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국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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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국청사 (開城 國淸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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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개성 국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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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城 國淸寺 |
정의
경기 개풍군 중서면 여릉리에 있었던 사찰.
내용
고려 문종의 비인 인예태후(仁睿太后)의 발원으로 1089년(선종 6)에 창건하여 1097(숙종 2)에 완공되었다. 인예태후의 원찰(願刹)이었으며, 천태종(天台宗)의 기반이 되는 사찰로 의천(義天)은 이곳에서 천태교학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1] 1104년(숙종 9) 인예태후의 발원으로 조성된 황금 13층 석탑이 이곳에 봉안되었는데, 이 탑은 흥왕사(興王寺)의 금탑과 함께 고려왕실의 치탑사례(治塔事例)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2]
고려 의종 대에는 도선국사의 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이는 1172년(명종 2)에 옥룡사로 이전되었다.[3]
그러나 국청사는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으며, 이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옛 가람의 일부를 중창하고 진감국사(眞鑑國師)를 주지로 역임하게 하였으며, 도감(都監)을 두어 무너진 당우를 재건하도록 하였다. 언제 폐사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4]
관련승려
의천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은 국청사의 최초 주지가 되어 이곳에 주석하면서 처음으로 천태학을 강설했다.[5]
덕소
원각국사 덕소(圓覺國師 德素)는 9세 때 의천의 제자로 국청사에 있던 교웅(敎雄)에 의해 득도했고, 1132년(인조 10) 25세 때에는 국청사에서 천태 교학을 수학하면서 그해 10월에 국청사를 찾은 인종을 만나기도 했다.[6]
지식관계망
- 개성 국청사에 주석했던 대각국사 의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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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국청사 | 인예태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의천 | 개성 국청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교웅 | 개성 국청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덕소 | 개성 국청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비 | 개성 국청사 | A는 B에 있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주석
- ↑ "국청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위석, "국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홍기승, "도선",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위석, "국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상현, 「의천의 천태종 개창 과정과 그 배경」, 『예문동양사상연구원총서2: 한국의 사상가 10人 - 의천』, 예문서원, 2002, 284-285쪽.
- ↑ 박용진, 「義天의 天台宗 門徒와 그 思想傾向」, 『중앙사론』 24, 중앙대학교 중앙사학연구소, 2006, 16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