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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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주
(甲胄)
문화재청(http://www.cha.go.kr/)
대표명칭 갑주
한자표기 甲胄
이칭별칭 갑옷, 투구
구분 의복
착용신분 백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한반도에서 철이 사용된 이후 조선시대까지 전쟁에서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착용하는 갑옷과 투구 등의 의복이다.[1]

내용

16세기 중반까지는 옛 제도와 중국의 예를 상고하여 갑주를 착용하는 상황과 대상에 따른 제도를 정비하였다. 잦은 외침과 내란으로 주의 보호성에 대한 요구가 극대화되어 세조대에는 철갑(鐵甲)의 보유량이 절정에 달했다가 감소한다. 다시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까지 임진왜란병자호란, 북벌정책이 맞물려 갑주의 중요성이 재차 인식되었던 시기로 갑주의 대량 제작과 보수를 추진하였고, 착용상황과 대상도 확대하였다.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의 영조정조대는 갑주의 장식화와 사치화의 경향이 나타나 영조의 금령과 처벌이 내려졌으며 군율이 해이해져 갑주의 제작과 보수를 등한시하였다. 19세기 중반에서 19세기 말의 고종대에 신미양요병인양요운요호 사건 속에서 갑주의 중요성이 재고되어 새로운 갑주를 개발하여 성능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82년(고종 29)에 군제개혁으로 갑주 착용 금지령이 내리면서 조선시대의 갑주는 소멸되었다.[2]

조선시대 갑옷의 종류는 쇠로 만든 ‘철갑(鐵甲)’, 가죽으로 만든 ‘피갑(皮甲)’, 종이로 만든 ‘지갑(紙甲)’, 가슴을 가리는 ‘엄심갑(掩心甲)’, 단(緞)직물로 만든 ‘단갑(緞甲),’ 융[氈]으로 만든 ‘전갑(氈甲)’, 베로 만든 ‘삼승갑(三升甲)’, 철사로 작은 고리를 만들어 서로 꿰어 만든 쇄자갑‘(鎖子甲)’, 쇠비늘과 쇠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경번갑(鏡幡甲)’, ‘두정갑(頭頂甲)’, ‘두두미갑(頭頭味甲)’, ‘석린갑(豆錫鱗甲)’ 등이 있다. 투구는 쇠로 만든 ’철주(鐵冑)’, 가죽으로 만든 ’피주(皮冑)’, ’엄심주(掩心冑)’, 비단투구인 ’백주(帛冑)’와 ’단주(緞冑)’, 융[氈]으로 만든 ’전주(氈冑), 베로 만든 ‘삼승갑(三升甲)’, 무명으로 만든 ‘목면주(木綿冑)’, ‘승두구(藤頭口)’ 등으로 구분된다. ‘단갑(鍛甲)’과 ‘전갑(氈甲)’은 주로 고위 백관갑옷이었던 데 비해 ‘지갑(紙甲)’ㆍ‘엄심갑(掩心甲)’ㆍ‘삼승갑(三升甲)’ㆍ‘면갑(綿甲)’은 일반 병졸들의 갑옷으로 추정된다. 갑옷은 보호하는 신체부위에 따라 가슴을 보호하는 ‘갑신(甲身)’, 하체를 보호하는 ‘갑군(甲裙)’, 어깨를 가리는 ‘피박(披膊)’, 겨드랑이에 덧대는 ‘호액(護腋)’, 엉덩이를 보호하는 ‘골미(鶻尾)’, 팔꿈치에서 손목을 보호하는 ‘비갑(臂甲)’, ‘호갑(護甲)’으로 이루어져 있고, 투구는 머리에 쓰는 ‘감투’, 앞이마를 보호하는 ‘정수리장식’, 뒷목을 보호하는 ‘드림’으로 구성되었다.[3]

조선시대 갑주의 안감은 대부분 청색으로 음양오행과 관련이 있다. 갑옷의 안쪽에는 저고리바지·협수·쾌자의 군복을 갖추어 입었고, 쇄자갑의 안쪽에 피갑을 입기도 하였다. 갑주의 대는 전대를 비롯하여 포백대·혁대·사대 등 다양한 종류와 방식이 사용되었다. 갑옷은 호항(護項)분리형·소매분리형·의상(衣裳)형·포(袍)형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투구는 원주(圓冑)형·첨주(簷冑)형·드림분리형의 3가지가 있다. 시대에 따른 갑옷투구의 조합 양상이 각기 다른데, 가장 빈번히 보이는 조합형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갑주인 포형 갑옷에 드림 분리형 투구이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백관 갑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의 군복 갑주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195쪽.
  2.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195~199쪽.
  3.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196쪽.
  4.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196~197쪽.
  5. 문화재청, 『문화재대관2-복식, 자수편』, 문화재청, 2006, 157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악학궤범(樂學軌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김혁중, 「한반도 출토 왜계갑주의 분포와 의미」, 『중앙고고연구』 제8호,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 문화재청, 『문화재대관2-복식, 자수편』, 문화재청, 2006.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박가영, 이은주, 「서애 류성룡 갑옷의 형태 복원을 위한 기초조사」, 『服飾』 59권 5호, 한국복식학회, 2009.
  •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 송정식, 「동북아시아 찰갑의 기술계통 연구」, 『야외고고학』 제9호,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0.
  • 염정하, 조우현, 「조선 중․후기 訓鍊都監의 군사복식에 관한 연구」, 『服飾』 63권 8호, 한국복식학회, 2013.
  • 이유경, 「고구려 찰갑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 이현주, 「한국의 고대 갑주」, 『복천박물관 학술연구총서』제31집, 복천동박물관, 2010.
  • 장경숙, 「한국 고대 갑옷과 투구의 연구」, 동아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 황수진, 「삼국시대 영남출토 찰갑에 대한 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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