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부교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참고문헌)
(내용)
 
(사용자 3명의 중간 판 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7번째 줄: 17번째 줄:
  
 
=='''정의'''==
 
=='''정의'''==
[[고려 태조]] 때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 50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어놓아 굶어 죽게 한 사건.
+
[[고려 태조]] 때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 50필을 굶겨 죽인 사건이다.
  
 
=='''내용'''==
 
=='''내용'''==
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保定門)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橐駝橋)라고 불렸다 한다. 926년([[고려 태조|태조]] 9)에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어가던 중 942년([[고려 태조|태조]] 25)에는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쳐왔다.<ref>이익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7609 만북교 사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그러나 [[고려 태조]]는 '거란은 구맹(舊盟)을 돌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발해를 쳐 멸한 무도한 나라이므로 결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신 30명은 섬으로 귀양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 매달아 굶어죽게 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8523&cid=42957&categoryId=42957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保定門)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橐駝橋)라고 불렸다 한다. 926년([[고려 태조|고려 태조]] 9)에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어가던 중 942년([[고려 태조|태조]] 25)에는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쳐왔다.<ref>이익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7609 만북교 사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그러나 [[고려 태조]]는 '거란은 구맹(舊盟)을 돌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발해를 쳐 멸한 무도한 나라이므로 결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신 30명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 매어놓고 굶어죽게 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8523&cid=42957&categoryId=42957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국교는 단절되었으며 이후에도 고려에서는 거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했다. 태조는 이듬해 지어진 「훈요10조」 가운데서도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여 그 언어와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고려 태조가 이와 같이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사실에 대해 분노를 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태조의 북진정책의 의지가 이러한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도 보인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8523&cid=42957&categoryId=42957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국교는 단절되었으며 이후에도 고려에서는 거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했다. 태조는 이듬해 지어진 「훈요10조」에서도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여 그 언어와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경고하였다. 고려 태조가 이와 같이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사실에 대한 분노와 함께 태조의 북진정책의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도 보인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8523&cid=42957&categoryId=42957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지식관계망'''==
 +
* '''고려 태조 지식관계망'''
 +
<html>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E024/E024.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html>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관계정보===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43번째 줄: 49번째 줄:
  
  
[[분류:역사인물초상화]] [[분류:사건]]
+
[[분류:역사인물초상화]]
 +
[[분류:역사인물초상화 문맥]]
 +
[[분류:역사인물초상화 문맥 사건]]
 +
[[분류:사건]]

2018년 1월 9일 (화) 23:40 기준 최신판

만부교 사건(萬夫橋 事件)
대표명칭 만부교 사건
한자표기 萬夫橋 事件
유형 사건
시대 고려시대
날짜 942년
관련인물 고려 태조



정의

고려 태조 때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 50필을 굶겨 죽인 사건이다.

내용

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保定門)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橐駝橋)라고 불렸다 한다. 926년(고려 태조 9)에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어가던 중 942년(태조 25)에는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쳐왔다.[1] 그러나 고려 태조는 '거란은 구맹(舊盟)을 돌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발해를 쳐 멸한 무도한 나라이므로 결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신 30명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 매어놓고 굶어죽게 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2]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국교는 단절되었으며 이후에도 고려에서는 거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했다. 태조는 이듬해 지어진 「훈요10조」에서도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여 그 언어와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경고하였다. 고려 태조가 이와 같이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사실에 대한 분노와 함께 태조의 북진정책의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도 보인다.[3]

지식관계망

  • 고려 태조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이익주, "만북교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만부교 사건",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이익주, "만북교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