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2보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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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문화재 정보
 
|이름 = 용마산2보루<br />
 
|이름 = 용마산2보루<br />
|사진 = 용마산1보루.jpg | 그림크기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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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용마산2보루.jpg | 그림크기 = 150
 
|종목 = 사적 제 455호
 
|종목 = 사적 제 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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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광진구]] [[중곡동]] 산3-6, [[용마산]] 해발 230m
 
|시대 = [[삼국시대]]
 
|시대 = [[삼국시대]]
 
|면적 = 663㎡
 
|면적 =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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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2보루는 용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630m 가량 떨어진 해발230m 봉우리에 위치한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방향에 장축을 둔 타원형이다. 전체둘레는 663㎡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 간이 대장간<ref>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간이 발굴되었다는 의의가 있다.</ref> 등을 설치했음이 확인되었고,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출토유물은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등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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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2보루는 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정도 거리에 있으며, 용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630m 가량 떨어진 해발230m 봉우리에 위치한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방향에 장축을 둔 타원형이다. 전체둘레는 663㎡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 간이 대장간<ref>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간이 발굴되었다는 의의가 있다.</ref> 등을 설치했음이 확인되었고,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출토유물은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등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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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2보루는 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정도 거리에 있다. 유적은 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돌출하며 형성된 봉우리 정상부(해발 230m)에 위치한다. 보루 전체둘레는 79m이며, 평면형태는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이다. 성벽은 60~70년대 사방공사를 실시하면서 성돌이 반출돼 대부분 훼손된 채 일부에서만 확인된다. 유적은 현재 체육시설과 등산로로 인해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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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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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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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2일 (화) 17:29 판


용마산2보루는 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정도 거리에 있으며, 용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630m 가량 떨어진 해발230m 봉우리에 위치한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방향에 장축을 둔 타원형이다. 전체둘레는 663㎡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 간이 대장간[1] 등을 설치했음이 확인되었고,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출토유물은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등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주석

  1.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간이 발굴되었다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