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 유서
민영환 유서 (閔泳煥 遺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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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형, "김정형의 알아서 남주자②'혈죽(血竹)'으로 다시 피어난 민영환의 자결", 『프리미엄조선』, 작성일: 2013년 12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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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민영환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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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閔泳煥 遺書 |
유형 | 유서 |
시대 | 대한제국 |
소장처 | 고려대학교 박물관 |
관련인물 | 민영환 |
관련장소 | 민영환 자결터 |
정의
1905년 11월 30일, 조선 말기의 문신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하며 남긴 세 통의 유서이다.
내용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의정 대신 조병세(趙秉世)와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세 통의 유서를 남기고 1905년 11월 30일 새벽에 홀로 자결하였다.
유서 한 통은 작은 명함에 썼는데, 국민에게 각성을 요망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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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訣告我大韓帝國二千萬同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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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영환", |
유서 두 통은 두루마기에 썼다. 미국 공사관에 있는 친지에게 보낸 유서로, 일본의 침략을 바로 보고 한국을 구해줄 것을 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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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오늘의 일본인의 목적과 행동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국민이 입을 부당한 처사를 세계에 알리면서 귀하가 거중조정을 행사하고, 우리의 독립을 지지하기 위해 아량 있는 노력을 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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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의영, 「아메리카-풍요를 좇아 산 고난의 90년: 해외동포 이민애사, 그 유랑의 세월」, 『역사비평』제14호, 1991, 236쪽.[2] |
또 다른 한 통의 유서는 조선 고종 황제에게 올린 글인데, 현재 실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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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유서 | 민영환 | A는 B가 썼다 | A dcterms:creator B |
민영환 유서 | 민영환 자결터 | A는 B에 있었다 | A ekc:formerLocation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민영환",
『위키백과』online . - ↑ 유의영, 「아메리카-풍요를 좇아 산 고난의 90년: 해외동포 이민애사, 그 유랑의 세월」, 『역사비평』제14호, 1991, 236쪽.
- ↑ 김정형, "김정형의 알아서 남주자②'혈죽(血竹)'으로 다시 피어난 민영환의 자결", 『프리미엄조선』, 작성일: 2013년 12월 4일.
- ↑ 플러스, "고려대학교 박물관③역사·민속전시실",
『네이버 블로그 - 발길 닿는대로...홀로 다니는 길』online , 작성일: 2014년 12월 11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논문
- 유의영, 「아메리카-풍요를 좇아 산 고난의 90년: 해외동포 이민애사, 그 유랑의 세월」, 『역사비평』 제14호, 1991, 236쪽.
- 웹 자원
- "민영환",
『위키백과』online .
- "민영환",
유용한 정보
- "민영환 유서",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online . 온라인 참조: "민영환 유서", e뮤지엄,『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