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월곶동(月串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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鷰尾亭前鎭月 (연미정전진월)     연미정 앞에는 둥근 달이 기울어 가는데, 
黃公舊屋別成 (황공구옥별성) 황공의 옛집이 규모 있게 서있네.
一苞奇竹千松樹 (일포기죽천송수) 기이한 대숲과 수천 그루 솔숲은,
認是當年種德 (인시당년종덕) 그 당시 덕 베풀던 터인 줄을 알려주네.


○ 성종과 중종 때 창원 황씨 판서 지촌(芝村) 황형(黃衡)279)은 무로써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번 전공을 세워서 관직이 공조판서에까지 올랐으며 일찍이 강화도로 물러나 거주하면서 월곶(月串)의 연미정(燕尾亭) 아래에다가 집을 짓고 종을 시켜 나무를 심었는데 수천 그 루에 이르렀다. 어떤 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이 심느냐?”라고 말을 하자 지촌은 “후에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임진년(1592) 난리 때에 첨병과 의병이 강도에 들어와 지켰는데 배와 목책들이 모두 마련되어서 모자람이 없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의 멀리 보는 식견에 탄복하였다.

○ 월곶에 진을 설치한 후에는 옛 집터를 진(鎭)의 관아로 삼았다. 지금 이미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새집처럼 견고하였다. 서로 전하기를 “바꾸려고 하면 재앙이 들었다. 섬돌 아래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는 데 지촌이 직접 심은 것이다. 마도(馬島)에서 군대를 돌릴 때 옮긴 것이다.”라고 한다. 공은 휘가 형(衡)이며 시호가 장무(莊武)이다.

인물

  • 황형(1459∼1520)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언평(彦平).


참고

  • 월곶동 : 강화읍 월곶리로 예전에 월곶진(月串鎭)이 있었다.
  • 上平 支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