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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hh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5월 20일 (금) 08: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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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보명의 목우도

Synopsis

보명의 목우도에 대해 알아보자.

Storyline

보명

보명(普明)의 목우도가 곽암의 십우도보다 원형에 가깝다. 보명은 송나라때, 섬서성(陝西省) 보계(寶雞) 태백현(太白縣) 태백산(太白山)에 상주하였다. 보명은 생몰연대가 명확치 않다. 게송은 보명이 지은 것이지만, 그림도 보명의 것인지 확실치 않다. 운서 주굉(1535~1615)도 서문에서 ‘보명이 어느 곳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림과 게송도 한 사람 손에서 나왔는지 확실치 않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명 십우도에 화송을 지은 운암 극문이 곽암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는 곽암의 십우도보다 보명의 목우송이 앞서 있음을 증명한다. 한편 운암과 청거의 목우도 명칭이 같은 점을 볼 때, 어느 것이 앞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곧 보명이 청거의 목우도를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면, 연대적으로 청거 → 보명 → 곽암의 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청거 호승의 목우도는 12장인데 현존하지 않고, 곽암 십우도 총서와 󰡔종용록󰡕의 인용문을 볼 때, 두 목우도의 구성이나 사상이 비슷하다고 본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청거의 목우도[12장]가 먼저 등장했고, 보명이 10장으로 수정ㆍ보완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목우도

첫 번째 그림 미목(未牧)은 소를 아직 길들이기 이전의 상태를 묘사하였다. 게송의 ‘좋은 싹[佳苗]’이란 모든 중생에게 청정하게 본래 구족된 본 자성, 불성을 말한다. 성난 뿔을 쳐들고 날뛰는 검은 소는 객진망념으로 뒤덮인 번뇌를 상징한다. 곧 아직 길들이기 이전의 소란 원래 본유(本有)의 각성(覺性)인 마음인데, 잠시 번뇌 속에 가려져 있는 본심[本心:白牛]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소가 날뛰는 상태를 묘사한다. 게송을 보면 이러하다. 성난 뿔 달고서 멋대로 울부짖으며, 시냇물과 산기슭을 분주히 달린다.한 조각 검은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걸려있으니 누가 알겠는가? 걸음마다 좋은 싹, 해치는 것을. 두 번째 그림 초조(初調)는 처음으로 소를 길들이기 시작하는 단계를 묘사하였다. 소 코에 고삐를 꿰어 당기는데, 주둥이 부분만 희게 나타나 있다. 내게 있는 고삐로 곧바로 코를 꿰뚫어서 한번 잡아 당겨 채찍질을 가한다. 이전부터 성질이 나빠서 길들이기 어려워 목동이 여전히 힘으로 당긴다. 수행의 첫걸음을 내딛는 단계이다. 모든 존재에 내재(內在)된 진여성인 이불성(理佛性)임을 통감하고, 수행을 통해 이불성을 현실화하는 작용인 행불성(行佛性)이 시작된다. 곧 본래 갖고 있는 불성임을 신심한 뒤 이 불성을 현현하기 위해 정진을 시도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그림 수제(受制)는 소가 목동의 제재를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길들여지는 상태의 단계이다. 점차 조복되어 가면서 날뛰는 것을 그치었네. 물 건너고 구름을 넘으며 걸음걸음 뒤따른다. 손으로 쥔 고삐를 잠시도 늦추지 않지만, 목동은 종일토록 피로를 잊는다. 마음소가 원래 객진망념이 아니라 잠시 구름에 뒤덮인 태양과 같음을 자각하고, 더더욱 정진하는 단계이다. 조금씩 번뇌를 조복 받으면서 수행하자, 검은 소의 머리 부분이 희게 되어간다. 네 번째 그림 회수(廻首)는 소가 본심으로 돌아와 목동을 따르는 단계이다. 오랫동안 공력을 들이니 비로소 소가 머리를 돌린다. 미친듯한 기운이 점차로 부드러워진다. 그래도 목동은 아직 마음을 놓지 않고, 오히려 고삐를 매어 둔다. 수행의 공력이 점점 커져서 마음소의 야성을 부드럽게 길들이는 단계이다. 목동과 소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마음소가 순응한다. 회수란 광기를 조금 가라앉히고, 자기의 번뇌망상을 잘 길들여 자신의 본각 자성에 상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도 소의 야성이 살아 있어 목동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긴장을 하는 단계이다. 소의 앞발과 머리가 흰 검은 소의 단계이다. 다섯 번째 그림 순복(馴伏)은 소가 객기를 버리고 목동에게 저절로 굴복해 길들여지는 단계이다. 푸른 버들 그늘 아래 시냇가에 풀어놓고, 거두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었네. 해질녘 푸른 구름 방초의 땅에서 목동이 오고가도 굳이 고삐를 잡지 않는다. 소가 목동의 제지하고 이끌림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단계이다. 목동이 마음소에게 굳이 방편을 쓰지 않는 것이다. 마음소가 외부의 망상 번뇌에 현혹되지 않고 내부의 마음작용에 순화되는 단계이다. 마음소가 도망치지 않는데, 이는 곧 소와 목동이 결국 하나임을 자각하였다. 소는 몸통 뒷부분을 제외하고, 앞 부분만 흰 검은 소의 모습이다. 여섯 번째 그림 무애(無碍)는 소를 그냥 두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걸림 없는 단계이다. 맨땅에서 잠을 청해도 마음이 자유롭네. 수고로이 채찍질을 하지 않아도 걸림이 없다. 목동은 푸른 소나무 아래 편히 앉아 태평가를 부르며, 여유로움을 즐긴다. 마음소와 목동은 더 이상의 대립이 없는 경지이다. 자기 망정의 혼침과 산란심 등이 평온해져셔 동정일여(動靜一如)된 경지이다. 곧 어떤 대상 경계에도 끄달리거나 흔들림이 없는 부동(不動)의 단계이다. 소는 꼬리만 제외하고 모두 희어졌다. 일곱 번째 그림 임운(任運)은 목동이 소를 믿고, 소가 스스로 알아서 행하도록 흐름에 맡기는 단계이다. 버들가지 늘어진 언덕에 봄 물결의 석양 속, 아지랑이 풀밭에는 녹음이 우거지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시간에 맡겨 지낸다. 바위 위에 앉은 목동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네. 자연법이(自然法爾)된 경지이다. 목동은 목동대로, 마음소는 소 나름대로 행해도 자연스러운 단계이다. 꼬리만 검은 소가 풀을 뜯고 있다. 여덟 번째 그림 상망(相忘)은 소와 목동이 서로 상대를 잊어버린 경지의 단계이다. 흰 소는 늘 흰 구름 속에서 자재하고, 사람이 무심한데 소도 그러하다. 달이 흰 구름 속을 뚫고 지나니 구름 그림자 희어지고, 흰 구름에 밝은 달이 동서로 오간다. 완전히 꼬리까지 흰 소와 목동이 구름 위에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대립이나 차별이 없는 무심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꼬리마저 흰 색이 된 모습이다. 아홉 번째 그림 독조(獨照)는 소는 소대로, 목동은 목동대로 각각 자기 스스로 반조할 수 있는 단계이다. 흰 소는 사라지고 홀로 있는 목동이 노래 부른다. 소는 사라지고, 목동은 저절로 한가롭다. 한 조각 외로운 구름이 높은 봉우리 사이에 떠 있네. 밝은 달빛 아래 박수치고 노래 부르지만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도 한 관문이 남아 있다. 마음 소는 사라지고 목동만이 달빛 아래 앉아 있는데, 무심의 작용조차 사라져 참된 본성에 안주해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작용인 한 겹의 관문이 남아있다. 열 번째 그림 쌍민(雙泯)은 목동과 소, 둘 다 자취를 소멸한 단계이다. 사람도 소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밝은 달빛 차가우니 만상이 텅 비어 있다. 혹 누가 이 뜻을 묻는다면, 야방화초가 스스로 무성하다고 하리라. 마음소도 목동도 사라진 경계를 일원상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참된 깨달음의 단계는 무위(無爲)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이다. 곧 정각의 구경이다. 곧 제법실상의 여여한 경지이다. 이와 같이 각 단계에서 언급한대로 목동이 소가 길들여지는 과정의 진행을 소의 털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검은 소가 차츰 머리부터 시작해서 검은 털이 벗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