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804)"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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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헤론 의사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ref>헤론 박사는 1890년 7월 26일에 사망하였다. 이 때 선교사들이 정부와 타협해서 얻어 낸 곳이 지금의 마포 양화진 외국인 공동묘지이다.</ref>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헤론 의사가 병중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머물렀던 곳<ref>여름에 휴가차 선교사들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피서를 갔었다.</ref>에서 돌아온 후에,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곧 이질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구토가 시작되었는데 한 5일 동안 어떤 약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질의 독성이 체내에 들어와서 패혈증(敗血症)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수동안  무의식 상태로 간신히 연명하기도 했지만, 그 몇 일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의식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어서 어느 날 오후에는 우리가 다 함께 그가 있는 곳에 모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헤론 의사는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뿐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조용히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헤론 의사는 병이 시작될 때쯤부터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이것이 의사들이 취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회복될 수도 있을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미소(微少)했던지,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었는지 말하면서 그렇다해도 그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중국인이 그 방에 있었는데 헤론 의사는 그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린양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씻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승리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를 우리는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침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가 병환 중에 있는 기간 동안 줄곧 제가 그를 간호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가 별세한 후, 묘지를 선택하는 일을 비롯한 장례 준비는 대부분 제가 담당해야 할 일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공사는 그 땅을 처분하는데 있어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으로 저와 마펫 씨를 택했습니다. 이 일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은 이곳에서 1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한산성으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머무를 것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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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ref>{{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는 1890년 7월 26일에 사망하였다. 이 때 선교사들이 정부와 타협해서 얻어 낸 곳이 지금의 마포 양화진 외국인 공동묘지이다.</ref>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가 병중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머물렀던 곳<ref>여름에 휴가차 선교사들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피서를 갔었다.</ref>에서 돌아온 후에,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곧 이질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구토가 시작되었는데 한 5일 동안 어떤 약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질의 독성이 체내에 들어와서 패혈증(敗血症)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수동안  무의식 상태로 간신히 연명하기도 했지만, 그 몇 일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의식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어서 어느 날 오후에는 우리가 다 함께 그가 있는 곳에 모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는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뿐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조용히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는 병이 시작될 때쯤부터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이것이 의사들이 취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회복될 수도 있을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미소(微少)했던지,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었는지 말하면서 그렇다해도 그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중국인이 그 방에 있었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박사는 그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린양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씻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승리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를 우리는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침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가 병환 중에 있는 기간 동안 줄곧 제가 그를 간호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가 별세한 후, 묘지를 선택하는 일을 비롯한 장례 준비는 대부분 제가 담당해야 할 일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공사는 부지와 관련된 문제를 함께 처리할 사람으로 저와 {{선교사편지인물태그|[[Moffett, Samuel A.|마펫]]}}씨를 택했습니다. 일단 가능한 번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은 이곳에서 1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한산성으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머무를 것입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헤론 여사는 자신이 이곳에 계속 남아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면 헤론 여사는 그녀의 어머니도 이곳으로 오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헤론 여사는 여사의 어머니가 일본 공사관에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얻어 놓았는데, 여사의 어머니가 오게 된다면 그들은 함께 살 것 같습니다. 헤론 여사가 계속 있게 되면, 여사가 여학교의 책임자가 되며, 특수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로 시작했던 일을 계속해 나갈 것 같습니다. 헤론 여사가 정확히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 그 사역은 분명히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여사의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다른 일을 할 만한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헤론 여사가 해야 할 일은 틀림없이 많이 있을 겁니다. 아이들 때문에 다른 일을 전혀 못하게 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장례식 비용은 박사님께서 지불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편지를 보내 드린 바 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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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는 자신이 이곳에 계속 남아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면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는 그녀의 어머니도 이곳으로 오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는 여사의 어머니가 일본 공사관에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얻어 놓았는데, 여사의 어머니가 오게 된다면 그들은 함께 살 것 같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가 계속 있게 되면,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여사]]}}가 여학교의 책임자가 되며, 특정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로 시작했던 일을 계속해 나갈 것 같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가 정확히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 그 사역은 분명히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들이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여사]]}}의 시간을 너무 뺏지 않는다면 의심할 바 없이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 여사]]}}가 할 일은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어리광 피울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장례식 비용은 박사님께서 지불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편지를 보내 드린 바 있습니다.</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그 이후에 선교부 회의가 있었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례(定例) 보고에서 듣게 되실 것입니다.</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그 이후에 선교부 회의가 있었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례(定例) 보고에서 듣게 되실 것입니다.</div>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알렌 의사가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렌 의사는 제게 찾아와 “그 일을 수락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알렌 의사에게, “그가 한국으로 나왔을 때 선교사였으니 그대로 선교사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알렌 의사는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그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이중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사관의 서기관으로서 그가 훌륭하고도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많이 수행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만일 그가 정치적인 직임을 맡게 된다면 선교부와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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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박사가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박사는 제게 찾아와 “그 일을 수락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박사에게, “그가 한국으로 나왔을 때 선교사였으니 그대로 선교사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박사는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그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이중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사관의 서기관으로서 그가 훌륭하고도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많이 수행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만일 그가 정치적인 직임을 맡게 된다면 선교부와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div>
|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현재 알렌 의사는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제물포에 두도록 선교부에서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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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현재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박사는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에 거주할 수 있도록 선교부에서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div>
 
|번역문10=<div style="text-align:justify">(다음 쪽은 아마도 분실----)</div>
 
|번역문10=<div style="text-align:justify">(다음 쪽은 아마도 분실----)</div>
 
|번역문11=<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 모두는 이 다음의 선교지부는 북쪽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평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div>
 
|번역문11=<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 모두는 이 다음의 선교지부는 북쪽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평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div>
 
|번역문12=<div style="text-align:justify">너무 긴 편지가 되어 버렸습니다.</div>
 
|번역문12=<div style="text-align:justify">너무 긴 편지가 되어 버렸습니다.</div>
|번역문13=<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는 지금 남한산성에 있는데 날마다 20-30명의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자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한 후에, 그들은 우리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많은 책이 판매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배우고자 매일 매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가 사람을 보내준다면 그들은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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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3=<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는 지금 남한산성에 있는데 날마다 20-30명의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자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한 후에, 그들은 우리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많은 책이 판매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배우고자 매일 매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가르칠 사람을 보내준다면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14=<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부요한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div>
 
|번역문14=<div style="text-align:justify">우리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부요한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div>
 
|번역문15=<div style="text-align:justify">안녕히 계십시오.</div>
 
|번역문15=<div style="text-align:justify">안녕히 계십시오.</div>
|번역문16=<div style="text-align:justify">언더우드 올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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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6=<div style="text-align:justify">{{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H. G. 언더우드]]}} 올림.</div>
 
|번역문17=<div style="text-align:justify">추신: 부산이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제 선교지부를 한 군데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곳은 평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우편으로, 우리 세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한 편지의 사본을 저의 필체로 적어 보내 드립니다.</div>
 
|번역문17=<div style="text-align:justify">추신: 부산이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제 선교지부를 한 군데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곳은 평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우편으로, 우리 세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한 편지의 사본을 저의 필체로 적어 보내 드립니다.</div>
 
|번역문18=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번역문18=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번역문19=언더우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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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9={{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언더우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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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5일 (월) 16:3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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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0년 8월 4일)
식별자 L18900804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0년 8월 4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Aug, 4 1890)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90년
작성월일 8월 4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언더우드인물
Seoul, Korea 서울공간, 한국
Aug 4, 1890 1890년 8월 4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Of course you have ere this heard of the sad death of Dr. Heron. He was sick but a short time. He came in from the place that he was staying at for the summer & was taken with diarrhoea which soon developed into dysentery. At the same time nausea set in 6 thus he was for almost five days unable to get the effects of any medicine. In this way the poison from the dysentery seems to have entered the system & blood poisoning set in. He lingered for several out of his mind but most of the time conscious for several days and then sank lower & lower until one afternoon we were all gathered there thinking that his end had come. From this he rallied & hope revived but it was only for a few days & then he passed quietly and peacefully away. He knew almost from the start that it was to the death, this as you will know was against the doctors, not a moment did he waver, not a doubt did he express. He spoke about the work that he had done, how little it had been, how he wished that it had been more but how it had all been done for Jesus. Once a Chinaman, who had spent many years in America, was in the room & Dr. Heron, looking at him said, "Jesus, Jesus all washed in the blood of the Lamb." His was a triumphant death and we hope & pray that even his death may not be without fruits. As soon as I heard he was sick, I went up & took my place at his bedside. He seemed to think that that was right & throughout his sickness seemed to be glad to have me nurse him. I was in with him most of the time night & day, so that I was unable to write before. Then as soon as he was dead the preparation for the funeral selecting of a cemetery mostly fell to me, then the U. S. Minister appointed Mr. Moffett & I to act with him in settling the estate. This is now done as far as it can be and tomorrow we will start for Nam Han 17 miles from here where we will spend a week or ten days.
헤론인물 박사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1]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헤론인물 박사가 병중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머물렀던 곳[2]에서 돌아온 후에,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곧 이질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구토가 시작되었는데 한 5일 동안 어떤 약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질의 독성이 체내에 들어와서 패혈증(敗血症)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수동안 무의식 상태로 간신히 연명하기도 했지만, 그 몇 일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의식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어서 어느 날 오후에는 우리가 다 함께 그가 있는 곳에 모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헤론인물 박사는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뿐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조용히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헤론인물 박사는 병이 시작될 때쯤부터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이것이 의사들이 취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회복될 수도 있을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미소(微少)했던지,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었는지 말하면서 그렇다해도 그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중국인이 그 방에 있었는데 헤론인물 박사는 그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린양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씻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승리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를 우리는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침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가 병환 중에 있는 기간 동안 줄곧 제가 그를 간호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가 별세한 후, 묘지를 선택하는 일을 비롯한 장례 준비는 대부분 제가 담당해야 할 일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공사는 부지와 관련된 문제를 함께 처리할 사람으로 저와 마펫인물씨를 택했습니다. 일단 가능한 번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은 이곳에서 1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한산성으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머무를 것입니다.
Mrs. Heron desires to stay on and work here. She is expecting her mother out if she stays. She has got some teaching work for her at the Japanese Legation and if she comes they will I suppose live together. If Mrs. Heron stays I suppose she will take charge of the girls school & continue the work that she has begun among a certain class of women. I do not know what class it is but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is a growing work. There will undoubtedly be plenty of work for her, if her two little ones do not take up all of her time and I see no reason why they should. About the funeral expenses we have written you asking for money to pay them.
헤론 여사인물는 자신이 이곳에 계속 남아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면 헤론 여사인물는 그녀의 어머니도 이곳으로 오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헤론 여사인물는 여사의 어머니가 일본 공사관에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얻어 놓았는데, 여사의 어머니가 오게 된다면 그들은 함께 살 것 같습니다. 헤론 여사인물가 계속 있게 되면, 여사인물가 여학교의 책임자가 되며, 특정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로 시작했던 일을 계속해 나갈 것 같습니다. 헤론 여사인물가 정확히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 그 사역은 분명히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들이 여사인물의 시간을 너무 뺏지 않는다면 의심할 바 없이 헤론 여사인물가 할 일은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어리광 피울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장례식 비용은 박사님께서 지불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편지를 보내 드린 바 있습니다.
Since then we have had a mission meeting at which various matters came up of which you will hear in the general report of the meeting.
그 이후에 선교부 회의가 있었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례(定例) 보고에서 듣게 되실 것입니다.
Of course you will have heard of Dr. Allen's appointment as Secretary of the Legation. He came and asked my advice about accepting it and I strongly urged him to remain what he came out a missionary. This he could not see his way to and as you know has been sworn into office. What his final intentions are I do not know but I hardly think he ought to hold the double position. While as Secretary of the Legation he can do a great deal of good & real missionary work I think if he enters a political position he ought to sever his connections with the Mission.
알렌인물 박사가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렌인물 박사는 제게 찾아와 “그 일을 수락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알렌인물 박사에게, “그가 한국으로 나왔을 때 선교사였으니 그대로 선교사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알렌인물 박사는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그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이중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사관의 서기관으로서 그가 훌륭하고도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많이 수행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만일 그가 정치적인 직임을 맡게 된다면 선교부와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e at present is in a peculiar position. He asked the Missions permission to locate at Chemulpo.
현재 알렌인물 박사는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제물포공간에 거주할 수 있도록 선교부에서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next page possibly missing---)
(다음 쪽은 아마도 분실----)
We all feel that the next station should be in the North and as the Japanese are already living at Pyeng Yang there is no reason why we should not.
우리 모두는 이 다음의 선교지부는 북쪽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평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But my letter has already become too long.
너무 긴 편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We are at Nam Han & every day people from 20 to 30 are coming to know about the truth. A very good impression has been given the people about us by the actions toward them and they appear favorably impressed towards our faith. A good number of books have been sold and many of the people are coming every day to study about the truth. They offer to provide a room if we will send someone out to teach them.
우리는 지금 남한산성에 있는데 날마다 20-30명의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자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한 후에, 그들은 우리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많은 책이 판매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배우고자 매일 매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가르칠 사람을 보내준다면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Pray for us that in all our work we may do it for the Lord and with an eye single to his glory and that his richest blessings may rest upon us.
우리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부요한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Yours Most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H. G. 언더우드인물 올림.
P.S. Do not understand me as saying that Fusan is not a good place but if only one station can be started it should be Pyeng Yang. This same mail will bring you a letter from the three of us which was jointly prepared I was asked to copy .
추신: 부산이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제 선교지부를 한 군데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곳은 평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우편으로, 우리 세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한 편지의 사본을 저의 필체로 적어 보내 드립니다.
Yours,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H. G .U.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

  1. 헤론인물 박사는 1890년 7월 26일에 사망하였다. 이 때 선교사들이 정부와 타협해서 얻어 낸 곳이 지금의 마포 양화진 외국인 공동묘지이다.
  2. 여름에 휴가차 선교사들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피서를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