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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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16일 (화) 15: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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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통서(通書)』는 송대 신유학자인 주돈이의 저서이다.[1] 글이 매우 짧고 단순하여 해석하기 어렵고 해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주자마저도 주석을 단순하게 달아 후학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원문 및 朱注

각 장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확인할 것.

誠上第一

誠下第二

誠幾德第三

聖第四

愼動第五

道第六

師第七

幸第八

思第九

志學第十

順化第十一

治第十二

禮樂第十三

務實第十四

愛敬第十五

動靜第十六

樂上第十七

樂中第十八

樂下第十九

聖學第二十

「聖可學乎?」 曰:「可。」 曰:「有要乎?」 曰:「有。」 「請聞焉。」 曰:「一為要。一者,無欲也,無欲則靜虛、動直,靜虛則明,明則通;動直則公,公則溥。明通公溥,庶矣乎!」
“성인은 배워서 될 수 있습니까?” 말했다. “가능하다.” 물었다. “(그렇게 되는 데에) 핵심이 있습니까?” 말했다. “있다.” “청컨대 듣고자 합니다.”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은 無欲이니,[1] [2] [3] 욕심을 없애고자 하면 (마음이) 고요할 때는 텅 비게 되고 (마음이) 움직일 때 올곧게 될 것이다. [4] 고요할 때 텅 비워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되며, 움직일 때 올곧으면 고르게 되고, 고르게 되면 넓어진다.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어지면 (성인에) 가까워지게 된다!”[5] [6]
此章之指,最為要切。然其辭義明白,不煩訓解。學者能深玩而力行之,則有以知無極之真,兩儀四象之本,皆不外乎此心,而日用間自無別用力處矣。
이 장의 뜻이 가장 핵심적이다. 그러면서도 그 문장의 뜻이 명백하여서 번잡하게 주해되지 않는다. 배우는 자들이 깊이 완색하고 힘써 행할 수 있다면 무극의 진실됨과 양의와 사상의 본체가 모두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아 일용 간에 저절로 별도의 힘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석

  1. 『周敦頤集』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予謂養心不止於寡而存耳, 蓋寡焉以至於無, 無則誠立明通。誠立, 賢也。明通, 聖也。”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사욕을 적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음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사욕을) 적게 하여 보존해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지 (사욕을) 적게 하여서 없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 誠이 확립한 것은 賢이며 밝게 통하면 聖이다.”:『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如後所謂『誠立明通』,意又別。彼處以『明』字為重。立,如『三十而立』。通,則『不惑,知天命,耳順』也。」” 이후 이른바 ‘誠이 확립되고 明이 통하게 된다’는 말과 같은 경우에는 의미가 또한 다르다. 저 곳에서는 ‘明’이라는 글자를 (더욱) 중시하여 주어로 보았다. 立은 ‘삼십 세에 확립된다’는 것과 같다. 通은 ‘유혹되지 않고, 천명을 알며, 듣는 것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이다.
  2. 『朱子語類』 卷 94, 「周子之書」 問:「伊川云:『為士必志於聖人。』周子乃云:『一為要,一者,無欲也。』何如?」曰:「若注釋古聖賢之書,恐認當時聖賢之意不親切,或有誤處。此書乃周子自著,不應有差。『一者,無欲』,一便是無欲。今試看無欲之時,心豈不一?」又問:「比主一之敬如何?」曰:「無欲之與敬,二字分明。要之,持敬頗似費力,不如無欲撇脫。人只為有欲,此心便千頭萬緒。此章之言,甚為緊切,學者不可不知。」 물었다. “이천께서 ‘선비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염계선생께서는 ‘하나가 핵심이니, 그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셨다. “옛 성현의 책을 주석하는 경우에 아마도 당시 성현의 뜻이 불친절하여 혹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렴계가 스스로 쓰신 책이라 마땅히 어긋남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하나는 無欲이다’라고 하신 것에서 그 하나는 바로 사욕을 없애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사욕이 없는 때를 시험 삼아 살펴보면, 마음이 어찌 하나가 되지 아니겠는가?” 또한 물었다. “한 곳에 집중한다는[主一] 뜻의 敬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無欲은 敬과 비교해 볼 때, 그 두 글자가 매우 분명하다. 요컨대, 敬을 유지하는 것은 자못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무욕하여 맑고 간결해지는 것만 못하다. 사람이 다만 사욕을 갖게 되면, 이 마음은 반드시 천 가지 만 가지로 번잡할 것이다. 이 장의 말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니, 배우는 자들은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
  3. 『朱子語類』 卷 12 「學六·持守」 “今說此話,卻似險,難說。故周先生只說「一者,無欲也」。然這話頭高,卒急難湊泊。尋常人如何便得無欲!故伊川只說箇「敬」字,教人只就這「敬」字上捱去,庶幾執捉得定,有箇下手處。縱不得,亦不至失。要之,皆只要人於此心上見得分明,自然有得爾。”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한 것과 같으니,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염계선생이 다만 ‘하나는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고원하여 촉박하게 이루기에는 어렵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욕을 없앨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천선생이 다만 ‘경’이라는 글자를 말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이 ‘경’을 취하여 나아가서 거의 안정적으로 붙잡아두며 착수처가 있게 하였다.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잘못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두 분) 모두 사람이 이러한 마음 상에서 분명히 깨달아서 저절로 얻는 바가 있음을 바라셨던 것이다.
  4. 『續近思錄』 〇解 “靜而未發之時,渾然在中,邪不能入而虛內,一故也。動而將發之傾,惟理是循,物不能撓而直外,一故也。” 고요하여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에 혼연함이 그 안에 있어, 삿됨이 들어올 수 없으며 마음 안에서 텅 비어 있으니, 한결같은 까닭이며 움직여 장차 발하려는 때에는 오로지 리가 따르니 사물이 분요롭게 할 수 없으며 마음 밖에서 올곧게 (행동)하니 한결 같은 까닭이다.
  5. 『朱子語類』 卷 94 問:「『聖學』章,一者,是表裏俱一,純徹無二。少有纖毫私欲,便二矣。內一則靜虛,外一則動直,而明通公溥,則又無時不一也。一者,此心渾然太極之體;無欲者,心體粹然無極之真;靜虛者,體之未發,豁然絕無一物之累,陰之性也;動直者,用之流行,坦然由中道而出,陽之情也。明屬火,通屬木,公屬金,溥屬水。明通則靜極而動,陰生陽也;公溥則動極而靜,陽生陰也。而無欲者,又所以貫動靜明通公溥而統於一,則終始表裏一太極也。不審是否?」曰:「只四象分得未是。此界兩邊說,明屬靜邊,通屬動邊,公屬動邊,溥屬靜邊。明是貞,屬水;通是元,屬木;公是亨,屬火;溥是利,屬金。只恁地循環去。明是萬物收斂醒定在這裏,通是萬物初發達,公是萬物齊盛,溥是秋來萬物溥遍成遂,各自分去,所謂『各正性命』。」曰:「在人言之,則如何?」曰:「明是曉得事物,通是透徹無窒礙,公是正無偏陂,溥是溥遍萬事,便各有箇理去。」直卿曰:「通者明之極,溥者公之極。」曰:「亦是(…후략…)」 물었다. “‘성학’장의 하나는 표리가 모두 하나여서 순일하여 둘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털끝의 사욕이 있게 되면 곧 바로 둘이 됩니다. 안이 하나가 되면 고요함에 텅 비게 되고, 바깥이 하나가 되면 움직임에 올곧게 되며, 밝고 통하며 고르고 넓으면 또한 어느 때건 하나가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하나’(一)라는 것은 이 마음이 혼연하여 태극의 본체가 되고, 사욕이 없다는 것(無欲)은 心體가 순수하여 무극의 진실함이 되고, ‘고요할 때 텅 빈 것’은 본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활연히 한 사물의 얽매임조차도 절대 없는 상태이자 陰의 性이며, ‘움직일 때 올곧은 것’은 작용의 유행으로 평탄히 中道로부터 나오니, 陽의 情입니다. ‘밝음’은 불에 속하고, ‘통함’은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금에 속하고 ‘넓음’은 물에 속합니다. 밝고 통하면 고요함이 극에 달하여 움직이게 되니, 음에서 양이 생겨나는 것이며, 고르고 넓으면 움직임이 극에 달하여 고요하게 되니, 양이 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욕’이라는 것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 밝고 통함, 고르고 넓음을 꿰뚫어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라면 시작과 끝 그리고 안과 밖이 하나의 태극일 것입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맞을까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사상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경계를 두 부분으로 말하면 ‘밝음’은 고요함 쪽에 속하고 ‘통함’은 움직임 쪽에 속하며, ‘고름’은 움직임에 속하고 ‘넓음’은 고요함에 속한다. ‘밝음’은 貞이니 물에 속하고, ‘통함’은 元이니 나무에 속하며, ‘고름’은 亨이니 불에 속하며, ‘넓음’은 利이니 금에 속한다. 단지 이와 같이 순환해 나간다. ‘밝음’은 만물이 여기에서 수렴되어 맑게 안정되며, ‘통함’은 만물이 처음으로 왕성하게 되는 것이고 ‘고름’은 만물이 가지런하게 이루어진 것이고, ‘넓음’은 가을이 와서 만물이 두루 결실을 이룬 것으로 각각 저절로 나누어지니, 이른바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물었다.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밝음’은 사물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고, ‘통함’은 투철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고름’은 올바르기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고, 넓음은 만사에 넓게 미치는 것이니, 즉 각각 이치가 있게 된다." 황직경이 말했다. "‘통함’이란 ‘밝음’의 지극함이고 ‘넓음’이란 ‘고른 것’의 지극함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6. 『朱子語類』 卷 94 問:「一是純一靜虛,是此心如明鑑止水,無一毫私欲填於其中。故其動也,無非從天理流出,無一毫私欲撓之。靜虛是體,動直是用。」曰:「也是如此。靜虛易看,動直難看。靜虛,只是伊川云:『中有主則虛,虛則邪不能入』,是也。若物來奪之,則實;實則暗,暗則塞。動直,只是其動也更無所礙。若少有私欲,便礙便曲。要恁地做,又不要恁地做,便自有窒礙,便不是直。曲則私,私則狹。」물었다. “(「성학장」에서) 하나라는 것은 純一하고 虛靜한 것이며, 이 마음 마치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아서 아주 조금의 사욕도 심중을 메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움직일 때에 天理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털끝만큼도 사욕이 마음을 분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體이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用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이와 같다. 고요할 때 텅 비워진 것은 알기 쉽고 움직일 때 곧은 것은 알기 어렵다. ‘靜虛’는 정이천이 ‘마음속에 주재함이 있으면 텅 비워지고 텅 비워지면 사특한 것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 만약 사물이 와서 침탈하면 마음이 꽉 차고, (마음속이) 꽉 차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막힌다. ‘動直’은 다만 움직일 때 별 다른 막힘이 없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바로 막히고 굽게 된다. 이처럼 해야 하는데 또한 이처럼 하지 않으려고 하니, 곧 저절로 막히는 바가 있게 되고 곧지 않게 된다. 굽으면 사사롭게 되고, 사사로우면 편협해진다.”




公明第二十一

理性命第二十二

顔子第二十三

師友上第二十四

師友下第二十五

過第二十六

勢第二十七

文辭第二十八

聖蘊第二十九

精蘊第三十

乾損益動第三十一

家人睽無妄第三十二

富貴第三十三

陋第三十四

擬議第三十五

刑第三十六

公第三十七

孔子上第三十八

孔子下第三十九

蒙艮第四十


통서해 서문


《通書解》序 - 宋 朱熹


通書者, 濂溪夫子之所作也.(夫子性周氏, 名敦頤, 字茂叔). 夫子自少卽以學行有聞於世, 而莫或知其師傳之所自. 獨以河南兩程夫子嘗受學焉, 而得孔孟不傳之正統, 則其淵源因可槪見. 然所以指夫仲尼, 顔子之樂, 而發其吟風弄月之趣者, 亦不可得而悉聞矣. 所著之書, 又多放失. 獨此一篇, 本號易通, 與太極圖說並出, 程氏以傳於世, 而其爲說, 實相表裏. 大抵推一理、二氣、五行之分合, 以紀綱道體之精微; 決道義、文辭、祿利之取舍, 以振起俗學之卑陋. 至論所以入德之方、經世之具, 又皆親切簡要, 不爲空言. 顧其宏綱大用, 旣非秦漢以來諸儒所及; 而其條理之密、意味之深, 又非今世學者所能驟而窺也. 是以程氏旣沒, 而傳者鮮焉∘其知之者, 不過以爲用意高遠而已. 熹自蚤歲旣幸得其遺編而伏讀之, 初蓋茫然不知其所謂, 而甚或不能以句∘壯歲獲遊延平先生之門, 然後始得聞其說之一二. 比年以來, 潛玩旣久, 乃若粗有得焉. 雖其宏綱大用所不敢知, 然於其章句文字之間, 則有以實見其條理之愈密、意味之愈深, 而不我欺也. 顧自始讀以至於今, 歲月幾何, 倏焉三紀. 慨前哲之益遠, 懼妙旨之無傳, 竊不自量, 輒爲注釋. 雖知凡近不足以發夫子之精蘊, 然創通大義, 以俟後之君子, 則萬一其庶幾焉. 淳熙丁未九月甲辰, 後學朱熹謹記.


『通書』 는 염계 선생이 지은 것이다. (선생의 성은 周씨이고, 이름은 敦頤이며, 자는 茂叔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행실로 세상에 소문이 났으나 아무도 그 사승관계의 연원을 알지 못했다. 다만 하남의 두 程子(明道와伊川)가 일찍이 선생에게 학문을 전수 받아서 공자와 맹자로부터 전해지지 않던 정통을 얻었기 때문에 곧 그 연원은 이로써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가리켜주고 [1] 음풍농월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던 것 [2] 역시 들을 수 없는데다가 저술한 책도 흩어지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 오직 이 한 편(『통서』)은 본래 ‘易通’으로 불렸는데 「太極圖說」과 함께 나와서 程氏가 이를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으니 그 학설은 실로 (「태극도설」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대체로 (그 내용은) 一理와 二氣,五行의 나누어짐과 합해짐을 추론하여 道體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紀綱으로 삼고, 道義와 文辭, 祿利 중에 (어느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 결정해서 세속적 학문의 비루함 가운데서 떨쳐 일어났다. 德에 들어가는 방법과 세상을 경영하는 도구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는 또한 모두 절근하고 간단하며, 빈말을 하지 않았다. 그 학설의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을 돌아보건대,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의 여러 유자들이 미칠 바가 아닌데다가, 그 조리의 엄밀함과 의미의 심오함 또한 오늘날의 학자들이 갑작스럽게 엿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程氏가 세상을 떠나자 전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그 책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고원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다행히도 그 남겨진 책을 얻어 읽었으나, 처음에는 아득하여 그 말하는 바를 알지 못했고, 심하게는 간혹 구두도 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延平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설의 일부를 알 수 있었다. 최근 이래로 오랫동안 깊이 완미해보고 나서야 조잡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넓은 대강과 큰 쓰임은 감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그 책을 장을 나누고 구두를 찍는 것과 문자에 대해서는 진실로 그 조리가 더욱 치밀하고 의미는 더욱 깊어서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회고해 보건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어느새 홀연히 36년이 되었다. 앞선 철인들이 점점 더 멀어짐을 개탄했고, 그 미묘한 뜻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여 삼가 나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않고 주해를 달았다. 비록 평범하고 천근하여 선생(학문)의 정밀한 뜻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대강의 의미를 통하게 하여 뒷날의 군자를 기다리니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순희 정미년(1187년) 9월 갑진일, 후학 朱熹는 삼가 서문을 쓰다


주석

  1. 『論語』 《雍也》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2. 『二程遺書』 卷三. “詩可以興. 某自再見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