 모양의 지팡이 2점 등 총 4점이다. 먼저 조두형(鳥頭形) 지팡이 끝부분에는 오리로 생각되는 새머리를 조각해 끼웠고 2곳에 국화꽃의 장식을 단 고리가 있다. 몸통 부분은 직선이고 반대쪽엔 작은 삽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무의 질은 알 수 없으나 매우 가볍고 연하다.[2]
칼이 들어 있는 지팡이의 겉모습은 지팡이 모양이지만 안은 칼이 부착되어 나무로 만든 손잡이 부분을 빼면 칼의 모습이다. 칼날의 길이가 60㎝로 손잡이를 포함하면 총 길이가 80.4㎝이다. 끝부분에는 무쇠 삽이 달려있다. 이 외 2개의 지팡이는 삽 모양으로, 하나는 여름용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 외출용으로 보인다. 긴 막대 끝의 삽 모양과 뾰족한 부분이 무쇠로 되어 있다.[3]
화첩
궤장을 하사할 때에는 반드시 잔치를 해서 삼공(三公)과 육경(六卿), 의정부의 동서반(東西班), 한성판윤, 예조의 참판 및 참의, 낭원(郎員)들이 모두 참여하였으며, 하사 때의 관계 교서(敎書)는 예문관에서 작성하고 주서(注書)가 낭독하였다. 궤장은 공조의 공장(工匠)이 제작하여 승지가 전달하였는데, 궤장을 받은 사람은 그 다음날에 감사하다는 사은문(謝恩文)을 써서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4]
이 그림은 바로 그러한 장면이 세 부분으로 그려져 있는데, 지영궤장도(祗迎几杖圖)는 임금이 내리는 궤장을 맞아들이는 장면, 선독교서도(宣讀敎書圖)는 임금이 내린 교서를 낭독하는 장면, 내외선온도(內外宣醞圖)는 궁중에서 보낸 악사와 무희들이 연주하고 춤추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5]
세 장면은 모두 근경에 산수를 그리고, 중경에는 연회하는 모습, 그리고 원경은 청록산수로 표현되었다. 인물들의 동작은 질서가 있고 고정되어 있으며, 건물은 계화(界畵)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색채는 호화로운 당채(唐彩)를 써서 거의 탈색되지 않았다. 그림의 양식 수법으로 보아 당시의 수준 있는 화원의 작품으로 생각된다.[6]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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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 조선 현종 | A는 B와 관련있다 | |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 이경석 | A는 B와 관련있다 | |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 경기도박물관 | A는 B에 있다 | |
영암_도갑사_도선국사_수미선사비 | 이경석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주석
- ↑ 이완주,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김영애,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영애,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종태,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종태,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종태,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이완주,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김영애,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종태,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