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발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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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太祖實錄)등에 아기발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太祖實錄)등에 아기발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 ||
{{blockquote|"나이 겨우 15, 16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한 적장은,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빠르고 날래기가 비할 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려와서 충돌하니, 향하는 곳마다 쫓기고 쓰러져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이 아기발도(阿只拔都)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태조가 그 용맹하고 날쌤을 애석하게 여겨 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두란이 여쭈어 말하기를, '만일 생포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상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까지 갑옷을 입어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쏴라.' 하고, 드디어 말을 달려 나가며 쏘니, 바로 투구 꼭지를 맞혔다. 투구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자, 그 자가 급히 바로 썼다. 태조가 곧 쏘아서 또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 죽이니, 그제서야 적의 기운이 꺾였다."|출처="[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294A_0320_010_0020&solrQ=query%E2%80%A0%EC%95%84%EA%B8%B0%EB%B0%9C%EB%8F%84$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BT_AA$solr_toalCount%E2%80%A017$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BT_1294A_0320_010_0020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고려사절요,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고전종합DB』<sup>online</sup></online>, 한국고전번역원.</html>}} | {{blockquote|"나이 겨우 15, 16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한 적장은,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빠르고 날래기가 비할 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려와서 충돌하니, 향하는 곳마다 쫓기고 쓰러져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이 아기발도(阿只拔都)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태조가 그 용맹하고 날쌤을 애석하게 여겨 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두란이 여쭈어 말하기를, '만일 생포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상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까지 갑옷을 입어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쏴라.' 하고, 드디어 말을 달려 나가며 쏘니, 바로 투구 꼭지를 맞혔다. 투구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자, 그 자가 급히 바로 썼다. 태조가 곧 쏘아서 또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 죽이니, 그제서야 적의 기운이 꺾였다."|출처="[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294A_0320_010_0020&solrQ=query%E2%80%A0%EC%95%84%EA%B8%B0%EB%B0%9C%EB%8F%84$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BT_AA$solr_toalCount%E2%80%A017$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BT_1294A_0320_010_0020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고려사절요,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고전종합DB』<sup>online</sup></online>, 한국고전번역원.</html>}} | ||
− | 이 내용으로 볼 때 아기발도는 1380년 경 [[진포대첩]], [[황산대첩]] 등의 전투에서 활약한 왜구 측 장수로, 당시 고려군을 지휘하였던 [[조선 태조|이성계]]에 의해 죽었다. 이후 전의를 잃은 왜구는 고려군에게 대부분이 | + | 이 내용으로 볼 때 아기발도는 1380년 경 [[진포대첩]], [[황산대첩]] 등의 전투에서 활약한 왜구 측 장수로, 당시 고려군을 지휘하였던 [[조선 태조|이성계]]에 의해 죽었다. 이후 전의를 잃은 왜구는 고려군에게 대부분이 진압되었고 지리산(智異山)까지 달아난 왜구는 70명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張維, 1587-1638)는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에서 "운봉현 동쪽 10리쯤 가면 [[황산]](荒山)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위에 있는 사방 몇 장이 되고 보랏빛으로 피가 스민 듯한 빛이 도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당시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에 맞고 흘린 피가 스며든 곳이다."는 전승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의 남원시 인월면의 남천 강변에 남아있는 피바위가 그것이다.<ref>위키백과 기여자,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A7%80%EB%B0%9C%EB%8F%84#cite_ref-2 아지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17년 9월 22일.</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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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2일 (금) 17:21 기준 최신판
아기발도(阿其拔都) | |
대표명칭 | 아기발도 |
---|---|
한자표기 | 阿其拔都 |
생몰년 | -1380년 |
이칭 | 아기바투(兒只拔都),아지발도(阿只抜都) |
사망지 | 전북 남원 |
시대 | 고려 말 |
국적 | 일본 |
유형 | 장수 |
정의
고려말 한반도로 쳐들어온 왜구의 소년 수장이다.[1]
내용
아지발도(阿只抜都)라는 이름은 고려군이 붙인 것으로 정식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지발도의 명칭을 한국어의 '아기'와 몽골어 '바토르(용맹한 자)'의 한자 음차표기인 '발도'가 합쳐진 것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2]
문헌기록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太祖實錄)등에 아기발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나이 겨우 15, 16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한 적장은,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빠르고 날래기가 비할 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려와서 충돌하니, 향하는 곳마다 쫓기고 쓰러져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이 아기발도(阿只拔都)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태조가 그 용맹하고 날쌤을 애석하게 여겨 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두란이 여쭈어 말하기를, '만일 생포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상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까지 갑옷을 입어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쏴라.' 하고, 드디어 말을 달려 나가며 쏘니, 바로 투구 꼭지를 맞혔다. 투구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자, 그 자가 급히 바로 썼다. 태조가 곧 쏘아서 또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 죽이니, 그제서야 적의 기운이 꺾였다." | ||
출처: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고려사절요, |
이 내용으로 볼 때 아기발도는 1380년 경 진포대첩, 황산대첩 등의 전투에서 활약한 왜구 측 장수로, 당시 고려군을 지휘하였던 이성계에 의해 죽었다. 이후 전의를 잃은 왜구는 고려군에게 대부분이 진압되었고 지리산(智異山)까지 달아난 왜구는 70명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張維, 1587-1638)는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에서 "운봉현 동쪽 10리쯤 가면 황산(荒山)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위에 있는 사방 몇 장이 되고 보랏빛으로 피가 스민 듯한 빛이 도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당시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에 맞고 흘린 피가 스며든 곳이다."는 전승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의 남원시 인월면의 남천 강변에 남아있는 피바위가 그것이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진포대첩 | 황산대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최무선 | 진포대첩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조선 태조 | 황산대첩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아기발도 | 황산대첩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아기발도 | 조선 태조 | A는 B와 대립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아기발도 | 최무선 | A는 B와 대립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아기발도 | 고려사절요 | A는 B에 언급되었다 | A ekc:isMentionedIn B |
아기발도 | 조선왕조실록 | A는 B에 언급되었다 | A ekc:isMentionedIn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아기바투, 아기발도",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위키백과 기여자, "아지발도",
『위키백과』online , 작성일: 2017년 9월 22일. - ↑ 위키백과 기여자, "아지발도",
『위키백과』online , 작성일: 2017년 9월 22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아기바투, 아기발도",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고려사절요,
『한국고전종합DB』online , 한국고전번역원. - "태조가 대규모의 병력으로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니 한산군 이색 등이 시를 지어 치하하다",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online , 한국고전번역원. - 위키백과 기여자, "아지발도",
『위키백과』online , 작성일: 2017년 9월 22일.
- "아기바투, 아기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