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y:광주의 의로운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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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 광주의 의로운 병사들


Army.lst

Storyline Narrative

에피소드 1: 아버지와 아들들



Episode 1 Korean Narrative:

army-A:아버지와_아들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광주의 백성들은 스스로 병사를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의병이라고 하지요. 의병 중 고경명과 그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병의 지도자 전투에 나섰던 고경명은 고인후(1561∼1592)와 함께 금산전투에서 목숨을 잃게되죠. 그 소식을 뒤늦게 들은 첫째 아들 고종후(1554~1593)도 뛰어들려고 하였으나 이미 전투는 기울었기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집안의 노비였던 귀인과 봉이가 고종후를 끝까지 말려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 이후 이들은 진주로 옮겨 끝까지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결국 진주성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고종후와 그의 아들들은 포충사에 모시고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노비 신분이지만 나라를 사랑한 마음 만큼은 모두 같이 귀했던 귀인과 봉이도 함께 기억하기 위해 포충사에 비석을 세웠답니다.

에피소드 2: 남편과 아내



Episode 2 Korean Narrative:

army-B:남편과_아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나 마찬가지로 이 땅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강무경은 심남일과 손잡고 함평에서 의병을 모집해 일어섰습니다. 1908년의 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뒤, 양방매의 집으로 몸을 피해 치료를 받으며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18세였던 어린 양방매도 남편을 따라 전장에 나섰습니다. 남한 대토벌 작전 도중 부부는 함께 체포되었고, 양방매는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석방되었지만, 강무경은 힘겨운 고문 끝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양방매는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남은 생을 외로이 보냈습니다. 그녀의 의병 활약이 뒤늦게 인정받아 2005년에는 국립현충원에 남편과 나란히 안장되었습니다. 이 부부의 나라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에피소드 3: 형과_아우



Episode 3 Korean Narrative:

army-C:형과_아우

국가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사랑한 형제, 의병장 김태원과 김율의 이야기입니다. 김태원은 한말 호남의 의병장으로, 담양 무동촌 전투와 장성 토천전투를 포함해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며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의 동생 김율도 호남의소와 함께 지역을 이끌며 형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김태원이 이끌던 군대를 참봉진, 김율이 이끌던 군대는 박사진으로 불리며 호남지역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나 광주 어등산에서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1908년 4월 25일, 일제 밀정의 제보로 출동한 일본 기병대와 특설순사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 중 순국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의 시신을 확인시키는 과정에서 일본 순사에 의해 동생 김율도 순국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