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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10월 11일 (화) 11: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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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화순 쌍봉사는 3층 목탑형 불전인 대웅전과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 및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탑비 등이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도윤(道允, 798~868)과 함께 구산조사(九山祖師)의 한 사람인 혜철(惠哲, 785~861)이 839년[1]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하는 점[2]을 고려할 때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쌍봉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앞뒤로 산봉우리가 쌍봉인 데에 근거하는데, 847년(문성왕 9)에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이 쌍봉(雙峰)으로 자신의 도호를 정하고 사찰명도 쌍봉사로 지었다고 한다.[3] 다만 창건 연대와 비교하자면, 사찰명을 철감선사가 지었는지 여부와 그 시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웅전은 상륜(相輪) 부분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층목탑의 모습을 전하는 건물(보물 제163호)이었는데, 1984년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실되면서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복원한 것이다.[4]

철감선사탑은 868년(경문왕 8)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기묘하고 아름다운 우수작으로 손꼽히며,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首)만 남아 있으나 그 조각의 우아함은 당대의 명작이라고 한다.[5]

개요/ 해남윤씨에 대하여/ 녹우당 명칭에 대하여/ 건축물상 녹우당 + 풍수지리 / 집앞 보물들 전시 / 주위 볼 것들 (은행나무, 비자숲 ...)

녹우당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윤선도(尹善道)의 고택입니다.

개요[6]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집채는 서향, 대문은 남향, 안채에는 3칸의 대청과 대청 북단에 서향한 2칸의 마루방이 있고, 마루방 서쪽에 작은 온돌방이 2칸 이어져 안방을 이루고, 그 끝에 큰 부엌이 붙어 있다. 사랑채는 안채 앞에 있으며, 서향하여 남단에 2칸의 대청이 있고, 그 옆에 2칸의 온돌방이 이어지며, 온돌방 옆에 서쪽으로 돌출한 작은 온돌방이 있다. 안채 뒤쪽에 큰 대밭이 이어지고, 남동쪽 귀퉁이에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외원(外垣) 바깥에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孤山祠堂)과 고조인 윤효정(尹孝貞)을 모신 어초은(漁樵隱) 사당이 있다.

고산사당은 전면에 3개의 문이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고, 어초은사당은 담장을 둘렀으나 1칸 문에 정측면(正側面)이 1칸으로 된 건물이다. 이 밖에 북동쪽으로 어초은의 재실(齋室)인 추원당(追遠堂)이 있고, 북쪽으로 녹우당(綠雨堂)이 있는데, 효종이 하사한 것으로 현판은 공재 윤두서의 친구인 옥동 이서가 동국진체로 썼다.

이 유구(遺構)들은 근세 선비의 주택 시설을 고루 갖추었는데, 여기에는 윤선도의 윤고산수적(尹孤山手蹟)을 비롯하여, 윤씨 일문의 문적·문서·그림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녹우당 명칭에 대하여

- 초록 비가 내리는 해남 윤씨의 종가

녹우당은 전라남도에 남아 있는 민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口字형 고택으로, 효종 임금이 사부였던 고산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와 사랑채로 만들고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로 이루어진 해남 윤씨의 종가 전체를 녹우당이라 부르고 있다.

'녹우(綠雨)’는 ‘늦봄과 초여름 사이 잎이 우거진 때 내리는 비’라는 뜻인데,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하여 녹우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녹우당의 풍수지리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鎭山)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기념물 제 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위치

Virtual Pavilion

이번 답사의 촬영 결과물로 제작해서 넣을 예정.

전경

화순 쌍봉사 전경(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조물 배치도

화순 쌍봉사 배치도(Daum지도)

갤러리

관련 항목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화순 쌍봉사 보유 문화재 철감선사탑, 철감선사탑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쌍봉사 극락전,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지장전 지장보살상일괄
화순 쌍봉사 관련 인물 철감선사 도윤, 적인선사 혜철
화순 쌍봉사 관련 공간 계당산, 송광사

기여

참고

주석

  1. 839년은 후기신라(통일신라) 민애왕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바로 다음 해이자, 민애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신무왕의 원년이며, 신무왕의 병사로 왕위에 오른 그의 태자 문성왕의 원년이다. 그 해의 상황이 얼마나 복잡다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여기서 원년이라 함은 칭원법(稱元法)상 훙년칭원법(薨年稱元法) 중 삼국시대의 유월칭원법(踰月稱元法)에 의거한 것이다.
  2.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비문에 나와 있다. 태안사 적인선사탑(泰安寺寂忍禪師塔)은 태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泰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또는 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3. 쌍봉사 홈페이지 참조.
  4. 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쌍봉사'
  6. 문화재청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