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 충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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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충효당은 조선 중기의 재상이자 학자였던 류성룡(柳成龍, 1542~1607) 가문의 종택이다. 류성룡의 형인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의 종택인 양진당과 함께 하회마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은 벼슬을 마치고 귀향한 후에 풍산현에 있던 작은 초가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의 손자와 제자들이 생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당은 사랑채 동쪽에 따로 위치하고 있다. 사랑채는 집안의 제사가 있을 때 제사 공간으로 사용한다. 12칸의 긴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인 류상조(柳相祚, 1763~1838)가 병조판서에 임명된 뒤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 집의 이름인 ‘충효당’은 류성룡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고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 허목(許穆, 1595~1682)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