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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2년(조선 고종 | + | 1882년(조선 고종 19) 1월 20일, 왕세자 척의 [[관례]]를 치를 때 상차림을 적은 음식 [[발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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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 ||
− | + | 본 발기에는 관례의 주인공으로 후에 순종이 되는 왕세자를 비롯하여 양전마마, 자전마마, 왕대비마마, 순화자가, 대감, 본궁마마, 60명의 손님, 공사청, 궁내인 등의 상에 올린 음식을 수록하고 있다. 양전은 [[조선 고종 | 고종]]과 [[명성황후|중전 민씨]]이며 자전은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이다. 왕대비는 [[효정왕후 홍씨]]이고, 순화자가는 순화궁 [[경빈 김씨]]이며, 대감은 [[흥선대원군|흥선대원군 이하응]], 본궁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 |
− | 본 발기에는 관례의 | ||
발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위에 따라 차려진 음식의 가짓수를 달리 하고, 상차림에 잔치의 의미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왕세자의 상에는 모두 19개 그릇에 서른다섯 가지의 음식이 차려졌는데, 특히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음식을 높이 고여 쌓아 올렸다. 이와 달리 양전을 비롯한 왕실어른들 상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와 함께 청포묵을 올렸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0쪽.</REF> | 발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위에 따라 차려진 음식의 가짓수를 달리 하고, 상차림에 잔치의 의미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왕세자의 상에는 모두 19개 그릇에 서른다섯 가지의 음식이 차려졌는데, 특히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음식을 높이 고여 쌓아 올렸다. 이와 달리 양전을 비롯한 왕실어른들 상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와 함께 청포묵을 올렸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0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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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ᄇᆞᆯ기', '건긔', '단자'</span>,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쓰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ᄇᆞᆯ기', '건긔', '단자'</span>,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쓰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ref>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ref> | ||
− | ===혼례의 한 | + | ===혼례의 한 절차가 된 관례=== |
왕실의 혼례는 사가(私家:민가, 어염집, 가정집)에서 왕비나 왕세자비, 혹은 부마(駙馬:왕의 사위, 공주의 남편)를 뽑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초간택(初揀擇)·재간택(再揀擇)·삼간택(三揀擇)의 세 번에 걸친 선출 의례가 있으며, 아직 [[관례]](冠禮:남성의 성인식, 상투를 틀고 갓을 씀)나 [[계례]](笄禮:여성의 성인식, 머리에 비녀를 꽂음)를 치르지 않은 왕자나 공주는 이 과정 중에 성인의례를 치른다.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41쪽.</ref> | 왕실의 혼례는 사가(私家:민가, 어염집, 가정집)에서 왕비나 왕세자비, 혹은 부마(駙馬:왕의 사위, 공주의 남편)를 뽑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초간택(初揀擇)·재간택(再揀擇)·삼간택(三揀擇)의 세 번에 걸친 선출 의례가 있으며, 아직 [[관례]](冠禮:남성의 성인식, 상투를 틀고 갓을 씀)나 [[계례]](笄禮:여성의 성인식, 머리에 비녀를 꽂음)를 치르지 않은 왕자나 공주는 이 과정 중에 성인의례를 치른다.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41쪽.</ref> | ||
− | '관혼상제(冠婚喪祭)'의 | + | 조선시대 일생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절차에 비추어보면 관례나 계례는 혼인절차와 무관한 듯하지만, 실제로 왕실에서나 사가에서는 혼례식 전에 관례 혹은 계례를 치렀다. 이런 관습으로 관례나 계례는 혼례의 한 절차가 되었다.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도 이와 같이 왕세자가 혼인을 앞두고 치른 관례의 상차림을 기록한 문서이다.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41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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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특징===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특징=== |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뒷면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임오졍월쳔만셰동궁마마관녜ᄇᆞᆯ시어상긔</span>』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같은 내용을 한문으로 적은『[[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壬午正月千萬世東宮媽媽嘉禮時御床記)]]』도 있다. 두 문서 모두 제목에서 '어상(御床)'이라 적었다. 어상이란 명절이나 경축일에 왕이 받는 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ref>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뒷면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임오졍월쳔만셰동궁마마관녜ᄇᆞᆯ시어상긔</span>』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같은 내용을 한문으로 적은『[[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壬午正月千萬世東宮媽媽嘉禮時御床記)]]』도 있다. 두 문서 모두 제목에서 '어상(御床)'이라 적었다. 어상이란 명절이나 경축일에 왕이 받는 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ref> | ||
− | 일반적으로 한글의 왕실발기는 궁녀가, 한자 왕실발기는 남자가 작성하였다고 | + | 일반적으로 한글의 왕실발기는 궁녀가, 한자 왕실발기는 남자가 작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한글 왕실발기는 수정부분이 있지만 한문 왕실발기는 수정부분이 없다. 또 한글 왕실발기는 제목에서 '관례시어상발기'로 행사의 명칭을 밝혔으나 한문 왕실발기는 '가례시어상기'라고 하여 관례를 [[가례]](혼례)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를 보아 상차림의 구성을 궁녀들이 먼저 한글로 적어두었고 행사가 끝난 후 남성에 의해 한자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ref>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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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환, 김봉좌, 이명은, 이민주, 이욱, 이은주, 이지영, 전경목, 차경희, 『1882년 왕세자 관례 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 *#황문환, 김봉좌, 이명은, 이민주, 이욱, 이은주, 이지영, 전경목, 차경희, 『1882년 왕세자 관례 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 ||
*논문 | *논문 | ||
− | *#이민주, 「궁중발기를 통해 본 왕실의 복식문화–임오가례시 생산체제를 중심으로」, | + | *#이민주, 「궁중발기를 통해 본 왕실의 복식문화–임오가례시 생산체제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14, 한복문화학회, 2011. |
*#김봉좌, 「조선시대 유교의례 관련 한글문헌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 *#김봉좌, 「조선시대 유교의례 관련 한글문헌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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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 ===유용한 정보=== | ||
*이정민, 김향숙, 이지영, 박보연, '[http://archive.hansik.org/bibliography/royal/item/chosun_royal_book__age/20/6481/ 임오 정월 천만세 동궁마마 관례시 어상 발기]', 「조선시대 궁중음식 고문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식아카이브』<sup>online</sup></online></html>. 한식재단. | *이정민, 김향숙, 이지영, 박보연, '[http://archive.hansik.org/bibliography/royal/item/chosun_royal_book__age/20/6481/ 임오 정월 천만세 동궁마마 관례시 어상 발기]', 「조선시대 궁중음식 고문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식아카이브』<sup>online</sup></online></html>. 한식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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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헌]] | [[분류:문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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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화) 19:11 기준 최신판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
한자명칭 | 壬午正月千萬世東宮媽媽嘉禮時御床記 |
---|---|
영문명칭 | A list of food and table setting for the coming-of age celebration of Sunjong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82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1332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25.5×347.7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882년(조선 고종 19) 1월 20일, 왕세자 척의 관례를 치를 때 상차림을 적은 음식 발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본 발기에는 관례의 주인공으로 후에 순종이 되는 왕세자를 비롯하여 양전마마, 자전마마, 왕대비마마, 순화자가, 대감, 본궁마마, 60명의 손님, 공사청, 궁내인 등의 상에 올린 음식을 수록하고 있다. 양전은 고종과 중전 민씨이며 자전은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이다. 왕대비는 효정왕후 홍씨이고, 순화자가는 순화궁 경빈 김씨이며, 대감은 흥선대원군 이하응, 본궁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발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위에 따라 차려진 음식의 가짓수를 달리 하고, 상차림에 잔치의 의미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왕세자의 상에는 모두 19개 그릇에 서른다섯 가지의 음식이 차려졌는데, 특히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음식을 높이 고여 쌓아 올렸다. 이와 달리 양전을 비롯한 왕실어른들 상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와 함께 청포묵을 올렸다. [1]
발기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ᄇᆞᆯ기', '건긔', '단자',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쓰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2]
혼례의 한 절차가 된 관례
왕실의 혼례는 사가(私家:민가, 어염집, 가정집)에서 왕비나 왕세자비, 혹은 부마(駙馬:왕의 사위, 공주의 남편)를 뽑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초간택(初揀擇)·재간택(再揀擇)·삼간택(三揀擇)의 세 번에 걸친 선출 의례가 있으며, 아직 관례(冠禮:남성의 성인식, 상투를 틀고 갓을 씀)나 계례(笄禮:여성의 성인식, 머리에 비녀를 꽂음)를 치르지 않은 왕자나 공주는 이 과정 중에 성인의례를 치른다. [3]
조선시대 일생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절차에 비추어보면 관례나 계례는 혼인절차와 무관한 듯하지만, 실제로 왕실에서나 사가에서는 혼례식 전에 관례 혹은 계례를 치렀다. 이런 관습으로 관례나 계례는 혼례의 한 절차가 되었다.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도 이와 같이 왕세자가 혼인을 앞두고 치른 관례의 상차림을 기록한 문서이다. [4]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특징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의 뒷면에 『임오졍월쳔만셰동궁마마관녜ᄇᆞᆯ시어상긔』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같은 내용을 한문으로 적은『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壬午正月千萬世東宮媽媽嘉禮時御床記)』도 있다. 두 문서 모두 제목에서 '어상(御床)'이라 적었다. 어상이란 명절이나 경축일에 왕이 받는 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5]
일반적으로 한글의 왕실발기는 궁녀가, 한자 왕실발기는 남자가 작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한글 왕실발기는 수정부분이 있지만 한문 왕실발기는 수정부분이 없다. 또 한글 왕실발기는 제목에서 '관례시어상발기'로 행사의 명칭을 밝혔으나 한문 왕실발기는 '가례시어상기'라고 하여 관례를 가례(혼례)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를 보아 상차림의 구성을 궁녀들이 먼저 한글로 적어두었고 행사가 끝난 후 남성에 의해 한자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6]
연계 자원 보러 가기 |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해독) |
지식 관계망
-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순종 관례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종 관례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조선 순종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순명효황후 민씨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순명효황후 민씨 | 조선 순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조선 고종 | 조선 순종 | A는 아들 B를 두었다 | A ekc:hasSon B |
명성황후 민씨 | 조선 고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신정왕후 조씨 | 효명세자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효명세자 | 조선 헌종 | A는 아버지 B가 있다 | A ekc:hasFather B |
조선 헌종 | 조선 고종 | A는 B의 선조이다 | A ekc:hasDescendant B |
효정왕후 홍씨 | 조선 헌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경빈 김씨 | 조선 헌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흥선대원군 이하응 | 조선 고종 | A는 아들 B를 두었다 | A ekc:hasSon B |
여흥부대부인 민씨 | 흥선대원군 이하응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순종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고종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중전 민씨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신정왕후 조씨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경빈 김씨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흥선대원군 이하응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여흥부대부인 민씨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효정황후 홍씨 | 순종 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조선 순종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조선 고종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명성황후 민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신정왕후 조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경빈 김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흥선대원군 이하응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여흥부대부인 민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효정왕후 홍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임오정월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어상기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A는 B의 한역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82년 |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가 저술되었다. |
1882년 | 순종 관례가 시행되었다 |
1882년 |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가 시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을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0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41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41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58-365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궁중음식고문헌연구단, 『조선왕조 궁중음식 고문헌 아카이브 구축 결과보고서/조선왕조 궁중음식 고문헌 자료집 4/음식발기류 상세해제 자료집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 황문환, 김봉좌, 이명은, 이민주, 이욱, 이은주, 이지영, 전경목, 차경희, 『1882년 왕세자 관례 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 논문
- 이민주, 「궁중발기를 통해 본 왕실의 복식문화–임오가례시 생산체제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14, 한복문화학회, 2011.
- 김봉좌, 「조선시대 유교의례 관련 한글문헌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유용한 정보
- 이정민, 김향숙, 이지영, 박보연, '임오 정월 천만세 동궁마마 관례시 어상 발기', 「조선시대 궁중음식 고문헌」,
『한식아카이브』online . 한식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