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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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 Overview

한국어 / Korean

향현사는 이 지역이 낳은 인물 중에서 후세의 모범이 될만한 사람 12명을 뽑아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으로 강릉시 교동 238-3번지 명륜고등학교 뒷편에 있다. [1]

영어 / English

Hyanghyeonsa Temple was built to enshrine the memorial tablet and honor the ancestral rites by selecting 12 people who could serve as an example for future generations from the people born in this area, and is located behind Myeongryun High School, 238-3 Gyo-dong, Gangneung-si.

지도 / Map

향현사 지도.jpg

해설 / Commentary

향현사 / Yongheunggung

본격적으로 향현사를 논하기 전에 지방에는 서원(書院)·영당(影堂) 등 다양한 제향 기관이 병존하고 있었으므로, 이들과 향현사를 비교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본디 향현사(鄕賢社)란 말 자체는 비단 강릉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향현사는 “한 고을의 모범이 되는 명현(名賢)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을 가리키는 역사적 개념이었다. 현재에도 전라남도 진도군에 향현사가 있으며, 강원도 정선군에도 향현사가 있으며, 강원도 정선군에도 향현사가 있다. 보통 명사로서의 향현사를 여타 기관과 비교하자면 강학 기관과 제향 기관을 겸하고 있는 서원보다 한 단계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당(影堂)은 본래 죽은 이의 영정(影幀)을 모시는 사당인데, 영정 혹은 화상(畫像)은 고관(高官)이나 공신(功臣)에게 수여되는 특혜이므로, 향현사보다는 영당의 위격이 높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중건되기 이전의 향현사는 영당과 서원보다 그 규모가 작았다고 이해된다. [2] [3]


본고에서 다루는 강릉 향현사의 연혁은 3단계로 대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초건(初建)의 시기이다. 처음에는 1645년(인조 23)에 강릉 부사 강백년(姜柏年)과 전직 관리인 김충각(金忠慤), 김성원(金聲源) 등이 논의하여 향현(鄕賢)들의 행적과 얼을 후세(後世)에 전하고자 건립하였다고 한다. 최치운(崔致雲)·최응현(崔應賢)·박수량(朴遂良)·박공달(朴公達)·최수성(崔壽城)·최운우(崔雲遇) 등 6현을 모셨다. 두 번째는 추향(追享)의 시기이다. 1682년(숙종 8), 1759년(영조 35), 1808년(순조 8)에 걸쳐 이성무(李成茂)·김윤신(金潤身)·박억추(朴億秋)·김열(金說)·김담(金譚)을 추향(追享)하게 되면서 현재의 12현을 갖추게 되었다.

세 번째는 중건(重建)과 이건(移建)의 시기이다. 1867년(고종 4) 강릉부(江陵府)에서 일어난 큰 화재로 창건 당시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중건하지 못하다가 1921년 봄 후손들이 지금의 건물을 세웠다. 황영조 기념체육관 건립 계획에 따라 1995년 지금의 자리인 명륜고등학교 뒤로 이전하였다. 4차에 걸쳐 12명을 제향한 사례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제향인을 모신 사우라는 특징이 있다. 제향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4]


한글성명 한자성명 생몰년대 제향년도 본관 관직
최치운 崔致雲 1390~1440 1645년 伯卿 釣隱 江陵 參判
이성무 李成茂 1370~1436? 1759년 聖始 訥齋 嶺海 司憲
최응현 崔應賢 1428~1507 1645년 寶臣 睡軒 江陵 縣監
최수 崔洙 1443~1472 1682년 道源 春軒 江陵 牧使
김윤신 金潤身 1444~1472 1808년 德叟 槐堂 江陵 佐郞
박공달 朴公達 1470~? 1645년 大觀 四休堂 江陵 縣監
박수량 朴遂良 1475~1521 1645년 君擧 三可堂 江陵
최수성 崔壽峸 1487~1521 1645년 可鎭 猿亭 江陵
김열 金說 1506~? 1808년 說之 臨鏡堂 江陵
김담 金譚 1522~1605 1759년 譚之 葆眞齋 江陵 府使
박억추 朴億秋 1523~1590 1759년 德叟 聾軒 江陵 縣監
최운우 崔雲遇 1532~1605 1645년 時中 蹈景 江陵


위의 표에서 특기할 점은 생몰년과 제향 년도가 순차적으로 대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정된 기준은 학문과 효행으로 대표되는 성리학적 사회 질서 확립에 기여한 인물로 보인다. 아울러 지역 유림의 합의로 제향된 만큼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거성(巨姓) 출신이 대부분이다.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향현사의 핵심 기능은 제향이다. 본래 강릉 향현사의 제향은 매년 중춘추(仲春秋) 중정일(中丁日)에 시행했으나, 1921년 이건(移建) 뒤에는 중추(仲秋) 중정일(中丁日)에만 제향한다고 한다. 제향 절차는 다른 사원 및 사우와 비슷하다. [5]

출처 / Sources

  1. '향현사', 솔향강릉 향현사 제향
  2. '향현사', 두산백과 향현사
  3. '향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현사
  4. 金東燦, 「江陵 響賢祠 硏究」, 『嶺東文化』 5, 관동대학교 영동문화연구소, 1994.
  5. 장동표, 「朝鮮과 明의 鄕賢 추숭과 鄕賢祠 건립 비교 연구」, 『효원사학회』 52, 역사와 세계, 2017.


기여 / Contributors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22년 10월 편집 및 정리 한태빈 한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