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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사왕의 아들(성명 미상)과 손자 도두(都頭)가 갈사부여의 왕을 지냈고, 손녀는 대무신왕의 차비(次妃)로 들어가 호동을 낳았다.
 
갈사왕의 아들(성명 미상)과 손자 도두(都頭)가 갈사부여의 왕을 지냈고, 손녀는 대무신왕의 차비(次妃)로 들어가 호동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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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왕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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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東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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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왕]](解慕漱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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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왕]](解夫婁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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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왕]](解金蛙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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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왕]](解帶素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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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사왕]](解曷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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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解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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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태왕]](解夫台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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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解尉仇台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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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위거왕]](解簡位居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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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여왕]](解麻余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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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왕]](解依慮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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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라왕]](解依羅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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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왕]](玄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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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扶餘蔚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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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왕]](孱王)

2022년 9월 3일 (토) 23:38 판

갈사왕(解曷思王)


갈사왕(曷思王, 생몰년 미상, 재위 : 서기22년 음력 4월~ ?)은 갈사부여의 왕으로, 성은 해(解)이고,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동부여의 백성들과 자신의 무리들을 데리고 갈사수로 가서 세운 국가여서 갈사부여국이다. 왕호또한 전해지지않아서 갈사부여를 세웠기에 갈사왕이라 불린다.

갈사왕은 금와왕의 막내 아들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고구려의 대무신왕에 의해 대소왕이 죽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대소왕의 동생이었던 갈사왕은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예감하고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피난하였다. 압록곡(鴨淥谷)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해두국왕(海頭國王)이 사냥 나온 것을 발견하여 그를 죽이고 백성을 빼앗아 22년 음력 4월 갈사수(曷思水) 가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 나라를 갈사국 또는 갈사부여라 부른다.

갈사왕의 아들(성명 미상)과 손자 도두(都頭)가 갈사부여의 왕을 지냈고, 손녀는 대무신왕의 차비(次妃)로 들어가 호동을 낳았다.


부여왕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