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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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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망우산]]==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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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양주 [[검암산]] 아래 선왕들의 능지를 보고 오던 중 선왕보다는 자신의 묘로 하는 것이 좋다는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망우산]] 고개에서 자신이 보았던 건원릉 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흠잡을 곳이 없어 "아아, 이것으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되었노라."고 말한 데서 망우고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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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클래스'''==

2016년 6월 15일 (수) 13:21 판

개관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으로, 본관은 전주. 초명은 이성계(李成桂)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다. 이성계는 가문의 배경과 타고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크게 활약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1]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옹립했다. 이듬해 다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뒤 수문하시중[2]이 되었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태조 이성계망우산

태조 이성계가 양주 검암산 아래 선왕들의 능지를 보고 오던 중 선왕보다는 자신의 묘로 하는 것이 좋다는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망우산 고개에서 자신이 보았던 건원릉 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흠잡을 곳이 없어 "아아, 이것으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되었노라."고 말한 데서 망우고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클래스

  • 인물

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태조 A는 B시대 인물이다 조선
태조 A의 후손은 B이다 연산군
태조 A는 B의 후손이다 세조
태조 A는 B를 죽였다 [[]]
태조 A는 B의 소재이다 [[]]
태조 A는 B와 관련된다 [[]]

갤러리

주석

  1. 고려 말기에 각 도의 우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무관직
  2. 고려시대의 관직.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종1품 재신(宰臣)이다.
  3. 그림출처: 태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그림출처: 이성계, 두산백과

참고

태조,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