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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梁公昔日據山城 (<small>양공석일거산'''성'''</small>) 옛적에 양헌수 장군 정족산에 진을 치고,<br />軍令分明破賊兵 (<small>군령분명파적'''병'''</small>) 분명한 명령으로 적병을 물리쳤네.<br />一片碑文如彼白 (<small>일편패문여피일</small>)   한 조각 비문이 저처럼 하얀데, <br />丙寅年後幾秋聲 (<small>병인년후기추'''성'''</small>) 병인양요 겪은 지가 몇 년이 되었는가.<br /></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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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梁公昔日據山城 (<small>양공석일거산'''성'''</small>)   옛적에 양헌수 장군 정족산에 진을 치고,<br />軍令分明破賊兵 (<small>군령분명파적'''병'''</small>)   분명한 명령으로 적병을 물리쳤네.<br />一片碑文如彼白 (<small>일편패문여피일</small>)   한 조각 비문이 저처럼 하얀데, <br />丙寅年後幾秋聲 (<small>병인년후기추'''성'''</small>)   병인양요 겪은 지가 몇 년이 되었는가.<br /></big>
  
  

2019년 4월 11일 (목) 14:08 판

梁公昔日據山城 (양공석일거산)    옛적에 양헌수 장군 정족산에 진을 치고,
軍令分明破賊兵 (군령분명파적) 분명한 명령으로 적병을 물리쳤네.
一片碑文如彼白 (일편패문여피일) 한 조각 비문이 저처럼 하얀데,
丙寅年後幾秋聲 (병인년후기추) 병인양요 겪은 지가 몇 년이 되었는가.


○ 병인년 난리에 양(梁) 장군이 순무 천총으로서 정족성에 들어 가 대항하여 서양인들과 전투를 벌여서 승리가 매우 많았다. 황상의 갑술년(1874) 유수 조병식(趙秉式)496)이 종루의 동쪽에 비각을 세웠다. 양공은 이름이 헌수(憲洙)이다.

494) 양헌수(1816∼1888)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보(敬甫).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을 패퇴시켰다. 495) 구창서발문본에는 ʻ文ʼ이 ʻ石ʼ으로 되어 있다. 496) 조병식(1823∼1907)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공훈(公訓). 1874년 강화부유 수를 지냈다. 이후예조·형조·이조·공조 판서를 거쳐, 충청도관찰사, 법부대신, 외부대신, 내부대신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