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봉 1보루 연화문 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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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6월 24일 (금) 18: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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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홍련봉 1보루 연화문 와당은 남한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고구려 연화문 와당으로, 홍련봉 1보루 기와 건물지에 사용된 기와로 확인되었다. 『新唐書』에 따르면 고구려 후기에는 기와가 왕궁이나 관청, 사찰 등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홍련봉 1보루에서 연화문 와당을 사용하는 기와 건물지가 확인되는 점은 아차산에 행정관청이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홍련봉 1보루 보다 규모가 크고, 많은 시설과 중요 유물들이 확인된 아차산 3보루아차산 4보루에서는 기와가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홍련봉 1보루는 해발 125m에 위치하여, 아차산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가장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대민(對民) 기능을 담당하는 행정관청이 들어서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홍련봉 1보루가 아차산 보루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보더라도 아차산 보루군을 관장하는 군사지휘소 역할은 규모가 가장 큰 아차산 3보루나 아차산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투구나 명문접시 등과 같은 주요 유물이 출토된 아차산 4보루에서 담당하였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아차산 보루군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행정관청을 홍련봉 1보루에 축조함으로써 한강 유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차산의 첫 번째 봉우리에 축조된 기와 건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대민 기능의 효율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구려 성곽에는 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어 시설이다. 일반 성벽에서는 적과 1:1로 마주보고 전투를 치러야 하지만, 성벽에서 돌축된 치에서는 성벽을 공격하는 적의 측면도 공격할 수 있다. 아차산 보루군에서는 홍련봉 1보루를 제외한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치는 보통의 체성벽에 비해 훨씬 견고하게 축조되는데, 이는 성곽 내에서 치가 차지하는 중요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는 전망이 좋아 적의 동태를 보다 용이하게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이나 적의 접근로와 같이 방어상 취약한 곳에 설치된다. 지상 건물지에서는 주변에 소결된 점토 덩어리가 확인되고 있는데, 돌로 건물의 경계 및 기초를 삼은 다음 그 위에 점토와 볏집 등을 섞어 만든 벽체를 이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아차산 보루군에서 확인되고 있는 건물지에는 대체로 1개 이상의 쪽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쪽구들 주변에서는 접시나 완, 호, 옹 등 생활 용기로 사용된 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있다. 이밖에도 구의동 보루에서는 쪽구들의 아궁이에 놓였던 철솥이, 아차산 4보루에서는 배연구에 놓였던 연통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쪽구들이 있는 건물지는 군사들이 평상시 거주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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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등자 A는 B와 관련된다 아차산 4보루 철제 투구

고려대학교고고환경연구소 에서 조사

갤러리

주석

  1. 아래 사진출처: '아홉달 애태운 접시 반쪽 찾은 날 기쁨의 회식', 동아닷컴, 2016년 5월 26일 기사
  2. 사진출처: 최종택, 「아차산 고구려 보루 발굴 10년, 성과와 의의」, 한국사 시민강좌, 44,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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