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Mrs.Hepburn (18880206)"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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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2=1888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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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Hepburn, Clara L.|햅번]]}} 여사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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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여사님께서 지난 11월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한 것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_______제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도 여사님의 편지를  _______ 무척 바라는 생각에  _______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번 여사님께 보내 드린 편지를 여사님께서 활용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은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어떤 것을 찾아내셨다면 여사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있어 완전히  _______이셨던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선교사편지단체태그|[[북장로교 해외선교부|본부]]}}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리라’는 기대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면서 이곳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진행되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였지만 본부에 계신 분들은 이곳에 선교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분들은 현재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교회가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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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여사님께서 지난 11월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한 것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_______제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도 여사님의 편지를  _______ 무척 바라는 생각에  _______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번 여사님께 보내 드린 편지를 여사님께서 활용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은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어떤 것을 찾아내셨다면 여사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있어 완전히  _______이셨던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우리 본부]]}}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리라’는 기대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면서 이곳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진행되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였지만 {{선교사편지단체태그|[[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본부]]}에 계신 분들은 이곳에 선교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분들은 현재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교회가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 『본토와 해외의 교회』(Church at Home & Abroad)지(紙)에 실린 ‘한국과 일본의 사역자의 수’에 있어 한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호의 ‘모든 사역지를 총괄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에서도 한국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지난 한해 동안 모든 면에서 이곳만큼 많은 축복을 받은 사역지는 한 군데도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한국에 대해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내고 계신지, 또 주님께서 어떻게 교회의 수고를 복되게 하고 계신지’에 대해 교회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더 많은 사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곳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서 하시는 일들에 대해 교회가 계속 전해 들었더라면 사역자들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한국으로 오겠다고 할 사람들이 미국 내에, 장로교회 내에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자료로 정리하여 이것을 온 교회에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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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 {{선교사편지문헌태그|[[The Church at Home and Abroad|『본토와 해외의 교회』(Church at Home & Abroad)지(紙)]]}}에 실린 ‘한국과 일본의 사역자의 수’에 있어 한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호의 ‘모든 사역지를 총괄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에서도 한국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지난 한해 동안 모든 면에서 이곳만큼 많은 축복을 받은 사역지는 한 군데도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한국에 대해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내고 계신지, 또 주님께서 어떻게 교회의 수고를 복되게 하고 계신지’에 대해 교회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더 많은 사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곳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서 하시는 일들에 대해 교회가 계속 전해 들었더라면 사역자들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한국으로 오겠다고 할 사람들이 미국 내에, 장로교회 내에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자료로 정리하여 이것을 온 교회에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이곳의 사역은 계속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일도 계속 해 나가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만약 {{선교사편지인물태그|[[Hulbert, Homer B.|헐버트]]}} 씨가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 의학당|국립의학교]]}}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일하면서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일을 오래 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제가 북쪽지역에 다녀 온 이후에 여사님께 편지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는데 저는 한달 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습니다. 사역지에 대해 아주 잘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미 일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격려해 주기도 하였으며 특별히 한 마을에서는 네 명의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가장 기쁨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기독교적 정서가 깃들어 있는 마을을 알게 되었는데 한 한국인 농부의 집에서 사흘동안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제가 가끔씩 내려 올 거라는 걸 알고서, 특별히 저를 위해 한국식 침구(寢具)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관해 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마을 사람 모두가 어찌나 제게 잘해 주던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제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몇 일 동안 저는 한국인들에 대해 대단히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이만큼 이해하려면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부족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아주 진심어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을 떠난 후에 작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가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온갖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였고 (제가 마법사라는 말은 여사님께서도 처음 들으실 겁니다.) 제가 찾아가 만나 보았던 사람은 저한테서 배워서 마법을 부렸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풀려나게 하도록 우리는 사람을 보내었는데 그곳까지는 일주일이 걸리는 길입니다. 아직까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이곳의 사역은 계속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일도 계속 해 나가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만약 {{선교사편지인물태그|[[Hulbert, Homer B.|헐버트]]}} 씨가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 의학당|국립의학교]]}}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일하면서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일을 오래 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제가 북쪽지역에 다녀 온 이후에 여사님께 편지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는데 저는 한달 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습니다. 사역지에 대해 아주 잘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미 일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격려해 주기도 하였으며 특별히 한 마을에서는 네 명의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가장 기쁨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기독교적 정서가 깃들어 있는 마을을 알게 되었는데 한 한국인 농부의 집에서 사흘동안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제가 가끔씩 내려 올 거라는 걸 알고서, 특별히 저를 위해 한국식 침구(寢具)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관해 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마을 사람 모두가 어찌나 제게 잘해 주던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제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몇 일 동안 저는 한국인들에 대해 대단히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이만큼 이해하려면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부족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아주 진심어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을 떠난 후에 작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가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온갖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였고 (제가 마법사라는 말은 여사님께서도 처음 들으실 겁니다.) 제가 찾아가 만나 보았던 사람은 저한테서 배워서 마법을 부렸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풀려나게 하도록 우리는 사람을 보내었는데 그곳까지는 일주일이 걸리는 길입니다. 아직까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더 먼 북쪽 지역에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안주|안주]]}}에는 현재 백 명도 더 되는 신자들이 있다고 하며, {{선교사편지공간태그|[[개천|개천]]}}에도 많은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평양|평양]]}}에는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22명이 있는데 우리 권서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세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에는 신자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옛 수도인 송도에도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10~12명 정도 있으며 많은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 수는 거의 20명에 이르며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정말 복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더 먼 북쪽 지역에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안주|안주]]}}에는 현재 백 명도 더 되는 신자들이 있다고 하며, {{선교사편지공간태그|[[개천|개천]]}}에도 많은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평양|평양]]}}에는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22명이 있는데 우리 권서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세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에는 신자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옛 수도인 송도에도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10~12명 정도 있으며 많은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 수는 거의 20명에 이르며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정말 복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div>

2020년 9월 13일 (일) 22: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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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헵번여사에게 보낸 편지
(1888년 2월 6일)
식별자 L18880206UTOH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헵번여사에게 보낸 편지 (1888년 2월 6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Mrs. Hepburn (Feb. 6, 1888)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Mrs. Hepburn.
작성연도 1888년
작성월일 2월 6일
작성공간 서울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선교사편지레이아웃 |원문1=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원문2=Feb. 6, 1888 |원문3=To Mrs. Hepburn

|원문4=
I feel ashamed of myself for having left your letter of last Nov so long unanswered but my sorrow & regret I am forced to say _______selfish as it _______from the thought that I just want so much a letter from you; About your use of my last letter to you, rest assured that if you found anything that was good enough to use you were perfectly _______in doing so but I have about given up all hope of stirring our Board up. I have written letter after letter, have told them again & again of what has been done & what was doing here but they seem really to have almost forgotten that they have a Mission out here at all. They do not even let the Church know anything about what is going on.
|원문5=
In the number, devoted to Japan & Korea of the Church at Home & Abroad, Korea was not mentioned. In the general survey of the whole field in the last issue Korea is left out, while from all that I can learn there is not a field that has, taking all things into consideration, been blessed during the past year as much as this one. It is not for the sake of bringing Korea to the front that I speak of this but I do not think it right to deprive the Church of the knowledge of what the Lord is doing, & of how the Lord is blessing her efforts. We must have more workers here or we must go back, & I do believe that had the Church been kept informed of what the Lord was doing here we would not have been kept so long without workers. I believe that there are men in the States today & in the bounds of the Presbyterian Church who, did they know the facts about Korea would insist upon coming here at once. I am thinking of getting up a little statement of the facts as they are, & having it sent far & wide throughout our Church.
|원문6=
Work here still goes on, & goes on well. Ways of usefulness are opening up on every side, but we cannot go ahead. We can hardly hold on to what we have got. Were it not that Mr. Hulbert has been kindly assisting us, & giving us two hours a day in the Government Hospital School, we would have had to give this up long ago. I have not written you since my return from the North. I had a very good trip & was away from Seoul for just a month. I saw the field pretty well, & was able to start work in several places, to encourage workers that were already working, & was privileged to baptise 4 persons out in one village. I had a most delightful timeout there, I found the village with a Christian feeling. I spent 4 days in a Korean farmer's house. They had known that I would be down at some time or other, & had made, & put aside a full set of Korean bed-clothes for my especial use. All the people in the village seemed to vie with each other in their efforts to make my stay pleasant. It was so good to be among the people. I think that I got to understand the Koreans more in those few days than I could have done in months & almost years of any other way. The Christians too seemed so in earnest in their belief. Since I left there a little trouble has arisen - all manner of stories about witch-craft in connection with myself (you did not know I was a wizard) have been started, & the man to whom I went to see was arrested on a charge of exercising this craft having learned it from me. We have sent out to have the man released, but it is a seven days Journey there, & we have nor yet got the answer.
|원문7=
Further north I found others interested. In Anju there were said to be now over a hundred adherents, at Kaichun there are a number. In Pyang An there are now 22 applicants for Baptism whom our Colporteurs report to be worthy applicants, & a number of adherents. In Song Do, the old capital, there are 10 or a dozen applicants for Baptism, & a large number of adherents. Our Church has now nearly 20 members & a number more applicants, is not this all good news.
|원문8=
But it is not all smooth sailing. I am afraid that there will be trouble between us & the Methodists. There was a decided attempt to get one of our men to go over there not long ago, which we however were able to stop. It looks to me almost as though they were wanting to have a game of grab. It is not pleasant to say such things, but it seems to be a fact. Oh, how I do wish we did not have to bring our denominational differences into a heathen land, but there seems to be no help for it.
I am in hopes that the trouble will be settled without any ill-feeling. You will think that I am so full of the work that I have not time to speak of anything else, but this is not the case, but although I sat down to write & thank you for your kind Christmas gift I got talking about the work I then ran on to this length.
|원문9=
It was indeed good of you to remember me in this way. It is so pleasant to be remembered out here in Korea, & I have put up the Kakemouas (have I spelt it rightly) along side of my mirror in the parlor, & they show up very prettily against my light colored paper. Do you know that I have a very handsome gilt paper in my parlor that my brother sent me & the show up beautifully against it. Very many thanks indeed for your kindness.
|원문10=
I am glad to hear from the Herons that Dr. Hepburn has now completed the Bible. How glad he must be & how rejoiced must all be at its completion. We are hard at work on the Gospels. Our Comm. on Translation is just now having weekly meetings. The Permanent Com. have their regular meeting at my house tonight at 7:30. We are going to make an effort to have the 4 gospels done & through the Press by July or August of this year.
|원문11=
Oh, how one thing leads to another. I must tell you about our week of prayer. We are to have a union week of prayer among the natives at the opening of the Korean or rather Chinese new year. We asked the Methodists to unite & we will end the week with the administration of the Lord's Supper. We are looking forward to this time & we expect a great blessing.
|원문12=
I do wish that you and the Dr. would come over here to take us young missionaries in charge, & tell us how & what to do. We do so need an older head. It seems to me that now the Doctor's (Dr. Hepburn) work on the Bible is done Korea ought to be his place. Can't you persuade him to consider the subject. There are scores of places coming up all the time where we need advice, & Dr. Heron & I say often one to the other ‘if we could only consult Dr. Hepburn.' I hope the Dr. is enjoying his work in the College, & that you are both in good health. It must be quite a tax on the Doctor to go back & forth to Tokio, but of course you would rather do this than move. How is your son & his wife? I hope that he is much better. Please remember me to them.
|원문13=
But I must close. You must already be weary of reading this & it is no easy matter for I have had to write it so fast. Kindly remember me to my friends. With many thanks for your kindness & for your thoughtful remembrance, & with much love to you & the Doctor I remain,

|원문14=Your Most Sincerely, |원문15=Horace G. Underwood

|번역문1=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번역문2=1888년 2월 6일 |번역문3=햅번인물 여사님께,

|번역문4=
여사님께서 지난 11월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한 것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_______제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도 여사님의 편지를 _______ 무척 바라는 생각에 _______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번 여사님께 보내 드린 편지를 여사님께서 활용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은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어떤 것을 찾아내셨다면 여사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있어 완전히 _______이셨던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본부단체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리라’는 기대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면서 이곳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진행되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였지만 본부}에 계신 분들은 이곳에 선교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분들은 현재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교회가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단체

주석

Under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