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lbert, Home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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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Homer Bezaleel Hulbert
"[https://ko.wikipedia.org/wiki/호머_헐버트 『Wikipedia』the free encyclopedia
한글명 허할보
영문명 Homer Bezaleel Hulbert
한자명 許轄甫
이칭 허할보(許轄甫),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
성별
생년 1863년 1월 26일
몰년 1949년 8월 5일
소속 미국 회중교회 목사(1908-), 미국 감리회 선교사(1893-1907)
직업 선교사, 목사, 교육자
내한 연도 1886년
출신지 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븐(Vermont New Haven)
출신학교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아버지 칼빈 헐버트(Calvin Butler Hulbert)
어머니 메리 우드워드 헐버트(Mary Woodward Hulbert)
배우자 메이 헐버트(Hope Elizabeth May)
자녀 슬하 3남 2녀


기본 정보

  • 헐버트(Homer B. Hulbert)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동북부 지방 버몬트 주(Vermont) 뉴헤이븐(New Hav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빈 헐버트(Calvin B. Hulbert)는 미들베리 대학의 총장이었으며, 어머니 매리 우드워드(Mary Woodward Hulbert)는 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의 창립자 엘리저 윌록(Eleazar Wheelock)의 외 증손녀이다.
  • 1884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헐버트는 1883년 가을 길고 흰 망토를 입고, 머리는 상투와 갓끈의 기이한 차림을 한 조선인을 보았다. 힐버트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았으나 조선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 1886년 길모어, 벙커등과 함께 조선에서 육영공원에 교사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한국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교사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1893년에 헐버트는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파송 준비과정을 마치고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상세 정보

  •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배재학당 내에 있는 삼문 출판사를 운영하였다. 올링거 선교사가 시작한 영문 잡지 The Korea Repository의 발행을 재개하고, 한국의 문화, 종교, 농업, 언어 등 한국에 대해 정리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그는 한국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활판소에서 일하던 주시경은 헐버트와의 교제를 통해 띄어쓰기와 외래어표기에 대한 감각을 얻었다. 1892년 「The Korean Alphabet」을 시작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1901년부터 1906년까지 The Korea Review를 편집하고 발간하여 한국의 다양한 면모를 서구 사회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의 몰락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한 민족이 역사와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지배당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고종의 밀사로 활약했으나 실패하고 미국으로 추방당한다.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의 분리독립과 일제의 침탈행위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대중에게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쉬지 않는다.「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와 「대한역사」도 그런 맥락에서 저술했다.
  • 육영공원 학교는 고종이 신교육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주권을 갖춘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귀족들에게 미국의 신교육을 전하기 위해 한국 주재 미국 공사인 푸트(Lucius H. Foote)에게 미국인 교사 3명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미국 국부성 교육국장 존 이튼(John Eaton)은 보고를 받고, 헐버트의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을 한국에 보낼 것을 요청 하였다. 헐버트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1886년 7월 4일 길모어(George W. Gilmore), 벙커(Dalzell A. Bunker)와 함께 교사로서 수학, 자연과학, 역사, 정치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고종은 교과서 집필을 위해 헐버트에게 『사민필지』를 저술하도록 하였다. 이 책에는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순서로, 위치, 지형, 기후, 산업, 인구, 교육, 종교, 언어 등 구체적인 각 나라의 상황들이 서술된 순 한글 교과서이다.
  • 광복 후 1949년 내한했으나 일주일 만에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길 원하노라."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소원대로 양화진에 묻혔다.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뤄졌으며, 1950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인 최초로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