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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鎭山)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기념물 제 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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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비가 내리는 해남 윤씨의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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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아’하는 소리가 비가 내리는 듯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이 붙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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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의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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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鎭山)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기념물 제 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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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반에 대하여'''<ref>두산백과</ref>==
 
=='''마을 전반에 대하여'''<ref>두산백과</ref>==

2016년 10월 11일 (화) 11:10 판


개요

화순 쌍봉사는 3층 목탑형 불전인 대웅전과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 및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탑비 등이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도윤(道允, 798~868)과 함께 구산조사(九山祖師)의 한 사람인 혜철(惠哲, 785~861)이 839년[1]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하는 점[2]을 고려할 때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쌍봉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앞뒤로 산봉우리가 쌍봉인 데에 근거하는데, 847년(문성왕 9)에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이 쌍봉(雙峰)으로 자신의 도호를 정하고 사찰명도 쌍봉사로 지었다고 한다.[3] 다만 창건 연대와 비교하자면, 사찰명을 철감선사가 지었는지 여부와 그 시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웅전은 상륜(相輪) 부분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층목탑의 모습을 전하는 건물(보물 제163호)이었는데, 1984년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실되면서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복원한 것이다.[4]

철감선사탑은 868년(경문왕 8)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기묘하고 아름다운 우수작으로 손꼽히며,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首)만 남아 있으나 그 조각의 우아함은 당대의 명작이라고 한다.[5]

위치

Virtual Pavilion

이번 답사의 촬영 결과물로 제작해서 넣을 예정.

전경

화순 쌍봉사 전경(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조물 배치도

화순 쌍봉사 배치도(Daum지도)

갤러리

관련 항목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화순 쌍봉사 보유 문화재 철감선사탑, 철감선사탑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쌍봉사 극락전,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지장전 지장보살상일괄
화순 쌍봉사 관련 인물 철감선사 도윤, 적인선사 혜철
화순 쌍봉사 관련 공간 계당산, 송광사

기여

주석

  1. 839년은 후기신라(통일신라) 민애왕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바로 다음 해이자, 민애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신무왕의 원년이며, 신무왕의 병사로 왕위에 오른 그의 태자 문성왕의 원년이다. 그 해의 상황이 얼마나 복잡다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여기서 원년이라 함은 칭원법(稱元法)상 훙년칭원법(薨年稱元法) 중 삼국시대의 유월칭원법(踰月稱元法)에 의거한 것이다.
  2.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비문에 나와 있다. 태안사 적인선사탑(泰安寺寂忍禪師塔)은 태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泰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또는 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3. 쌍봉사 홈페이지 참조.
  4. 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쌍봉사'



개요/ 해남윤씨에 대하여/ 녹우당 명칭에 대하여/ 건축물상 녹우당 + 풍수지리 / 집앞 보물들 전시 / 주위 볼 것들 (은행나무, 비자숲 ...)


녹우당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윤선도(尹善道)의 고택입니다.

개요[1]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집채는 서향, 대문은 남향, 안채에는 3칸의 대청과 대청 북단에 서향한 2칸의 마루방이 있고, 마루방 서쪽에 작은 온돌방이 2칸 이어져 안방을 이루고, 그 끝에 큰 부엌이 붙어 있다. 사랑채는 안채 앞에 있으며, 서향하여 남단에 2칸의 대청이 있고, 그 옆에 2칸의 온돌방이 이어지며, 온돌방 옆에 서쪽으로 돌출한 작은 온돌방이 있다. 안채 뒤쪽에 큰 대밭이 이어지고, 남동쪽 귀퉁이에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외원(外垣) 바깥에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孤山祠堂)과 고조인 윤효정(尹孝貞)을 모신 어초은(漁樵隱) 사당이 있다.

고산사당은 전면에 3개의 문이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고, 어초은사당은 담장을 둘렀으나 1칸 문에 정측면(正側面)이 1칸으로 된 건물이다. 이 밖에 북동쪽으로 어초은의 재실(齋室)인 추원당(追遠堂)이 있고, 북쪽으로 녹우당(綠雨堂)이 있는데, 효종이 하사한 것으로 현판은 공재 윤두서의 친구인 옥동 이서가 동국진체로 썼다.

이 유구(遺構)들은 근세 선비의 주택 시설을 고루 갖추었는데, 여기에는 윤선도의 윤고산수적(尹孤山手蹟)을 비롯하여, 윤씨 일문의 문적·문서·그림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海南尹氏 綠雨堂 一圓] (두산백과)



녹우당 명칭에 대하여[2]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호는 어초은(漁樵隱) 1476~1543)이 연동(蓮洞)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으로 부르고들 있으나 원래는 그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이다. "ㅁ"자형을 이루며 안뜰을 둘러싼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여러 동 있고 집 뒤편 담장 너머에 삼신제단이 있으며 그 동쪽에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

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초록 비가 내리는 해남 윤씨의 종가

집 뒤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아’하는 소리가 비가 내리는 듯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이 붙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다.

녹우당의 풍수지리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鎭山)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기념물 제 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마을 전반에 대하여[3]

서강(西江)의 샛강인 평창강(平昌江)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꼭 빼닮은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해졌다. 평창강은 길지 않지만 유로연장(流路延長)이 220km가 될 만큼 심하게 곡류하며, 주천강(酒泉江)과 합쳐지기 전에 크게 휘돌아치면서 동고서저(東高西低) 경사까지 한반도를 닮은 특이한 구조의 절벽지역을 만들어냈다. 오간재 전망대에서 남산재 쪽을 바라보면, 한반도를 빼닮은 절벽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오간재는 이 절벽지역을 처음 발견하고 외부에 알린 이종만의 이름을 따서 종만봉이라고도 부른다.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도 있다. 나무와 솔가지로 만든 임시다리인 섶다리(주천리와 판운리 2곳)를 건너면 갈 수 있는데, 여름에 큰물로 다리가 떠내려가면 옛 교통수단인 줄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백두대간격의 능선 중간쯤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큰 구멍 뚫린 구멍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때문에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강변마을로서, 마을 앞에는 넓은 자갈밭에 수박돌과 잔돌들이 깔려 있다. 강 건너편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에 돌단풍이 군락을 이루어서,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백로·비오리·원앙·수달 등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으며, 강물 속에는 천연기념물인 쉬리·어름치와 민물조개, 다슬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섶다리마을이라고 불리는 주천리와 판운리에서는 2004년 6월 26~27일에 영월 주천감자꽃축제(또는 섶다리축제)를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주변에 장릉청령포 등의 단종 유적지와 동강, 서강, 김삿갓계곡을 비롯해 영월책박물관, 곤충생태박물관, 별마로천문대, 영월 고씨굴 등 관광명소가 많다.




테라로사토양[4]

석회암이 녹으면 그 속에 있는 여러 광물 성분 중에 철이 산화가 되어 붉은색의 토양이 되는데 이것을 테라로사토양이라고 한다. 테라로사 토양은 땅이 알칼리성이라 농작물 키우는데 적당하며 철,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풍부해서 밭작물이 잘 된다. 하안단구의 선암마을은 영월에서도 밭작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선암마을의 테라로사 토양(영상)



한반도 지형에 대하여[5][6]

선암마을은 강원도 영월군 서면 옹정리에 위치한 강변마을이다. 서강(西江)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선암마을에는 고려 때 선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한때는 역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마을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땅, 한반도를 꼭 빼닮은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하다. 평창강이 주천강과 합쳐지기 전에 크게 휘돌아치면서 동고서저 경사까지 더해 한반도를 닮은 특이한 구조의 절벽지역을 만들어냈다. 오간재 전망대에서 남산재 방향을 바라보면, 한반도를 빼닮은 절벽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도 있다.

*한반도 지형의 석양풍경(영상)



한반도 지형 생성의 과학적 원리[7]

곡류하천을 가리키는 우리말로는 물도리, 물굽이 등이 있는데, 범람원에서 자유로이 곡류하는 자유곡류하천과 구분해서 감입곡류하천이라는 어려운 학술 용어를 사용한다. 감입곡류하천의 경우 계곡 자체가 곡류하고 있다. 곡류하천 만곡부의 산각이 한반도를 닮았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한반도지형은 이제 전 국민적 고유명사, 아니 일반명사가 되었다. 곡류하천이 발달한 남한강 유역의 여러 시ㆍ군에서는 지역 관광 상품의 주요 아이콘으로 한반도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영월군은 2009년 10월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을 이러한 지형의 원조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에서 영월군 서면을 영월군 한반도면으로 개칭했다. 감입곡류하천은 동해가 갈라지고 한반도가 융기하기 이전인 신생대 제3기 중엽에 한반도가 하천침식에 의해 평탄했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그 이후 지반의 융기로 하방침식이 진행되면서 과거 자유곡류하천의 평면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하도가 깊어진 것이다.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은 한반도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모식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왼편의 모래톱은 서해안의 간석지를 닮았다. 한반도지형 전망대로 가려면 산길을 따라 제법 가야 한다. 산길 주변 평탄한 곳이 바로 평창강의 하안단구이며, 이곳에는 석회암의 용식지형인 돌리네가 곳곳에 나타난다.



선암마을 뗏목체험장[8][9]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강원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 마을의 평창강에 뗏목 체험장이 마련되었다. 선암마을 뗏목은 평창강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한반도 지형의 동해안을 출발해 서해안까지 1㎞구간을 왕복한다. 뗏목체험장에는 다양한 뗏목 체험 상품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래프팅 배를 개조한 서강 수중탐사선타기는 한반도뗏목마을에는 물속을 훤히 관찰할 수 있는 탐사선이다. 강 양쪽에 로프를 걸어 노가 아닌 줄을 잡아당김으로써 강을 건너는 방법인 줄배타기와 한반도지형의 4계절 뛰어난 자연경관을 돌아보는 트레킹 코스를 경험할 수 있는 백두대간 트래킹이 있다.

*영월 뗏목마을 인디밴드 스웨덴 세탁소의 'Paradise'(영상)




영월의 숨겨진 명소, 서강(西江)[10]

서강은 평창강과 주천강이 만나는 영월군 서면 옹정리부터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영월읍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영월군을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하여 동쪽을 동강, 서쪽을 서강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는 속칭일 뿐 공식적인 하천명은 ‘평창강’이다. 이 강은 평창강 하류에 해당되는데, 동강과는 달리 유속이 느리고 하천 폭이 넓으며 강변을 끼고 많은 마을들이 위치해 있다. 서강은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시작하여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를 감싸안으며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동강을 물길이 험한 남성적 상징의 수강이라고 한다면, 서강은 물길이 순한 여성적 상징의 암강으로 표현되며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오밀조밀한 산세와 더불어 들판을 감싸 안으며 흐르는 서강의 깊고 잔잔한 물줄기는 병풍처럼 펼쳐진 신선바위를 휘돌아 아름다운 선암마을을 지나 청령포로 흘러든다.


원 페이지


출처

  1. 문화재청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검색
  2. 문화콘텐츠닷컴 <녹우당> 검색
  3. 두산백과
  4. 테라로사 토양 - EBS 동영상 자료
  5. 한국관광공사(2013), 『대한민국 구석구석』
  6.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공식 사이트
  7. 푸른길(2011), 『앵글속 지리학(상)』
  8. 한국관광공사(2013), 『대한민국 구석구석』
  9. 이미지 출처: cnb국회방송 공식 사이트
  10. 한국관광공사(2013), 『대한민국 구석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