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방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clickable button|[[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2019 춘계 학술답사|Project Home]]}}
 
{{clickable button|[[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2019 춘계 학술답사|Project Home]]}}
  
{{정보
+
{{문화유산정보
 
|대표명칭 = 조양방직
 
|대표명칭 = 조양방직
 
|면적 = 990 ㎡(약 300평)
 
|면적 = 990 ㎡(약 300평)

2019년 4월 10일 (수) 01:04 판

Project Home


개관

윤설아, "[오래된 것들의 귀환(1) 옛 공장들의 화려한 변신] 카페로 부활한 조양방직 '강화읍에 숨을 불어넣다'

조양방직 카페 건물 외관은 1958년 폐업된 당시의 원형 그대로를 두고, 일부 내부는 카페, 전시실, 작업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우선 카페로 들어가기전 보이는 . 창고는 직물들과 각종 집기들을 보관했던 곳으로 녹슨 철제 별틀과 합판이 벗겨진 시멘트벽이 그대로 남아있다. 보일러실은 주문을 하고 음료를 제조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가장 큰 건물인 공장 내부에는 양측 대칭을 이룬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놓여있으며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조 직물을 생산하던 방직기계 지지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모형을 통해서는 군산의 근대건축물을, 다양한 시청각자료를 통해서는 일제 강점기 군산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점장실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인 경술국치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공간이며, 금고실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등 유물을 통해 당시 조선은행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응접실에서는 군산 근대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일제강점기 방공호와의 주인공들을 볼 수 있다. [1]

강화의 직물산업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직물생산지였다. 당시 섬유산업의 메카였던 대구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한때 30여 개의 직물공장이 몰려있었고, 이들 수천 명의 공장 노동자가 거주하여 강화 지역경제를 책임지고 있었다. 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파일:근대건축관내부2.jpg|[2] </gallery>

조양방직 카페의 배경

대표 이용철의 인터뷰 " " [3]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위치적으로 내항에 인접해 식민지 금융기구의 역할을 수행한 역사적 의미가 있을 뿐만아니라, 그 규모의 건축물의 건축사적 가치에 있어서도 군산을 대표할만한 중요한 건물이다. 2008년 보수 · 복원을 거쳐 현재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하고 있다.[4]

주요 연혁

   · 1933년 : 조양방직 주식회사 설립
      1934년 : 강화도에 첫 전기 개통
   · 1942년 : 일본기업 미쓰이(三井:삼정물산) 출신 이세현이 인수
   · 1958년 : 조양방직 폐업
   · 2017년 : 현 대표 이용철이 인수, 7월 2일 공사 시작
   · 2018년 :「신문리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7월 24일 개관 
   · [5]

위치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존재하지만, <references/> 태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