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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서씨]] 정려는 판중추부사 문정공 [[서준보]]의 딸인 [[대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 + | [[대구 서씨]](大丘 徐氏) 정려는 판중추부사 문정공 [[서준보]]의 딸인 [[대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
− | [[대구 서씨]]는 1810년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남편 조두순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1871년 현재의 위치에 정려각을 세워 열행을 기리고 있다. | + | [[대구 서씨]](大丘 徐氏)는 1810년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남편 조두순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1871년 현재의 위치에 정려각을 세워 열행을 기리고 있다. |
이 정려각은 일반 정려각과 달리 앞면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 정려각은 일반 정려각과 달리 앞면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2022년 9월 26일 (월) 21:00 판
대구서씨 정려(大丘 徐氏)
대구 서씨(大丘 徐氏) 정려는 판중추부사 문정공 서준보의 딸인 대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대구 서씨(大丘 徐氏)는 1810년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남편 조두순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1871년 현재의 위치에 정려각을 세워 열행을 기리고 있다.
이 정려각은 일반 정려각과 달리 앞면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