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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수) 00:05 기준 최신판
진도 굴포당(珍島 掘浦堂) | |
대표명칭 | 진도 굴포당 |
---|---|
한자표기 | 珍島 掘浦堂 |
이칭 | 굴포당 |
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
관련유물유적 | 진도 정충사 |
목차
정의
정월 보름에 동제를 모셨던 제당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다.
내용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제사인 당제를 지내왔으나, 2005년부터는 지내지 않는다. 당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당을 이곳에서는 당집이라고 부르는데, 당집은 본래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 두 곳이었으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 있다.
제당은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 두 곳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할아버지당은 굴포리 마을 위쪽에 있고, 지금은 사라진 할머니당은 마을 입구에 있었다.
[1]
건립경위
당집 앞에 세워진 굴포신당유적비(掘浦神堂遺蹟碑)에 당을 짓고 당제를 지내게 된 내력을 밝혀놓고 있다. 삼별초 장군이었던 배중손과 김통정이 몽고군에 대항해서 싸움을 하는 동안 많은 전몰장병이 생겼는데, 이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소나무와 귀목나무를 심고 제당을 지어 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2]
변천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은 원래 모두 초가로 된 단칸집이었다. 한때 할아버지당은 태풍으로 인해 무너지기도 했는데 1986년에 두 당집 모두 개수하였다. 그 때 할아버지 당집 앞에는 조경을 위하여 인조목재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두 장승을 세웠다. 굴포신당유적비를 통해서도 1986년 개수할 때 신당과 함께 장승을 세웠음을 알 수 있지만, 현재 장승은 없다.[3]
형태
현재 할아버지당은 대문채를 갖춘 단칸집이며, 대문채와 당집 모두 맞배기와지붕이다. 할머니당이 있던 곳에는 현재 정충사(精忠祠)라고 하는 배중손 사당이 세워져 있다. 사당 옆에는 '굴포신당유적비'를 세워 그곳이 당제를 모시던 할머니당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4]
현황
현재는 마을 위쪽에 남은 할아버지당에서 정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있다. 부근에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 굴포에 원뚝을 막아 개간지를 만들 때 심었다고 전하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진도 굴포당 | 배중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진도 굴포당 | 삼별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진도 남도석성 | 진도 굴포당 | A는 B와 인접해 있다 | A ekc:isNear B |
진도 정충사 | 진도 굴포당 | A는 B와 인접해 있다 | A ekc:isNear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굴포당 정면 사진[6]
영상
주석
- ↑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나경수,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나경수, "굴포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나경수, "굴포당",
유용한 정보
- "굴포당",
『doopedia』online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