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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에게 '''통영'''은 각별한 곳이었다. 백석이 흠모하였던 여인 [[란]]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도현의 「백석평전」에 따르면 [[백석]]은 먼 통영을 세번 혹은 네번 정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았던 곳은 시에서도 묘사되는 '명정(明井)골'이었는데 [[백석|그]]는 그 곳을 방문하였으나 [[란]]이 개학 준비로 인해 경성으로 올라가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다. 이 말은 전해준 건 [[란|그녀]]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이었다. 백석보다 두 살이 많은 서병직은 신현중과 친구 사이였다. 백석은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백석이 없었다. 그녀는 백석이라는 사내가 부담스러워 몸을 피한 것이다. 백석과 신현중은 난이 떠나고 없는 통영에서 사나흘 정도를 묵으며 유서 깊은 이 고장 곳곳을 둘러봤다.<ref>안도현 「백석평전」105-106p</ref>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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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에게 '''통영'''은 각별한 곳이었다. 백석이 흠모하였던 여인 [[란]]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도현의 「백석평전」에 따르면 [[백석]]은 먼 통영을 세번 혹은 네번 정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았던 곳은 시에서도 묘사되는 '명정(明井)골'이었는데 [[백석|그]]는 그 곳을 방문하였으나 [[란]]이 개학 준비로 인해 경성으로 올라가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다. 이 말은 전해준 건 [[란|그녀]]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이었다. 백석보다 두 살이 많은 서병직은 신현중과 친구 사이였다. 백석은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백석이 없었다. 그녀는 백석이라는 사내가 부담스러워 몸을 피한 것이다. 백석과 신현중은 난이 떠나고 없는 통영에서 사나흘 정도를 묵으며 유서 깊은 이 고장 곳곳을 둘러봤다.<ref>안도현 「백석평전」105-106p</ref> <br/>
더 자세한 백석의 사랑이야기는 이 [[백석#사랑꾼 백석|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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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에 대한 백석의 사랑 이야기에 대한 더 자세한 서술은 이 [[백석#사랑꾼 백석|링크]] 참조.
  
 
==='''백석의 시(詩) <통영(統營)>'''===
 
==='''백석의 시(詩) <통영(統營)>'''===

2019년 6월 17일 (월) 17:01 판

정의

통영은 경상남도 남해안 중앙부에 있는 시이다.[1]

내용

도시 '통영'

초겨울 비가 내리고 바람 끝이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통영에는 윤이상 추모음악제 현수막이 도시의 거리마다 휘날린다. 옛적부터 문인·화가 등 예술적 자질이 돋보이는 인물이 많기로 유명했던 통영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역사 속에 떠올랐다.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이 설치되고 그 준말이 불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충무라는 지명도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온 이름임을 미루어 보면 그 역사적 배경이 넉넉히 짐작된다. 통영에는 아직도 그 유적이 남아 있으니, 통영시 문화동 여황산 기슭에 선 세병관(洗兵館)과 충무공 위패를 모신 충렬사(忠烈祠)가 그것이다.[2]

시인 백석과 통영

시인 백석에게 통영은 각별한 곳이었다. 백석이 흠모하였던 여인 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도현의 「백석평전」에 따르면 백석은 먼 통영을 세번 혹은 네번 정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았던 곳은 시에서도 묘사되는 '명정(明井)골'이었는데 는 그 곳을 방문하였으나 이 개학 준비로 인해 경성으로 올라가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다. 이 말은 전해준 건 그녀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이었다. 백석보다 두 살이 많은 서병직은 신현중과 친구 사이였다. 백석은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백석이 없었다. 그녀는 백석이라는 사내가 부담스러워 몸을 피한 것이다. 백석과 신현중은 난이 떠나고 없는 통영에서 사나흘 정도를 묵으며 유서 깊은 이 고장 곳곳을 둘러봤다.[3]
란에 대한 백석의 사랑 이야기에 대한 더 자세한 서술은 이 링크 참조.

백석의 시(詩) <통영(統營)>

백석 시인이 통영 지역을 배경으로 쓴 '통영(統營)'이라는 시들도 있다.[4]


  • 첫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이 시는 1935년 <<조광>> 12월호에 <여우난골족>, <흰밤>과 함께 발표되었다.[5]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천희(千姬)의 하나를 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두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1월 23일자에 두 번째로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 <<조광>> 12월호에 같은 제목으로 시를 발표한 지 거의 두달 만이었다. 그 사이에 백석은 다시 통영을 다녀왔다.[6]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두 번째 통영 방문에는 신현중이 동행했다. 신문사에서 마산, 통영, 삼천포 등 남해안 지역으로 취재여행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마음먹고 일주일간 출장을 간 것이다. 경성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경성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 못 미쳐 밀양의 삼랑진역에서 내려 기차를 타아했다. 여기서 마산선을 타면 낙동강-유림정-진영-덕산-창원-구창원을 거쳐 마산역에 닿았다. 40.1킬로미터의 거리였다.[7]

멀티미디어

이미지

통영전경.jpg[8]

전자지도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시' (두산백과)
  2.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 - 충무공의 정신이 깃든 곳 (한국의 미 산책, 2007. 11. 30., 최선호)
  3. 안도현 「백석평전」105-106p
  4. 백석 시인이 '통영(統營)'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세 편 있지만 백석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통영(統營)> 3는 '통영' 문서에 작성하지 않았다.
  5. 안도현 「백석평전」88p
  6. 안도현 「백석평전」101p
  7. 안도현 「백석평전」105p
  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ikinow&logNo=20101559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