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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출처=김인수,『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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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7=Second: In regard to our Girls' School and the possible setting free of Mr. Convers' gift. Methodist schools at the present time are both full. They claim that they cannot accomodate more; and if this proves to be a fact, it may be that there will be no union in Girls' Schools. Excavations had been completed for the Girls' School, but work was at once stopped until we could be sure that the building was necessary. When we were discussing the matter last year, the Superintendent of the Methodists was in America and the matter was held in abeyance until her arrival. She returned just before Christmas, and I suppose the matter will come up for decision in a short time. If there is union, the amount appropriated will be per chance set free unless it should be needed in the union plant, but of course if such a thing should be contemplated, as the use of our Board funds on other than our own property, the plans in all details will be submitted to the Board. In fact this will be done in any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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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8=Third:  You spoke at some length in your letter in regard to Fusan and the  discussion concerning transfers. It is not necessary to go into the whole details concerning Fusan. It suffices to say that, Dr. Irvin was put in a very hard and in fact an almost impossible position. He came back to a Mission that unanimously requested that he should not return. His associate in his own station, Mr. Sidebotham whom he had always looked upon as a friend had also voted against his return. Naturally in his own station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would be considerably strained. Dr. Irvin came back having, I understand, been requested by the Board to let matters drop and let by-gones be by-gones. In this circumstance the old difficulties were not cleared up, and he feels that he is a persona non grata in the<br/>(Several pages missing---)<br/> course in Pedagogy, who would be suitable for this position; and have suggested that if there are any such who have the missionary spirit, that he will put them in communication with you. Men who feel that teaching is their calling are the ones that we need in a work such as this. At the present time, education in Korea especially under the care of missionaries will I think will receive considerable impetus. The Koreans are more and more realising that, had the people of the land generally been better educated, they might have been better able to ward off the disgrace that has overtaken them as a nation. Then the announcement by the present Adviser in the Educational Department that, he plans for Korea a system based not on that has been the gradual development of his own people, but on that the Japanese have planned for the bearly half educated Ryuku Islanders, will turn the thoughts of the people more towards our schools than formerly. I think that at the present time, if plans are carefully prepared, that the people are ready for a pretty wide system of education that might be largely under the care of the Mission aries, and thus a Christian infl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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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7=두 번째, 우리 여학교와 컨버스 씨의 기부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감리교의 학교들은 모두 정원(定員)이 다 차 있는 상태입니다. 학생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학교들 간의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학교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는 다 끝났지만, 이 건물이 과연 필요할지 분명한 확신이 설 때까지 공사를 더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있었을 때 감리교의 감독은 미국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녀가 올 때까지 보류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성탄절 직전에 총감독이 돌아 왔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결의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물론, 본부의 기금을 우리 소유의 부지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하는 이와 같은 일이 계획된다면, 그러한 계획안은 매우 자세히 본부에 보고될 겁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런 식으로 보고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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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8=세 번째, 박사님의 편지에서 부산의 일과 이전(移轉)에 대해 있었던 논의에 관해 상세히 말씀하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부산의 일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빈 의사가 매우 곤란하고 힘겨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만 말씀드리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교부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빈 의사가 선교부로 돌아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지만 그는 선교부로 돌아 왔습니다. 어빈 의사가 속해 있던 선교 지부에서 그와 가깝게 지냈던 사이드보담 씨를 어빈 의사는 늘 자신의 친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는데, 사이드보담 씨 역시 어빈 의사 돌아오는 것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자연히 그의 선교지부에서 두 사람은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부에서 “지나간 일들은 다 잊어버리자”고 부탁해서 어빈 의사가 돌아오게 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문제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_______________에서 기피 대상의 인물(person non grata)이라고 생각_______________.<br/>(다음의 몇 페이지가 유실되었음)<br/>_______________교육과정_______________,  누가 이 자리에 적합할지_______________그리고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그런 사람들을 박사님과 연결되게 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역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이런 사역에서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현재, 한국에서의 교육은 특히 선교사들의 감독 하에 있는 교육은 상당한 반동력을 받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보다 좋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나라 위에 내려앉아 있는 이 치욕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현 고문이 󰡒자신의 국민들에게서 점진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이 반도 훨씬 안 되는 류큐(Ryuku)섬 사람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교육 계획을 세웠던 것에 그 기반을 두고서 한국인들을 위한 교육 제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예전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 학교 쪽으로 더 많이 향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계획안이 신중하게 잘 마련된다면, 사람들은 주로 선교사들의 감독 하에 있는 따라서 기독교의 영향 하에 있는, 폭 넓은 교육 제도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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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9=이만 줄이겠습니다. 박사님과 사모님께서 평안하시기를 저와 제 아내가 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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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0=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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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1=언더우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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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5일 (화) 15:0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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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
(1906년 01월 16일)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1906년 01월 16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Arthur J. Brown(Jan 16, 1906)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Brown, Arthur J.(브라운)
작성연도 1906년
작성월일 01월 16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언더우드
Seoul, Korea 한국, 서울
Jan 16, 1906 1906년 1월 16일
Dr. A. J. Brown,
Board of Foreign Missions, Pres. Ch.,
156 Fifth Ave., New York, N.Y., U.S.A.
A. J. 브라운 박사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본부
뉴욕시, 5번가, 156번지
My dear Dr. Brown, 브라운 박사님께,
I have been meaning to write to you for some time past, and your recent letter to the Mission makes it so, that I want to get a letter off at once. There are three matters mentioned in your letter, concerning which I desire to speak. 한동안 계속 박사님께 편지를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박사님께서 선교부에 보내 주신 서신을 보고서야 이제 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그 편지에서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언급해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First: In regard to Union. The Bishop of the Methodist Church and all members of their Mission with two or three exceptions are in favor of the closest union even down to real Church organic union. They have taken decided stands along the line of union in hospitals, schools, publications, and in fact in all institutional work; and they have stated that they are ready for even the larger union. The Southern Methodist Mission have been quite strong in this matter, and while there are one or two of their members who do not yet see how there can be an organic union between the Methodists and the Presbyterians, are yet willing to work and strive for it. In all such matters difficulties that would arise would be expected in the settling of details, and here is where difficulties are rising. While at the time of the Methodist Annual Meeting last summer and of the organization of the Evangelical Council in the Fall, there was great unanimity and oneness of purpose. Since that time, the Superintendent of the Methodist Mission, North, claims to have seen new light, and has withdrawn his approval of union in all lines but one, and that of publication. The Bishop told me personally that he however much disapproved of this attitude on the part of the Superintendent, and that at best in the annual meeting and in the decisions he would have but one vote; but that of course his voice in the matter would have more weight with the authorities in New York, than any other individual member of the Mission. I had a long conference with the Bishop and he is still heartily in favor of the closest union, but believes as most of us, that before such a union is consummated everything should be carefully thought and planned out. The Superintendent of the Methodist Mission now no longer believes in school union; but all the school authorities of both the Southern and the Northern Methodists and the Presbyterian Missions believe there should be a union in the Boys Schools. Bishop Harris believes that we should have union in our High Schools (when we have them), and in our Theological instructions. I was rather surprised at this, but he laughingly remarked that, some of the strongest timber in the Methodist Seminary had been turned out Princeton. Some members of our own Mission are not in favor of organic union: they believe that our work has developed so well, that for us, the union is not needed. Personally I believe that the establishing of a united Christian Church in Korea would do no little toward the speedy evangelisation of this land. Such a union if brought about at all, must be brought about with great care; every step carefully considered before taken; but there certainly would be a great conserving of Christian forces if it could be consummated. 첫 번째, 교회 연합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두 세 사람 정도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만, 감리교회의 감독을 비롯해 감리교 선교부의 사람들이 모두 긴밀한 연합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고, 실제로 조직상(組織上)의 교회 연합을 이루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감리교회 사람들은 “병원, 학교, 출판 사업을 포함해, 모든 기관 사역에서 연합하겠다”는 분명한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더 넓게 연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남 감리교 선교부는 이 점에 대해 매우 확고부동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 중에서 한 두 명은 “감리교회 사람들과 장로교회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상의 연합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하며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해나가는데 있어 세부적인 사안들을 결정할 때는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는데, 실제로 이런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 감리교의 연례 회의가 있었을 때와 지난 가을, 복음전도협회의 모임에서는 다들 완전히 만장일치가 되어 뜻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후에, 감리교회 총감독은 “달리 생각해 본 게 있다”고 하면서 모든 부문에서 연합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승인했던 것을 철회하였습니다. 단 출판 부문만은 예외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제게 “나는 총감독의 저러한 태도에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연례 회의에서 결의할 때, 총감독에 찬성하는 표는 아무리 잘해 봐야 한 표 밖에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안에 있어 총감독의 의견은 뉴욕에 있는 당국자들과 더불어, 선교부의 다른 어떤 사람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그 감독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여전히 긴밀한 연합 관계를 이루는 것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중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러한 연합을 이루기 전에, 모든 면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리교 선교부의 감독은 “학교 사업에 있어 연합을 이루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북 감리교회의 모든 학교 관계자들과 장로교 선교부에서는 ‘남학교들 간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해리스 감독은 ‘우리 고등학교들과 (우리에게 고등학교가 있게 될 때) 신학 교육에 있어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만, 헤리스 감독은 웃으면서 제게 “감리교 신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교수들 중에는 프린스턴출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선교부에도, 조직상의 연합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역이 매우 훌륭하게 발전되어 있는데, 굳이 연합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에 연합기독교회가 세워진다면, 이 나라가 빨리 복음화 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합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 이루어가야 할 사안입니다. 매 걸음마다 내 딛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완성될 수만 있다면, 기독교의 역량이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Second: In regard to our Girls' School and the possible setting free of Mr. Convers' gift. Methodist schools at the present time are both full. They claim that they cannot accomodate more; and if this proves to be a fact, it may be that there will be no union in Girls' Schools. Excavations had been completed for the Girls' School, but work was at once stopped until we could be sure that the building was necessary. When we were discussing the matter last year, the Superintendent of the Methodists was in America and the matter was held in abeyance until her arrival. She returned just before Christmas, and I suppose the matter will come up for decision in a short time. If there is union, the amount appropriated will be per chance set free unless it should be needed in the union plant, but of course if such a thing should be contemplated, as the use of our Board funds on other than our own property, the plans in all details will be submitted to the Board. In fact this will be done in any circumstances. 두 번째, 우리 여학교와 컨버스 씨의 기부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감리교의 학교들은 모두 정원(定員)이 다 차 있는 상태입니다. 학생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학교들 간의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학교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는 다 끝났지만, 이 건물이 과연 필요할지 분명한 확신이 설 때까지 공사를 더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있었을 때 감리교의 감독은 미국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녀가 올 때까지 보류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성탄절 직전에 총감독이 돌아 왔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결의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물론, 본부의 기금을 우리 소유의 부지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하는 이와 같은 일이 계획된다면, 그러한 계획안은 매우 자세히 본부에 보고될 겁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런 식으로 보고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Third: You spoke at some length in your letter in regard to Fusan and the discussion concerning transfers. It is not necessary to go into the whole details concerning Fusan. It suffices to say that, Dr. Irvin was put in a very hard and in fact an almost impossible position. He came back to a Mission that unanimously requested that he should not return. His associate in his own station, Mr. Sidebotham whom he had always looked upon as a friend had also voted against his return. Naturally in his own station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would be considerably strained. Dr. Irvin came back having, I understand, been requested by the Board to let matters drop and let by-gones be by-gones. In this circumstance the old difficulties were not cleared up, and he feels that he is a persona non grata in the
(Several pages missing---)
course in Pedagogy, who would be suitable for this position; and have suggested that if there are any such who have the missionary spirit, that he will put them in communication with you. Men who feel that teaching is their calling are the ones that we need in a work such as this. At the present time, education in Korea especially under the care of missionaries will I think will receive considerable impetus. The Koreans are more and more realising that, had the people of the land generally been better educated, they might have been better able to ward off the disgrace that has overtaken them as a nation. Then the announcement by the present Adviser in the Educational Department that, he plans for Korea a system based not on that has been the gradual development of his own people, but on that the Japanese have planned for the bearly half educated Ryuku Islanders, will turn the thoughts of the people more towards our schools than formerly. I think that at the present time, if plans are carefully prepared, that the people are ready for a pretty wide system of education that might be largely under the care of the Mission aries, and thus a Christian influence.
세 번째, 박사님의 편지에서 부산의 일과 이전(移轉)에 대해 있었던 논의에 관해 상세히 말씀하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부산의 일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빈 의사가 매우 곤란하고 힘겨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만 말씀드리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교부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빈 의사가 선교부로 돌아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지만 그는 선교부로 돌아 왔습니다. 어빈 의사가 속해 있던 선교 지부에서 그와 가깝게 지냈던 사이드보담 씨를 어빈 의사는 늘 자신의 친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는데, 사이드보담 씨 역시 어빈 의사 돌아오는 것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자연히 그의 선교지부에서 두 사람은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부에서 “지나간 일들은 다 잊어버리자”고 부탁해서 어빈 의사가 돌아오게 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문제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_______________에서 기피 대상의 인물(person non grata)이라고 생각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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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교육과정_______________, 누가 이 자리에 적합할지_______________그리고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그런 사람들을 박사님과 연결되게 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역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이런 사역에서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현재, 한국에서의 교육은 특히 선교사들의 감독 하에 있는 교육은 상당한 반동력을 받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보다 좋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나라 위에 내려앉아 있는 이 치욕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현 고문이 󰡒자신의 국민들에게서 점진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이 반도 훨씬 안 되는 류큐(Ryuku)섬 사람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교육 계획을 세웠던 것에 그 기반을 두고서 한국인들을 위한 교육 제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예전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 학교 쪽으로 더 많이 향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계획안이 신중하게 잘 마련된다면, 사람들은 주로 선교사들의 감독 하에 있는 따라서 기독교의 영향 하에 있는, 폭 넓은 교육 제도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But I must be closing, with kindest regards to you and Mrs. Brown from Mrs. Underwood and myself, 이만 줄이겠습니다. 박사님과 사모님께서 평안하시기를 저와 제 아내가 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Yours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언더우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