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에서 본 오련사(五蓮寺)"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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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백련사]]
 
*[[강화 백련사]]
 
*[[강화 고려산]]
 
*[[강화 고려산]]
*[[신증동국여리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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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강도지]]
 
*[[강도지]]
 
*[[적석사 사적비]]
 
*[[적석사 사적비]]

2019년 5월 3일 (금) 11:32 판

소개

한국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는 제일 심각한 약점을 말하자면 사실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다. 사실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연구를 바탕으로 이 팩트들을 서술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충돌되는 정보가 있는 경우 어떤 사실이 더 맞을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강화도 고려산에 있는 청련사, 백련사, 적석사와 관련한 오련사(五蓮寺) 전설 같은 경우에는 선행 자료에 없었지만 추후에 추론된 정보가 있으나 이 추론은 누가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1696년에 간행된 『강도지』에 의하면 '청련, 홍련, 벽련, 백련, 자련의 다섯 연사가 있었다고 한다'고 하는데 추후 1932년에 간행된 『속수증보강도지』에 의하면 '청련사... 적련사, 백련사, 황련사, 흑련사'가 있다고 한다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 pp. 9-10). 다른 자료는 그냥 '다섯 색의 꽃'이라고 하고 청련사, 백련사, 적석사를 언급한다. 그러나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에서는 추후의 이름 변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더구나 현재 남아 있는 3 사찰들은 색깔과 맞는 오방향에 일치한다는 주장을 하면 이 설명이 아무런 원본자료에 없는 것이다. 즉, 오방향의 개념을 추후에 20세기에 만들어진 가능성이 있는데 이 부분을 더 살펴보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실들을 어떤 자료에 어느 연도에 서술되었는지 시각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네트워크 그래프들을 그려보았다. 오련사 전설에 대한 언급을 생락하고 주로 사찰 이름, 위치, 그 외에 세부적 정보를 그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존재한다'와 '존재했다'는 정보도 표시하도록 하였다. 그려본 결과 황련사, 흑련사를 직접 언급한 자료가 3개 밖에 없으면 이 대하여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보 외에 일치한 정보가 없다. 백련사는 이름, 고려산 북쪽에 있다는 위치 등에 대해 모든 자료가 일치한다. 적석사는 자료에 의해 적석사, 적련라, 홍련사라고 하며 고려산 남쪽 기슭, 서쪽 기슭에 있다는 위치도 세기에 따라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청련사에 대한 설명들이 제일 복잡하다. 일단 국정사와 청련사, 원통암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른 것으로 서술된 자료가 있으며 같은 것으로 서술된 자료도 있다. 그리고 위치는 고려산 북쪽, 동쪽 세기에 따라 다르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원본 자료에서 설명된 사찰들의 위치를 오방향과 비교해보면 동쪽에 있어야 할 청련사는, 17세기에 북쪽, 18세기에 동쪽에 있다고 하며, 남쪽에 있어야 할 적석사는, 17세기에 남쪽, 18세기에 서쪽에 있다고 하며, 서쪽에 있어야 할 백련사는, 17세기에 북쪽, 20세기에 서북쪽에 있다고 한다. 원래부터 오련사에서는 오방색과 오방향이 연관 있게 일치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련사는 원래부터 오방색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틀린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의심할 필요도 있으며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이름, 위치 등 외에 여러 팩트들의 사실성을 비교해 나가면서 시대별 차이, 작가의 배경에 따라 팩트가 달라지는지에 대해 더 알아보면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재까지 작업한 것은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에 있는 내용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한문으로 작성된 원본자료를 봐야 이 국역의 정확도를 인증할 수 있다.

관련 기사

자료에 대한 정보

간행 연도


작가


유형


종합


자료에서 언급한 오련사(五蓮寺)

청련사


백련사


적석사


황련사


흑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