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철제 초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사물 정보 |대표명칭 = |시대 = |발견지 = |주소 = |사진 = }})
 
1번째 줄: 1번째 줄:
 
{{사물 정보
 
{{사물 정보
|대표명칭 =  
+
|대표명칭 = 아차산성 철제 초두<ref>아래 사진출처: 임효재 외, 『아차산성 시굴조사보고서』, 서울대학교박물관・광진구, 2000, 7쪽.</ref>
|시대 =  
+
|시대 = [[삼국시대]]
|발견지 =  
+
|발견지 = [[아차산성]] A지구
|주소 =  
+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산16-46
|사진 =  
+
|사진 = 초두.jpg
 
}}
 
}}
 +
=='''개관'''==
 +
'''아차산성 철제 초두'''는 [[아차산성]] A지구 기단건물지에서 출토되었는데, 세 개의 다리와 손잡이를 가지고 있는 철제 초두로서 다리 한 개와 손잡이가 결실된 상태이며, 1호 온돌 아궁이 앞에서 직립한 채로 출토되었다.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4027&cid=46657&categoryId=46657 초두]는 술이나 국물 종류를 데우는 데에 사용된 용기로서 의례 등의 특수 용도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이런 형태의 철제초두는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C%B2%9C_%EB%B0%98%EC%9B%94%EC%84%B1 반월산성]의 출토품 1점에 불과한데, 이러한 형식의 고식 초두는 왕릉이나 수도 부근의 고분 등에 국한하여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아차산성 철제 초두'''는 [[아차산성]]에 기거하던 인물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
 +
=='''지도'''==
 +
<googlemap width="510" height="300" lat="37.554614" lon="127.102911" type="hybrid" zoom="13" icon="http://maps.google.com/mapfiles/marker.png">
 +
37.554614, 127.102911, [[아차산성]]
 +
</googlemap>
 +
 +
=='''클래스'''==
 +
* 사물
 +
 +
=='''관련 문서'''==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
!style="width:250px"|이 문서||style="width:200px"|관계||style="width:250px"|관련 문서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아차산]]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아차산성]]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아차산성 온돌 건물지]]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조사되었다||[[서울대학교 박물관]]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서울대학교 박물관]]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 만들어졌다||[[고구려]]시대
 +
|-
 +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와 관련된다||[[아차산성 토우]]
 +
|}
 +
 +
=='''갤러리'''==
 +
<gallery>
 +
파일:초두도면.jpg|아차산성 철제 초두 도면<ref>그림출처: 최종택,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 『사총』, 제 81집, 2014, 25쪽.</ref>
 +
</gallery>
 +
 +
=='''주석'''==
 +
<references/>
 +
 +
=='''기여'''==
 +
*[[김지선]]: 처음 작성
 +
 +
 +
[[분류:김지선]]
 +
[[분류: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 개발]]
 +
[[분류:사물]]
 +
[[분류:아차산성 A지구]]

2016년 6월 9일 (목) 03:30 판

개관

아차산성 철제 초두아차산성 A지구 기단건물지에서 출토되었는데, 세 개의 다리와 손잡이를 가지고 있는 철제 초두로서 다리 한 개와 손잡이가 결실된 상태이며, 1호 온돌 아궁이 앞에서 직립한 채로 출토되었다.

초두는 술이나 국물 종류를 데우는 데에 사용된 용기로서 의례 등의 특수 용도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이런 형태의 철제초두는 반월산성의 출토품 1점에 불과한데, 이러한 형식의 고식 초두는 왕릉이나 수도 부근의 고분 등에 국한하여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아차산성 철제 초두아차산성에 기거하던 인물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지도

클래스

  • 사물

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아차산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아차산성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아차산성 온돌 건물지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서 조사되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에 만들어졌다 고구려시대
아차산성 철제 초두 A는 B와 관련된다 아차산성 토우

갤러리

주석

  1. 아래 사진출처: 임효재 외, 『아차산성 시굴조사보고서』, 서울대학교박물관・광진구, 2000, 7쪽.
  2. 그림출처: 최종택,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 『사총』, 제 81집, 2014, 25쪽.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