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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sites.bu.edu/koreandiaspora/issues/the-impact-of-boston-university-in-the-history-of-korean-nursing/ Annie J. El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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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연도=188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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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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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엘러즈(Annie J. Ellers)는 한국에 온 첫 번째 여성의료선교사이며, 1888년까지 제중원의 여의사로 근무하며 명성왕후의 시의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 고아학당에 들어온 다섯 살 소녀를 데리고 1887년 정동여학당(후일 정신여학교)이 될 여학교를 시작했다.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한 벙커와 결혼하고 나서 감리교 선교회로 옮겨서 벙커의 목회를 도우며, 이화학당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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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엘러스(Annie J. Ellers)는 한국에 온 첫 번째 여성의료선교사이다.
미국 미시건 비오크에서 장로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락포드 대학 재학 중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보스턴 의학교로 진학했다. 한국에서 여성의료선교사를 급하게 요청해 와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1년을 남겨두고 내한했다. 다른 여의사가 올 때까지 제중원에서 여환자들을 돌보고 왕실의 귀부인들을 진료하는 일을 했다. 1888년 의사자격을 갖춘 릴리어스 호튼(Lillias S. Horton)이 내한해서 뒤를 잇고, 애니 엘러즈는 벙커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여학교 사역을 하고 싶어했으나 장로교 선교회는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였고 남편 벙커와 감리교 선교회로 이적했다. 한국을 떠나지 않고 부인선교사로 다양한 사역을 하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한국에서 생을 다하고 양화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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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건 버오크에서 장로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락포드 대학 재학 중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보스턴 의학교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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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의료선교사를 급하게 요청해 와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1년을 남겨두고 내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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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까지 제중원의 여의사로 근무하며, 명성왕후의 시의로 임명되어 정경부인의 품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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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공원 교사로 초빙받아 같은 배를 타고 내한한 벙커와 1887년 9월 [[알렌의 사택]]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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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7월 장로교 선교회를 사임한다. 이후 감리교 선교회로 옮겨서 벙커의 목회를 도우며, 이화학당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YWCA창설을 위해 5000엔을 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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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선교사 은퇴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다 남편이 소천하자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유골을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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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재내한하여 소래에서 거주하다 1938년 8월 8일 정동 그레이 하우스에서 소천했다. 양화진에 묻힌 남편과 합장했다.
  
 
==상세 정보==
 
==상세 정보==
내한 후 결혼 전까지 알렌(Horace N. Allen)의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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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 후 결혼 전까지 [[Allen, Horace N.|알렌(Horace N. Allen)]]의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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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122)|1887년 1월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

2019년 4월 9일 (화) 16:0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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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엘러스
Annie J. Elllers
한글명 애니 엘러스
영문명 Annie J. Ellers
한자명 房巨夫人
성별 여자
생년 1860년
몰년 1938년
소속 장로교(1886-1887), 감리교(1895-1926)
직업 선교사, 간호사
내한 연도 1886년 7월
출신지 미국 미시건
출신학교 Rockford Female Seminary[1],
Boston University Medical College
배우자 달젤 벙커(Rev. Dalziel A. Bunker, 1858-1932)


기본 정보

애니 엘러스(Annie J. Ellers)는 한국에 온 첫 번째 여성의료선교사이다. 미국 미시건 버오크에서 장로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락포드 대학 재학 중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보스턴 의학교로 진학했다. 한국에서 여성의료선교사를 급하게 요청해 와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1년을 남겨두고 내한했다. 1888년까지 제중원의 여의사로 근무하며, 명성왕후의 시의로 임명되어 정경부인의 품계를 얻었다. 언더우드 고아학당에 들어온 다섯 살 소녀를 데리고 1887년 6월 정동여학당(후일 정신여학교)이 될 여학교를 시작했다. 육영공원 교사로 초빙받아 같은 배를 타고 내한한 벙커와 1887년 9월 알렌의 사택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887년 7월 장로교 선교회를 사임한다. 이후 감리교 선교회로 옮겨서 벙커의 목회를 도우며, 이화학당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YWCA창설을 위해 5000엔을 희사했다. 1927년 선교사 은퇴 후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다 남편이 소천하자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유골을 안장했다. 1937년 재내한하여 소래에서 거주하다 1938년 8월 8일 정동 그레이 하우스에서 소천했다. 양화진에 묻힌 남편과 합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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