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표준영정
정몽주 표준영정 | |
한자명칭 | 鄭夢周 標準影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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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장우성 |
제작시기 | 1981년 |
소장처 | 한국은행 |
유형 | 표준영정 |
크기(세로×가로) | 120cm X 83cm |
목차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화가 장우성이 1981년에 그린 표준영정이다.
내용
표준 영정에서 나타는 정몽주의 모습
고려 말기 문인으로, 고려의 관복을 입고 있다. 본래 고려 초기의 관복은 4단계 색갈에 따라서 그 등급이 나누어지는데, 자주색 붉은색 비색 녹색 이렇게 나누어진다. 제일 높은 것이 자주색이며 제일 낮은 등급은 녹색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복색은 실용성을 중시하기 위하여 검은 옷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1] 하지만 이 정몽주 표준영정에서 보이는 정몽주의 관복은 검은색이 아니라 자주색으로 표현되어 있어, 화가가 고의로 정몽주의 관직을 높혀 보이고 싶어 고려 초기 시기 관복제도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얼굴과 자세 자체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아닌 약간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있다. 얼굴에는 주름이 많고 표정은 매우 엄숙한 모습을 담고 있다.
화가 장우성에 대해서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고 경기도 여주에서 성장한 그는 한학을 공부한 뒤 김은호 문하에서 한국화에 입문하였다. 그림 공부를 한 지 2년 만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등단하였는데, 첫 입선작은 바닷가의 파도와 갈매기를 묘사한 해빈소견이었다. 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됨으로써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도 얻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어용 전시회인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불상을 제작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대한민국 동양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했고, 은관 문화훈장(1976), 금관 문화훈장(2001)을 차례로 수여받았다. 전통 문인화의 화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하여 대한민국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문인화 전통에 따른 수묵담채 위주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초기부터 서구풍의 사실적인 표현을 도입하였다. 대표작 중 하나인 춤은 간결한 선의 힘을 강조하고 여백을 활용하는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물화, 산수화, 정물화를 즐겨 그렸고, 학과 백로도 주요 소재였다. 2001년 90세의 나이로 휴대전화를 든 여인의 모습을 그린 현대적 인물화를 발표했을 만큼 말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그가 그린 유관순 표준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가족들은 장우성이 "일제시대 화가로 입문하기 위해 상을 받고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2] 1981년에는 정몽주 표준영정을 그렸으며 현재 한국은행에 소장되어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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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표준영정 | 정몽주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표준영정 | 정몽주 표준영정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정몽주 표준영정 | 장우성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유관순 표준영정 | 장우성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정몽주 표준영정 | 한국은행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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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장우성이 정몽주 표준영정을 제작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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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62457 | 126.979748 | 한국은행은 정몽주 표준영정을 소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