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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 한글명 : 조목
    • 한자 : 趙穆
    • 생년 : 1524
    • 몰년 : 1606
    • 역할

조선중기의 학자 조목(趙穆 ; 1524-1606)의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동고(東皐), 본관은 횡성(橫城)이다. 대춘(大椿)의 아들로 예안(禮安)에서 살았다. 그는 15세에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는데, 학문은 물론이고 처신함에 있어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므로 스승이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1552년(명종 7)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있을 때 \"과문(科文)이란 노친을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나 도학(道學)이란 이것이 아니다.\"하며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마침내 대유(大儒)가 되었다. 그는 1566년 천거로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568년에 집현전참봉(集賢殿參奉)에 제수되어 부임하였다가 곧 사퇴하였다. 그 후 1572년부터 1584년까지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나아가지 않고 혹 부임했다 할지라도 곧 사퇴하였다. 40여 년 관직을 가졌어도 실제로 취임한 기간은 모두 합해 4년 미만이었다. 예안의 도산서원(陶山書院)과 봉화(奉化)의 문암서원(文巖書院) 등에 제향하였다.


출처 유교넷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