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번째 줄: 2번째 줄:
  
 
[[부여 서씨]](扶餘)의 선조 서수손(徐秀孫)
 
[[부여 서씨]](扶餘)의 선조 서수손(徐秀孫)
 +
 +
 +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첫째(혹은 셋째 아들이라고도 함, 아직도 학계의 설이 분분함) 아들 [[부여융]](扶餘隆)이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羅唐) 연합군에 패한 뒤에 멸망되어 [[의자왕]]과 태자 등 2,000여명은 당나라에 압송되었다. 당나라 고종은 [[의자왕]]에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품계를 내리고, 아들 [[부여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부여 서씨]]의 문호는 열렸으나, 그 후 세계는 알 수 없었는데 서융의 원손으로 고려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태원군(太源君)에 봉해진 [[이천서씨]] 5세손 아간대부 [[서신일]] 후손인 [[서존]](徐存)을 1세조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서존의 11대손은 [[서수손]](徐秀孫)이다.

2022년 8월 21일 (일) 17:00 판

승사랑(承仕郞)

부여 서씨(扶餘)의 선조 서수손(徐秀孫)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첫째(혹은 셋째 아들이라고도 함, 아직도 학계의 설이 분분함) 아들 부여융(扶餘隆)이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羅唐) 연합군에 패한 뒤에 멸망되어 의자왕과 태자 등 2,000여명은 당나라에 압송되었다. 당나라 고종은 의자왕에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품계를 내리고, 아들 부여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부여 서씨의 문호는 열렸으나, 그 후 세계는 알 수 없었는데 서융의 원손으로 고려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태원군(太源君)에 봉해진 이천서씨 5세손 아간대부 서신일 후손인 서존(徐存)을 1세조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서존의 11대손은 서수손(徐秀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