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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NAME}}에서 언급된 염초(焰硝) 정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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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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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김지남]]이 숙종 대에 북경에 가서 연구해온 새로운 화약 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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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대의 [[역관]] [[김지남]]이 새로운 화약 제조법과 습득 유래를 설명한 책이다.
  
 
=='''내용'''==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역관|역관(譯官)]] [[김지남|김지남(金指南, 1654~?)]]이 [[숙종|숙종(肅宗)]] 대에 북경에 가서 연구해 온 새로운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 10조로 나뉘어 설명된 방법은 각 조마다 한글로 언해하였다. 이책에 소개된 화약 달이는 방법은 대체로 종전에 있던 방법들과 비슷하나 몇 가지 중요한 새로운 과정을 밝힘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성능을 좋게 하였다. 이 책은 화약을 제조하는 방법과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저자는 책 말미에 붙인 [[득초법시말|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서술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왕래하면서 겪었던 일을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에 관한 문헌 중 하나이다. 『[[신전자초방]]』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 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병서 연구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18세기 국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 소장본은 영중추부사 [[남구만|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건의로 1698년(숙종 24)에 간행된 것을 뒤에 우의정 [[윤시동|윤시동(尹蓍東, 1729~1797)]]의 건의로 1796년(정조 20)에 중간한 것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9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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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역관(譯官)]] [[김지남|김지남(金指南, 1654~?)]]은 북경을 드나들면서 연구해 온 새로운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하여 이 책을 썼다. 10조로 나뉘어 제조법을 설명하고 각 조마다 한글로 언해하였다. 이 책에 소개된 화약 달이는 방법은 대체로 종전에 있던 방법들과 비슷하나 몇 가지 중요한 새로운 과정을 밝힘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성능을 좋게 하였다. 저자는 책 말미에 붙인 [[득초법시말|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설명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왕래하면서 겪었던 일을 서술하였다. 『[[신전자초방|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에 관한 문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 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병서 연구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18세기 국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 소장본은 영중추부사 [[남구만|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건의로 1698년(숙종 24)에 간행된 것을 뒤에 우의정 [[윤시동|윤시동(尹蓍東, 1729~1797)]]의 건의로 1796년(정조 20)에 중간한 것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99쪽.</REF>
  
==={{PAGENAME}}에서 언급된 [[염초|염초(焰硝)]] 정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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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자초방]]에서 언급된 [[염초|염초(焰硝)]] 정제방법===
 
"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위 문장은 바로 [[염초|염초(焰硝)]]를 채취하는 방법으로 취토·취회·교합·사수·오수·재련·삼련·합제의 여덟 가지 공정단계와 물을 달이고 재를 만들기 위하여 쓰는 풀 매는 작업과 재련 때 쓰는 아교물에 대한 항목들이 이 책의 본문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책 끝에 붙인 [[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 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서술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내왕하면서 죽을 뻔한 기록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 재료인 [[염초|염초(焰硝)]] 제작 방법에 관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14세기 말에 [[최무선|최무선(崔茂宣)]]이 저술한 『[[화약수련법|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은 전하지 않고 다만 1635년(인조 13)에 간행된 [[이서|이서(李曙)]]의 『[[신전자취염초방|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이 전해져, 이것과 더불어 책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 화약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에 있다.<ref>고경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347 신전자초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 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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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은 바로 [[염초|염초(焰硝)]]를 채취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취토·취회·교합·사수·오수·재련·삼련·합제의 여덟 가지 공정단계와 물을 달이고 재를 만들기 위하여 쓰는 풀 매는 작업과 재련 때 쓰는 아교물에 대한 항목들이 이 책의 본문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책 끝에 붙인 [[득초법시말|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 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설명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내왕하면서 죽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 재료인 [[염초|염초(焰硝)]] 제작 방법에 관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14세기 말에 [[최무선|최무선(崔茂宣)]]이 저술한 『[[화약수련법|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은 기록은 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1635년(인조 13)에 간행된 [[이서|이서(李曙)]]의 『[[신전자취염초방|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이 전해진다. 두 화약 전문서적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에 있다.<ref>고경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347 신전자초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PAGENAME}}에서 나오는 [[염초]]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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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자초방]]에서 나오는 [[염초]]의 중요성===
{{PAGENAME}}』에서 나오는 내용은 [[염초]]를 취합하고 정제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화약을 만들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료는 앞에서 언급한 재료와 별도로 [[유황|유황(硫黃)]]과 [[목탄|목탄(木炭)]]이 필요하다. 이들 3개의 재료 배합 비율은 [[염초]] 5: [[유황]] 1: [[목탄]] 1 이다. 즉 5:1:1 비율로 [[염초]]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 및 [[원료정제법]]에 관한 정리된 내용은 명 말기『[[무비지|무비지(武備志)]]』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후 청나라 과학관련 고문헌에서는 이 책의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중국 염초제조법이 {{PAGENAME}}』에 큰 영향을 주었다.<ref>모원의(茅元儀), 『武備志』, 권119, 軍資乗火條, 796~800쪽.</ref>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초제조법은 조선도 알고 있었다. [[염초]]가 생성되는 조건은 기후가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땅 자체에 염분 성분이 존재해야 한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성분으로 질산 칼륨(Potassium Nitrate)이 있으며, 이들이 존재하는 장소는 염전이나 인체의 소변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조선은 염전 생산 지역이나 화장실 지역에서 [[염초]]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은 [[세종]]에서 [[문종]]시기(1418~1453) 실록을 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 염초제조법이 사라졌고, 이후 [[숙종]](1674~1720)시기 『{{PAGENAME}}』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ref>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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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자초방]]』의 내용은 [[염초]]를 취합하고 정제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화약을 만들때 필수 재료는 이와 별도로 [[유황|유황(硫黃)]]과 [[목탄|목탄(木炭)]]이 필요하다. 이들 3개의 재료 배합 비율은 [[염초]] 5: [[유황]] 1: [[목탄]] 1 이다. 즉 5:1:1 비율로 [[염초]]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와 같은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 및 [[원료정제법]]에 관한 정리된 내용은 명나라 말기에 나온『[[무비지|무비지(武備志)]]』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후 청나라 과학관련 고문헌에서는 이 책의 [[화약제조법|화약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중국 염초제조법은 [[신전자초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ref>모원의(茅元儀), 『武備志』, 권119, 軍資乗火條, 796~800쪽.</ref>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초제조법은 이미 조선도 알고 있었다. [[염초]]가 생성되는 조건은 기후가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땅 자체에 염분 성분이 존재해야 한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성분으로 질산 칼륨(Potassium Nitrate)이 있으며, 염전이나 사람의 소변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은 염전 생산 지역이나 화장실 등지에서 [[염초]]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은 [[세종]]에서 [[문종]]시기(1418~1453) 실록을 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 염초제조법이 사라졌고, 이후 [[숙종]](1674~1720)시기 『[[신전자초방]]』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ref>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ref>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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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전자초방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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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ncyves/Graph/A042/A042.htm 화포식언해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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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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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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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논문
**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4.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4.
 +
**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
  
 
[[분류:한글고문서]]
 
[[분류:한글고문서]]
[[분류: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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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분류:이창섭]]
 
[[분류:전시자료]]
 

2017년 12월 8일 (금) 23:15 기준 최신판

신전자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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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칭 新傳煮硝方
영문명칭 This book writes a new gunpowder manufacturing method acquired from Beijing, and explains the process of learning it.
작자 김지남
작성시기 1796년
간행시기 조선후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3-292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0×20.1㎝
판본 목판본
수량 1冊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조선 숙종 대의 역관 김지남이 새로운 화약 제조법과 습득 유래를 설명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역관(譯官) 김지남(金指南, 1654~?)은 북경을 드나들면서 연구해 온 새로운 화약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하여 이 책을 썼다. 10조로 나뉘어 제조법을 설명하고 각 조마다 한글로 언해하였다. 이 책에 소개된 화약 달이는 방법은 대체로 종전에 있던 방법들과 비슷하나 몇 가지 중요한 새로운 과정을 밝힘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성능을 좋게 하였다. 저자는 책 말미에 붙인 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설명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왕래하면서 겪었던 일을 서술하였다.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제조법에 관한 문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 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병서 연구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18세기 국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본 장서각 소장본은 영중추부사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건의로 1698년(숙종 24)에 간행된 것을 뒤에 우의정 윤시동(尹蓍東, 1729~1797)의 건의로 1796년(정조 20)에 중간한 것이다.[1]

신전자초방에서 언급된 염초(焰硝) 정제방법

"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위 문장은 바로 염초(焰硝)를 채취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취토·취회·교합·사수·오수·재련·삼련·합제의 여덟 가지 공정단계와 물을 달이고 재를 만들기 위하여 쓰는 풀 매는 작업과 재련 때 쓰는 아교물에 대한 항목들이 이 책의 본문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책 끝에 붙인 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 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설명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내왕하면서 죽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 재료인 염초(焰硝) 제작 방법에 관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14세기 말에 최무선(崔茂宣)이 저술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은 기록은 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1635년(인조 13)에 간행된 이서(李曙)의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이 전해진다. 이 두 화약 전문서적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장서각에 있다.[2]

신전자초방에서 나오는 염초의 중요성

신전자초방』의 내용은 염초를 취합하고 정제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화약을 만들때 필수 재료는 이와 별도로 유황(硫黃)목탄(木炭)이 필요하다. 이들 3개의 재료 배합 비율은 염초 5: 유황 1: 목탄 1 이다. 즉 5:1:1 비율로 염초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와 같은 화약제조법원료정제법에 관한 정리된 내용은 명나라 말기에 나온『무비지(武備志)』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후 청나라 과학관련 고문헌에서는 이 책의 화약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중국 염초제조법은 『신전자초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3]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초제조법은 이미 조선도 알고 있었다. 염초가 생성되는 조건은 기후가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땅 자체에 염분 성분이 존재해야 한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성분으로 질산 칼륨(Potassium Nitrate)이 있으며, 염전이나 사람의 소변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은 염전 생산 지역이나 화장실 등지에서 염초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은 세종에서 문종시기(1418~1453) 실록을 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 염초제조법이 사라졌고, 이후 숙종(1674~1720)시기 『신전자초방』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4]

지식 관계망

  • 신전자초방 지식관계망

관련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신전자초방 김지남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신전자초방 득초법시말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남구만 신전자초방_간행 A는 B를 주도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윤시동 신전자초방_중간 A는 B를 주도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신전자초방 신전자초방_간행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신전자초방 신전자초방_중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화약수련법 최무선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화약수련법 유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화약수련법 목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신전자취염초방 신전자초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신전자취염초방 이서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무비지 화약제조법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무비지 원료제조법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화약제조법 유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화약제조법 목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화약제조법 신전자초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료제조법 유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료제조법 신전자초방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득초법시말 중국_염초정제법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료정제법 중국_염초정제법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원료정제법 조선_염초정제법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조선_염초정제법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조선_염초정제법 조선_문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조선_염초정제법 조선_세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신전자초방 한국학중앙연구원_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592년 임진왜란시기 조선 염초정제법을 잃어버렸다
1698년 남구만신전차조방 간행을 주도하였다
1796년 김지남신전자초방을 저술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신전자초방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99쪽.
  2. 고경신, 신전자초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모원의(茅元儀), 『武備志』, 권119, 軍資乗火條, 796~800쪽.
  4. 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사료
    • 『세종실록』 권52, 세종 13년(1431), 6월 2일(갑오), 9번째기사.
    • 『문종실록』권3, 문종 즉위년(1450), 9월 19일(경신), 8번째기사.
    • 明 茅元儀,『武備志』권119, 軍資乗火條.
  • 논문
    •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4.
    • 허태구, 「17세기 조선의 염초무역과 화약제조법 발달」, 『韓國史論』, Vol 47, 2002, 203-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