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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제목은『학봉선조행장(鶴峯先祖行狀)』, 권수제는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학봉김션장</span>』이다. 표지 안의 면지에는 이 책의 편찬 경위에 관한 기록이 있다. "경인년 10월 19일에 책으로 장황하여 다섯째 딸 [[김은실|은실]]에게 주노라. 아비(着名). 중요한 행장이니 애중하고 함부로 내돌리지 말아라. 교정을 미처 못했으니 잘못 쓴 곳이 많으리라."라는 내용이다. 이 기록에 포함된 착명(着名) 즉 오늘날의 서명(Sign)을 통해 글쓴이가 [[김주국]](金柱國, 1710~1771)임을 추정할 수 있다. 다섯째 딸은 [[손성건]](孫星建)에게 시집간 딸을 가리킨다. | |
− |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 + |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경인년 1월 12일 진시 필서"라고 하여 한글로 필사한 시기를 기록해 두었다. 한글로 기록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행장은 1617년(광해군 9) 10월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지은 글을 번역한 것이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88쪽.</REF> |
− | ===행장(行狀)=== | + | ===행장(行狀)의 기원=== |
− | 행장(行狀)이란 한문 문체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 + | 행장(行狀)이란 한문 문체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망자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망자의 세계(世系), 성명, 자호, 관향(貫鄕), 관작(官爵), 생졸연월, 자손록 및 평소의 언행 등을 서술한 것들이다. 행장을 적는 기본 목적은 후일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또는 망자의 명문(銘文)·만장·비지·전기 등을 제작하는 데에 자료로 제공하려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행장의 기원은 한대(漢代) [[호간|호간(胡幹)]]이 [[양원백|양원백(揚元伯)]]의 행장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고, 육조(六朝) 시기에 이르러서야 행장 체제가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역사가 조선 전기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속동문선|속동문선(續東文選)]]』이 있는데 여기에 「[[광릉부원군 이극배 행장(廣陵府院君李克培行狀)]]」이나 「[[충정공 허종 행장(忠貞公許琮行狀)]]」등이 나타난 것이다.<ref>김도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834 행장(行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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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내용이 장황해지고 번다하게 많이 쓰는 것이 좋은 행장으로 인식되어 주소(奏疏)의 시말(始末), 사건의 배경, 그 의론(議論)과 행동거지의 철학적 근거, 이단(異端)을 배격해야 하는 이유, 심지어는 공초(供招)에 대한 내용과 그 의리의 타당성까지 세세하게 적어 그 양이 책 한 권 분량이나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 ||
+ | 행장의 방대한 형태로 변화된 것은 송대(宋代) [[황간|황간(黃幹)]]이 스승 [[주자|주자(朱子)]]의 행장을 장장 40여 장이나 쓴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 이유는 [[주자]]의 거취는 바로 세도(世道)의 흥망과 직결되며 후학의 준거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장의 규모와는 같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황간]]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황간]]보다 더 갑절이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행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허목|허목(許穆)]]은 "행장이란 그 행적을 쓰는 것이다. 나를 [[주공|주공(周公)]]·[[공자|공자(孔子)]]라 하여도 나는 [[주공]]·[[공자]]가 아니며, 나를 [[정자|정자(程子)]]·[[주자]]라 하여도 나는 [[정자]]·[[주자]]가 아니다. 살았을 때에 [[주공]]·[[공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죽어 지하에서 [[주공]]·[[공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당시의 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행장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사람에 따라 또는 학파에 따라 초기의 전통을 고집하기도 하였다.<ref>김도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834 행장(行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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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봉가문의 예법=== | ||
+ | [[학봉 행장 언해]]의 내용에서 학봉가문(鶴峯家門)의 예법론 자체가 일반 사대부 가문과 차이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학봉 가문에서 추구하는 예법의 대상범위는 남성 사대부는 물론이고 여성도 중요한 교육의 대상으로 여겼고 심지어 노비들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김성일]] 본인이 이런 가풍을 지키려 노력했다. [[김성일]]은 혼인 이후 40년 동안 부인 안동권씨를 '소심경외(小心敬畏:조심하며 공경하는 마음)'하며 예(禮)로써 대했고,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도 반드시 상의하여 처리함으로써 집안의 질서와 법도가 반듯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1592년 12월 24일 김성일이 산음에서 [[학봉_김성일이_아내_안동권씨에게_보낸_편지|안동 납실 본가로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가문 학풍은 7세손인 [[김주국]]에게도 이어져 학봉행장을 언해하여 [[학봉 행장 언해]]를 만들고 [[학봉 행장 언해]]를 시집간 다섯째 딸 은실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 9세손 [[김종수]]는 『[[여자초학|여자초학(女子初學)]]』이라는 교재를 직접 집필하였다. 이 책은 자신의 장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학봉가문에서는 이 책으로 여성을 교육시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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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dh.aks.ac.kr/Encyves/Graph/A142/A142.htm 김주국의 편지 지식관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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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용(역), 『학봉전집』, 「학봉집 부록」 2권 | + | **정선용(역), 『학봉전집』, 「학봉집 부록」 2권. 온라인 참조: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gv002&muncheId=01&finId=001 행장(行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고전종합 DB』<sup>online</sup></online></html>, 한국고전번역원. |
===유용한 정보=== | ===유용한 정보=== | ||
− | *김도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834 행장(行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김도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834 행장(行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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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한글고문서]][[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
2017년 12월 10일 (일) 23:05 기준 최신판
학봉 행장 언해 | |
한자명칭 | 鶴峯行狀諺解 |
---|---|
영문명칭 | A Korean annotation of the behaviors of Kim Seongil written by Kim Juguk for his daughter |
작자 | 김주국 |
간행시기 | 1770년 |
소장처 | 의성김씨 학봉종택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0.2×20.9㎝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770년(조선 영조 46)에 김주국이 막내딸을 위하여 선조 학봉선생의 행장을 한글로 번역하고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제목은『학봉선조행장(鶴峯先祖行狀)』, 권수제는 『학봉김션장』이다. 표지 안의 면지에는 이 책의 편찬 경위에 관한 기록이 있다. "경인년 10월 19일에 책으로 장황하여 다섯째 딸 은실에게 주노라. 아비(着名). 중요한 행장이니 애중하고 함부로 내돌리지 말아라. 교정을 미처 못했으니 잘못 쓴 곳이 많으리라."라는 내용이다. 이 기록에 포함된 착명(着名) 즉 오늘날의 서명(Sign)을 통해 글쓴이가 김주국(金柱國, 1710~1771)임을 추정할 수 있다. 다섯째 딸은 손성건(孫星建)에게 시집간 딸을 가리킨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경인년 1월 12일 진시 필서"라고 하여 한글로 필사한 시기를 기록해 두었다. 한글로 기록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행장은 1617년(광해군 9) 10월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지은 글을 번역한 것이다. [1]
행장(行狀)의 기원
행장(行狀)이란 한문 문체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망자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망자의 세계(世系), 성명, 자호, 관향(貫鄕), 관작(官爵), 생졸연월, 자손록 및 평소의 언행 등을 서술한 것들이다. 행장을 적는 기본 목적은 후일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또는 망자의 명문(銘文)·만장·비지·전기 등을 제작하는 데에 자료로 제공하려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행장의 기원은 한대(漢代) 호간(胡幹)이 양원백(揚元伯)의 행장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고, 육조(六朝) 시기에 이르러서야 행장 체제가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역사가 조선 전기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속동문선(續東文選)』이 있는데 여기에 「광릉부원군 이극배 행장(廣陵府院君李克培行狀)」이나 「충정공 허종 행장(忠貞公許琮行狀)」등이 나타난 것이다.[2]
행장에 대한 비판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내용이 장황해지고 번다하게 많이 쓰는 것이 좋은 행장으로 인식되어 주소(奏疏)의 시말(始末), 사건의 배경, 그 의론(議論)과 행동거지의 철학적 근거, 이단(異端)을 배격해야 하는 이유, 심지어는 공초(供招)에 대한 내용과 그 의리의 타당성까지 세세하게 적어 그 양이 책 한 권 분량이나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행장의 방대한 형태로 변화된 것은 송대(宋代) 황간(黃幹)이 스승 주자(朱子)의 행장을 장장 40여 장이나 쓴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 이유는 주자의 거취는 바로 세도(世道)의 흥망과 직결되며 후학의 준거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장의 규모와는 같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황간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황간보다 더 갑절이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행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허목(許穆)은 "행장이란 그 행적을 쓰는 것이다. 나를 주공(周公)·공자(孔子)라 하여도 나는 주공·공자가 아니며, 나를 정자(程子)·주자라 하여도 나는 정자·주자가 아니다. 살았을 때에 주공·공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죽어 지하에서 주공·공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당시의 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행장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사람에 따라 또는 학파에 따라 초기의 전통을 고집하기도 하였다.[3]
학봉가문의 예법
학봉 행장 언해의 내용에서 학봉가문(鶴峯家門)의 예법론 자체가 일반 사대부 가문과 차이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학봉 가문에서 추구하는 예법의 대상범위는 남성 사대부는 물론이고 여성도 중요한 교육의 대상으로 여겼고 심지어 노비들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김성일 본인이 이런 가풍을 지키려 노력했다. 김성일은 혼인 이후 40년 동안 부인 안동권씨를 '소심경외(小心敬畏:조심하며 공경하는 마음)'하며 예(禮)로써 대했고,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도 반드시 상의하여 처리함으로써 집안의 질서와 법도가 반듯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1592년 12월 24일 김성일이 산음에서 안동 납실 본가로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가문 학풍은 7세손인 김주국에게도 이어져 학봉행장을 언해하여 학봉 행장 언해를 만들고 학봉 행장 언해를 시집간 다섯째 딸 은실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 9세손 김종수는 『여자초학(女子初學)』이라는 교재를 직접 집필하였다. 이 책은 자신의 장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학봉가문에서는 이 책으로 여성을 교육시켰다. [4]
연계 자원 보러 가기 |
•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을 통해 살펴보는 조선 사대부의 삶 |
지식 관계망
- 학봉 김성일가의 한글 고문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학봉 행장 | 정구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학봉 행장 언해 | 학봉 행장 | A는 B의 언해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김은실 | 김주국 | A는 B의 딸이다 | A ekc:hasFather B |
김성일 | 김주국 | A는 B의 선조이다 | A ekc:hasDescendant B |
손성건 | 김은실 | A는 B의 남편이다 | A ekc:hasWife B |
학봉 행장 언해 | 김주국 | A는 B에 의해 언해되었다 | A ekc:translator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17년 | 정구는 학봉 행장을 저술하였다 |
1770년 | 김주국은 학봉 행장을 언해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6.609771 | 128.669643 | 의성김씨 학봉종택에 학봉 행장 언해가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88쪽.
- ↑ 김도련, 행장(行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도련, 행장(行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학수,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가풍家風의 계승 양상 연구- 의성김씨 학봉가문鶴峯家門을 중심으로」,『국학연구』 권31, 국학진흥원, 2016, 77-102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김학수,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가풍家風의 계승 양상 연구- 의성김씨 학봉가문鶴峯家門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권31, 국학진흥원, 2016, 59-123쪽.
- 웹사료
- 정선용(역), 『학봉전집』, 「학봉집 부록」 2권. 온라인 참조: "행장(行狀)",
『한국고전종합 DB』online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역), 『학봉전집』, 「학봉집 부록」 2권. 온라인 참조: "행장(行狀)",
유용한 정보
- 김도련, "행장(行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