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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문화유산정보 |대표명칭 = 신숙주 초상 |지정번호 = 보물 제613호 |지정명칭 = 신숙주 초상 (申叔舟 肖像) |영문명칭 = Jiseonjeong Pavilion, 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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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학자 [[영의정]] 신숙주의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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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법은 붓과 먹에서 모두 세련된 기법이 나타나서 회화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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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7일 (목) 16:47 판


영문 해설문

Portrait of Sin Suk-ju

This is a portrait of Sin Suk-ju (1417-1475), a renowned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Si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39, and was promoted to various high posts in the royal court.

He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Hangeul, the Korean alphabet,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r.1418-1450).

In 1455, the first year of King Sejo's reign,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assisting the king to the throne.

This full-length portrait painted on a sheet of ramie cloth is typical of portraits depicting meritorious subjects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he gold embroidery on the chest follows the contemporary attire of Ming China, and the patterns of peonies and peacocks show the full court attire of a high ranking official.

The brush strokes and the use of Chinese ink are refined, adding aesthetic value to this portrait.

국문 해설문

조선 초기의 학자 영의정 신숙주의 초상화이다.

신숙주(1417~1475)는 1438년(세종 20)에 진사[1], 생원[2]에 들었고 이듬해에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거치고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공을 세웠다.

구봉영당(九峰影堂)에 전해지는 이 영정은 원본으로서 전체적인 형식으로 보아 1455년(세종 1) 좌익공신 때의 초상화로 추정된다.

모시 바탕의 전신상으로 조선 초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슴부분 무늬는 관복에 직접 금박 혹은 자수를 하였는데 명나라 양식을 따랐으며 구름 아래 모란과 금계(金鷄)를 수놓았으니 당시의 복식제도로 미루어 정2품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된다.

화법은 붓과 먹에서 모두 세련된 기법이 나타나서 회화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위치


관련 항목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신숙주 초상 -와 관련이 있다 신숙주
신숙주 초상 -에 속한다 보물
신숙주 초상 -에 위치한다 구봉영당

주석

  1. 조선시대 소과(小科)의 하나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사람. 출처:"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조선시대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 출처:"생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